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의 경관
“…스톡홀름 시는 니야 아라스타팔테트(Nya Arstafaltet)에 새로운 주거지와 1950년대에 스톡홀름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든 고전적인 공원 조경의 전통을 이어받을 세계적인 수준의 새로운 도심 공원을 만들고자 한다. 이와 함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국제적인 디자인 경향을 반영하고자 한다. 새로운 개발 사업은 도시적 삶을 추구하는 많은 시민들을 위한 도심 공원의 재건 사업과 결합될 것이다. 도시 공원은 공공장소로서의 역할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도시 개발 전 과정의 촉매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2008년 스톡홀름 시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최소 1만 5천 호의 주택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스톡홀름 인근에 새로운 주거 환경을 제안할 공모전을 실시하였다. 공식적으로는 니야 아라스타팔테트 공모전은 건축 공모전이었다. 그러나 요강을 보면 이 공모전은 마치 공원을 위한 조경 공모전이라는 착각이 든다. 그만큼 공원은 이 공모전의 중심에 있으며 전체적인 개발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요소였다. 오늘날 조경이 도시에서 건축이나 토목보다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예는 굳이 이 공모전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사례만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점점 조경은 도시 만들기의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 조경이 도시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는 않다.
서로 다른 문화적, 지역적 맥락 속에서 도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점차 경관이 되어갔다. 그 중 유럽의 도시 진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의 도시관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조경계에는 모더니즘에 대한 한 가지 오해가 존재한다. 그것은 모더니즘이 건축을 순수한 오브젝트로 취급함으로써 건축과 조경, 그리고 다른 환경적 요소와 괴리시켰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과는 반대로 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건축을 도시적인 맥락으로 확장시키고 도시를 건축, 기반시설, 조경의 통합적인 체계로서 재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혁신적 사고의 그 중심에는 CIAM이 있었다. CIAM(Congre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e)은 모더니즘의 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도시의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1928년부터 1960년까지 활동한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모임을 말한다. 르 코르뷔지에, 지그프리드 기데온, 월터 그로피우스, 리처드 노이트라, 호세 루이스 서트와 같은 당대 최고의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CIAM의 중심인물이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CIAM의 논의가 곧 모더니즘의 담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미쳤다. CIAM은 모더니즘 도시의 기본 원리로서 주거, 일, 교통, 레크리에이션이라는 네 가지 기능을 제시한다. 이 프로그램을 공간적인 개념으로 바꾸면 주거는 주택, 일은 사무공간과 공업시설, 그리고 교통은 도시기반시설, 레크리에이션은 공원에 해당된다. 이 때 우리는 모더니즘의 도시에서 기반시설과 조경이 건축에 못지않은 중요한 계획의 매체로서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릭 멈포드(Eric Mumford)는 CIAM의 어바니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CIAM의 어바니즘은 노동자 계층을 위한 나은 주거 환경, 상업기반시설, 그리고 도시 인근의 대규모 레크리에이션 시설(이는 초기 단계의 환경적 관심을 반영한다)을 제공하기 위해 도시가 재편되어야한다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전통적인 고밀도의 도시 건축 조직보다는 넓은 조경 공간에 여유 있게 배치된 건물을 주장한 르 코르뷔지에의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CIAM이 추구한 표준적인 기능적 도시 모델은 지역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양식을 양산한다는 비판에 부딪히게 된다.
1930년대 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의 강력한 복지 정책의 영향 아래에서 발전한 스웨덴의 도시 모델은 모더니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공공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스웨덴의 도시에서는 획일적인 마천루가 지배하는 모더니즘의 도시 블록 대신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저밀도와 고밀도의 주거 환경이 공존하였다. 하지만 스웨덴의 모델은 모더니즘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일종의 수정적 대안이었다. 모더니즘의 기념비적인 건축과 획일적인 양식을 거부하기는 하였으나 녹지 공간을 중심으로 공공성이 강조되는 모더니즘 도시 구조는 스웨덴의 새로운 주거 환경을 구성하는 토대가 된다. 건축 이론가 J. M. 리처드는 1947년 이러한 스웨덴의 새로운 경향을“신경험주의(The Empiricism)”라고 정의하면서 이를 기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측면까지 고려된 인간 중심적 모더니즘이라고 평한다. 스웨덴의 모델은 가든 시티 모델을 추구해왔던 영국과 북유럽 도시 계획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모더니즘의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 케니스 프램톤의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를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더니즘이 새로운 도시관을 제시한지 100년, 그리고 스웨덴에서 발전한 북유럽적 모델이 인본주의적 모더니즘을 제시한지 70년, 스톡홀름은 다시 새로운 도시 환경을 위한 모델을 공모전을 통해서 찾고자 한다. 프랑스, 미국, 스웨덴, 덴마크, 독일, 영국, 네덜란드 세계 각국에서 모인 건축, 조경, 토목, 도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안을 통해서 우리는 도시 환경과 녹지가 공존하는 경관의 도시가 진화하는 과정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대상지
니야 아라스타팔테트는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미개발지이다. 현재 대상지는 럭비장, 골프 연습장으로 부분적으로 이용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특별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은 채 비워져있다. 대상지 주변은 식료품 도매 시장, 산업단지, 단독 주택지, 그리고 아파트 단지 등 스케일이나 토지 이용, 개발된 연대도 서로 상당히 다른 조직으로 이루어져있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여러 가지 제약 조건으로 인해 미개발지로 남겨진 아라스타팔테트는 자연히 스톡홀름 남부의 가장 큰 녹지대가 되었다. 개발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상지가 아직 미개발지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대상지는 주변 지역과의 연결성이 상당히 취약하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스톡홀름과 이어지는 북쪽의 연결성은 상당히 양호하나, 식료품 도매 시장과 산업시설 때문에 대상지는 동쪽과 서쪽의 주거지역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며 남쪽의 주거지역시 미흡한 대중교통 시설로 인해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편이다.
공모전이 이 대상지에 요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새로운 주거환경이었으며, 둘째는 공원이었다. 니야 아라스타팔테트의 새로운 주거 지역은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촉진시킬 수 있는 소공원, 광장, 가로환경을 통해서 공동체적인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더 나아가 건축적 프로그램들은 자연스럽게 주변 지역을 잇는 연결 고리의 역할도 해야 했다. 주거지가 주변의 도시조직과 연결되는 국지적 조직이라면 공원은 스톡홀름 시민 전체를 위한 광역적 조직이다.
니야 아라스타팔테트의 공원은 단순히 지역 공원으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에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랜드마크적인 장소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공공 활동의 중심지가 될 공원을 통해서 대상지는 스톡홀름의 내부와 외부의 도시 조직을 광역적으로 이어줄 매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