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화, 세계화 조류를 타고 과거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분열 대립했던 냉전시대도 종식되어지고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는 20세기 말, 세계사와 우리 나라 역사의 재해석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미력하나마 지금까지 세계사 속에서 빠진 고리(missing link)라고 보았던 아메리카 인디언 역사와 히브리 역사에 대해 이미 발표한 바 있지만, 본고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간과되었거나, 빠진 고리라고 본 백제인들의 사적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백제 기원
항주대학 한국학연구소가 1995년 간행한「한반도와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관계 비교」에서 원리(苑利)선생은“한민족(韓民族)은 구이(九夷) 중 백이족(白夷族)이고 그 일족은 중국 동남 연해안인 강소, 절강, 안휘 일대에 살던 예맥(濊貊)이 3천여년 전에 옮겨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지금도 중국 남쪽 5개성을 중심으로 2백 70만명이 살고 있다한다. BC221~206년 전후 중국대륙에서 진(秦)나라가 망하면서 그 유민들인 남맥(南貊)들이 한반도에 건너가 마한의 보호 아래 신라 등 삼국을 열었다. 남맥은 뒷날 오월족(吳越族)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일파가 운귀(雲貴) 고원으로 옮겨가 백족(白族)이 되었다. 이 민족은 중국에서 백월민(白越民) 또는 월족(越族)이라 부르는 민족이다. 한반도에서 수도작이 시작된 것은 3천5백여년 전으로 중국 중남부 예맥의 이동 시기와 거의 같으며 지석묘 반월형 돌낫, 돌도끼 등과 관련이 있다. 한국의 ‘논’도 백월 문화권에서 나라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발효음식, 보신탕 풍습, 순대풍습, 사랑방 풍습, 다락방 풍습, 쓰개 풍습, 문신, 성석 신앙, 알바위 신앙, 웅장 풍습 등이 모두 백월 문화의 영향이다.
※ 키워드: 역사, 백제문화, 조경사, 백제유적
※ 페이지 : 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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