Donam Seowon
立地
돈암서원은 고정산 자락의 완만한 구릉지에 전학후묘前學後廟이며, 향은 해좌사향亥坐巳向인 동남향이다. 주변 환경으로는 논산저수지 북쪽에 2개의 산과 연접해 있는데, 하나는 고정산이고 다른 하나는 대명산이다. 이중 동쪽의 고정산 줄기가 서북으로 4.5km를 흘러 넓은 사갑들로 뻗어있는데, 돈암서원은 고정산 줄기가 이어지는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전면으로 연산천이 흐르고 뒤로는 고정산 줄기가 배산을 형성하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으로 완만한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관촉사, 개태사, 계백장군묘 및 백제군사박물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空間構成
돈암서원의 경우 고종 17년(1860)의 이건 이전6과 이후로 대별할 수 있는 바, 현재의 서원은 전학후묘이면서 동남향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펼쳐진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고, 경내에는 사당인 숭례사, 신문, 강당인 양성당, 동재인 거경재, 서재인 정의재, 응도당, 장판각, 정회당, 경회당, 전사청, 외삼문인 입덕문 등과 하마비, 홍살문 등이 있다. 현재의 돈암서원은 고종 17년(1880) 이후 여러 차례 증·개축을 통해 강당이 중심축에 있지 않고 남측으로 비켜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공간구성은 4개로 구성되어 있는바, 진입공간으로는 홍살문과 하마비를 지나 왼쪽으로 최근 조성된 주차장이 있고, 정면에 최근 신축된 산앙루가 위치하고 있다. 산앙루 앞에는 황강 김선생 정회당사적비명과 현성사림비가 있고, 외삼문 우측으로 양성당중수비가 자리하고 있다. 강학공간으로는 외삼문인 입덕문을 통해 진입하면 동·서재를 지나 양성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양성당의 뒤편으로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이 있고, 양성당의 남쪽 측면으로 정회당이 위치하고 있다. 양성당과 정회당의 뒤편으로는 석축 위로 화계가 조성되어 있다. 양성당의 정면 좌·우측으로 1997년에 개축된 거경재와 정의재가 위치하고 있으며 강당인 응도당은 중심축에서 남측으로 비켜나 수직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들 강학공간은 평지에 입지한 까닭에 여유 있는 배치를 보여주고 있으나 입덕문 보다 동·서재가 위치한 강학공간이 1단 높게 올라있다. 강학공간의 동·서재는 1단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응도당을 이건하기 전 강당으로 이용되던 양성당은 2단의 기단 위에 자리하여 그 위계를 강조하였다. 전사청은 관리공간으로 막돌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고 있으며, 양성당 뒤편으로 연결되는 협문을 통해 내삼문으로 진입 할 수 있는 동선을 확보하여 서원의 제향행사가 있을 시에 지원을 용이하게 하였다. 1997년에 동·서재와 함께 개축된 경회당은 응도당과 마주하고 있다. 제향공간은 꽃담으로 위요되었으며 내삼문은 3단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어 강학공간과 공간상 위계를 구분하고 있다. 사당인 숭례사는 4단의 기단 위에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전면 4곳에 계단이 설치되어있고 사괴석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空間構成要素
식물 _돈암서원 일원의 식생은 외삼문 안쪽 양측으로 배롱나무가 재식되어있고, 양성당의 우측 장판각의 정면에는 수령이 300여 년으로 추정되는 향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내삼문 양측으로 주목이 식재되어 있고 내삼문 안으로는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좌우측 담장 밑으로 화단이 조성되어 있다. 우측 화단에는 소나무와 옥향 그리고 배롱나무가 2주 식재되어 있으며, 좌측 화단에는 옥향 3주와 배롱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내삼문에서부터 장판각 뒤쪽, 정회당 우측면에 이르기까지 담장을 따라서 화계가 조성되어 있고 화계에는 영산홍이 식재되어 있다. 거경재 뒤편의 전사청으로 진입하는 출입구 좌측 담장에는 능소화가 식재되어 있으며 우측 담장 아래에는 화단이 조성되어 있고 화단에는 머위가 식재되어 있다. 원 외부에는 사당의 서측 즉 사당의 후면으로 소나무가 군식되어 있으며, 사당의 북측으로 대나무림이 조성되어 있다.
건조물 _1. 숭례사崇禮祠_ 사당인 숭례사는 4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전면 1열은 툇간이고 후면 2열은 내부공간으로 내부에는 김장생, 김집, 송준길, 송시열 네 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2. 응도당凝道堂_ 강당인 응도당은 1자반 높이의 초석 위에 정면 5칸, 측면3칸으로 내부는 모두 마루를 깔았으며 측면에는 풍판을 달고 풍판 아래에는 눈썹지붕을 달아내었으며 지붕은 전후면 모두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3. 양성당養性堂_ 양성당은 2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각 칸은 하나씩의 방을 꾸미고 가운데 3칸 전면에는 툇간을 만들어 마루를 깔았다. 1997년 거경재와 정의재가 개축되기 전에는 측면에 편액을 걸어 거경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4. 정회당靜會堂_ 장대석 외벌대로 기단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뒷열 가운데 2칸은 마루방을 두었고 툇칸은 마루를 깔아 건물의 3면이 마루로 되어있으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1956년 지금의 자리에 복원되었다.
5. 장판각藏板閣_ 정면 3칸, 측면 2칸에 서고의 기능을 갖고 있으며, 내부는 모두 통풍이 잘되도록 마루를 설치하였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6. 전사청典祀廳_ 장대석 외벌대 기단 위에‘ㄱ’자 형의 평면으로 가운데 3칸은 대청을 두고 양측에 방을 두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전사청 주변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응도당 뒤편으로 협문을 두었다.
7. 거경재居敬齋, 정의재精義齋_ 거경재와 정의재는 1997년에 경회당과 함께 개축되었으며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8. 경회당 _ 1997년에 동·서재와 함께 개축된 경회당은 자연석 석축 외벌대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현재 문화유산해설사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9. 입덕문入德門_ 자연석을 2단으로 계단처럼 쌓아올린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 형식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돈암서원’편액을 걸어놓았으며, 안쪽으로‘입덕문’편액을 걸었다.
10. 내삼문內三門_ 사당과 강학공간과의 높이 차를 장대석 세벌대로 높이고 사당 안쪽에서는 외벌대 기단이 설치되어 있다. 어칸과 양 협칸을 별도로 세우고 문과 문 사이와 양쪽으로 꽃담을 세웠다.
11. 홍살문紅箭門_ 홍살문은 신성한 곳을 알리는 문으로 참도가 시작되는 곳에 각각의 둥근 주초석柱礎石에 2개의 기둥을 세워 붉은 칠을 하고 상단부의 기둥과 기둥 사이를 인방을 연결하여 살을 박아놓았다. 홍살중앙에는 오방색의 삼태극의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수공간 _양성당기에 의하면 서원이 구지舊址에 위치하였을 당시에 도랑물이 돌 사이로 흘러드는데 이를 이끌어 위 아래로 못을 만들고 연꽃을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연지의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56년 정회당의 복원과정에서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회당의 전면에 위치하였던 연지는 4×7m의 크기였으나, 1997년 서원정비사업에서 매몰되어 없어져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점경물 _1. 돈암서원원정비遯岩書阮阮庭碑_ 연꽃무늬가 새겨진 방형의 받침위에 비석과 비 머리가 서있다. 1880년 이건 당시 함께 이전하였으며 현종10년(1669)에 세워졌다.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쓰고 전서체 제목은 김만기가 썼다. 비신은 높이 173.8cm, 폭 75cm, 두께 33.3cm이다.
2. 돈암서원지비書院之碑(양성당중수비) _ 외삼문 밖에 위치하며 돈암서원이 이건하게 된 연유와 이건 당시의 기록, 당시의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송병선이 짓고 송도순이 글씨를 썼다. 비신은 높이129cm, 폭 49cm, 두께 18cm이다.
3. 관세대 洗臺, 정료대庭燎臺_ 내삼문 안 묘당공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향의 동입서출하는 의식절차에 따라 우측에 관세대, 좌측에 정료대가 위치하고 있다.
結_ 본 고는 조선 중기 연산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던 기호학파 사림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연산 돈암서원의 입지와 공간구성에 관해 기술한 것으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입지는 논산저수지의 북쪽 고정산 자락의 완만한 구릉지에 들을 가로질러 흐르는 연산천 너머로 계룡산 자락을 마주하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배산임수 형국으로 자리하고 있다.
둘째, 공간구성은 진입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 관리공간으로 구분되며, 축과 기단의 높이, 동선 등으로 각 공간의 위계가 설정되며, 고종 17년(1880)에 구지에서 이건하는 과정에서 함께 이건하지 못하고1971년 이건된 강당인 응도당은 중심축에서 우측으로 벗어나 수직으로 배치되었다.
셋째, 공간구성요소로서 식생은 향나무 노거수를 비롯하여 배롱나무, 소나무 등의 교목과 옥향, 주목, 영산홍, 능소화 등이, 건조물로는 사당인 숭례사와 제향공간을 감싸고 있는 내삼문과 그 주변의 양성당과 장판각, 정회당, 응도당, 동·서재 그리고 전사청과 경회당, 내·외삼문 등의 건축물과 돈암서원원정비, 돈암서원지비(양성당 중수비), 제향공간의 정료대, 관세대 등의 점경물 등이 있다. 이로 인해 19세기 후반 이건된 강학과 제향의 기능을 담당하던 공간으로서 돈암서원은 조선시대의 여타의 서원과 비교하여 서원형식이 지니는 정형성을 잘 보여주면서 축선의 어긋남을 통해 구성의 변형을 꾀하고 있다. 차경을 이용해 건물과 자연의 연계된 경관구조를 이루며, 구성미가 뛰어남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러한 경관건축은 해당지역의 지형조건 등의 자연적 요소와 당시의 성리학에 바탕을 둔 사상체계, 정치체계 등의 인문적 요소와 상호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