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전통 정원으로서의 분구원 (1900년 이전)
이 당시에는 도시화가 가속화되지 않은 강태로서 현대적 의미의 분구원이란 개념보다는 ‘앞마당의 녹지공간’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 할 것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산업화 및 도시화가 가속화되기 시작하면서 도시민들은 점차 사라져가는 도시속의 자연을 동경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주거환경이 악화되면서 주거지역 녹지공간에 대한 열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더구나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던 루어공업지역의 주민들은 대부분 ‘임대정원’의 형태로 자연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으며, 이때부터 소정원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1·2차 세계대전 당시의 분구원 (1910~1960)
독일 전역에 확산되어 있던 분구원은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곡물, 채소 및 가축을 기르는 장소가 되었으며, 어린이 및 청소년들을 위한 심신 수련과 교화의 장으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분구원의 복원 및 현대화 계획 (1960~1980년 중반)
분구원의 현대화 계획에서 가장 큰 특징은 중·서민층을 대상으로 한 여가 및 레크레이션의 공간으로 복원하는 것이었다. 물론 분구원의 전통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채소, 감자, 유실수 등을 위주로 식재를 하였으나 도심 속에서 여가 및 레크레이션을 즐길 수 있도록 각종 조경시설물들을 갖추어 중·서민층을 위한 도심 속의 별장으로서 그 의미가 크게 변천하게 되었다.
-생태공원으로의 분구 (1980년 중반~현재)
1980년 중반 이후부터는 분구원의 성격이 도시민을 위한 여가 및 레크레이션의 장으로서의 기능에서 보전적인 측면을 고려한 생태공원의 성격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특히 시 전체면적의 1.4%에 달하는 대규모의 녹지면적으로서 자연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도시 내 녹지축의 기본 단위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 키워드 : 해외의 전통조경 계승, 독일의 분구원
※ 페이지 : p88~p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