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어떤 디자인 오피스] HLD
디자인을 통한 주창과 혁신
  • 이호영·이해인
  • 환경과조경 2024년 6월

[크기변환]1B6A1091-10.jpg

 

사상 공유 구역

HLD


조경이란

안녕하세요. 사상 공유 구역 HLD는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열네 명의 사람이 모여서 벌이는 사회 실험이자 본격 조경 서바이벌입니다. 『환경과조경』 원고 마감 4일 전, 참가자 전원은 조경과 관련된 사전 테스트에 참여했습니다.

· 조경설계의 꽃은 식재 설계다.

· 사회에서 조경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 회사 운영에 도움이 된다면 조금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도 수주해야 한다.

· 공원 BF 인증 의무화는 이동 약자를 위한 당연한 조치이므로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

· 번아웃을 호소하는 사람은 사실 엄살인 경우가 많다. (등 총 72문항)


테스트는 네 개 차원에 대한 참가자의 점수를 측정하며 각각 역할, 관점, 재능, 변화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테스트 뒤 익명 채팅을 통해 선택만으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을 좀 더 들어보았습니다.

 

[크기변환]어떤 디자인_질문 1.jpg

 

역할: 넓파 vs. 깊파

‘역할’ 차원은 조경이라는 분야의 역할에 대한 범위를 측정합니다. ‘조경가는 식물 전문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계획적, 도시적 역할의 넓은 조경을 지향할수록 ‘넓파’, 자연과 인간을 매개하는 공간으로서 조경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정원 중심의 깊은 조경을 지향할수록 ‘깊파’로 분류됩니다.

“학교에서 넓게 배웠는데 나와 보니 좁다.”

“제가 ‘조경가’로 불리는 게 맞나 싶고, 마찬가지로 HLD가 정확히 조경 회사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조경가가 식물을 몰라도 되는 건 아니지만 식물 전문가 취급 받는 것에 경계심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사실 식물이나 생태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문제에요. 정원이나 생태를 다루는 분들이 자주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음……. 나는 넓고 깊다.”


관점: 과학파 vs. 예술파

‘관점’ 차원은 조경이 하는 일의 성격에 대한 전반적 태도를 측정합니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에 따른 산물이라고 생각할수록 ‘과학파’,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수록 ‘예술파’로 분류됩니다.

 

“조경이 예술에 가깝다고 느끼는 이유: 디자인할 때는 철저하게 계산하고 많은 숫자에 기초해서 만들지만 결과물은 유기적인 예술품 같아서.”

“순수 예술과는 분명히 다른 면이 있지만 그래도 어느 쪽이냐 하면 표현이 차지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설계했는가를 항상 논리적으로 답할 수 있지 않음.”

“실시도면을 그릴 때 1mm 단위까지 신경 쓰는 거 보면 인공 위성 만드는 과학자나 공학자 같은데, 비율이나 비례, 조형적인 아름다움도 엄청 신경 쓰는 거 보면 예술가 같음. 조형미나 비례는 감이나 느낌에 의지할 때도 있기 때문.”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이라고 하면 좀 더 말이 될 것 같아요.”

“못생긴 게 싫긴 함.”

“예술은 메시지를 던지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고, 과학은 설정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목적을 둔다는 점이 차이라고 봐요. 특히 공공 프로젝트인 경우 과학적 설계안이 설득력 있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더 다양한 유형의 ‘예술적’ 공공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크기변환]어떤 디자인_질문 2.jpg

 

A 플랜이 좋은 공간이 좋은 건가, 공간이 결과적으로 좋아야 하는 건가 이야기해보고 싶다.

B 오호.

B 대치유수지 공원 생각나요.

C 교수님이 플랜이 좋은 공간이 실제로도 좋은 공간이라고 가르쳐주셨어요. 그땐 그렇구나 했는데,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다 생각해요.

D 스마트폰을 만들 때 논리를 아주 무시하고 설계할 수 없듯이 결국 사람이 쓰는 것이라면 인체 자체나 감각적인 부분을 뒷받침해주는 논리가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온전히 한쪽만으로는 설명 불가하다고 봅니다.

B 유수지 가면 늘 진짜 좋은데 플랜만 봤다면 꽤 유치해보일 수도 있겠다는 얘기가 돌았었음.

D 이걸 답하려면 좋은 공간의 정의부터 나와야 해요.

A 좋은 공간이란?

C 공간을 채운 요소의 퀄리티가 좋아서, 아님 단순히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서, 좋은 공간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는 듯해요.

C 좋은 (외부) 공간의 경우 다시 오고 싶고, 다른 계절이나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싶은가로 가늠하기도 합니다.

E 좋은 공간은 아주 많은 것에 관여를 받죠. 적당한 사람, 좋은 날씨와 빛 그림자 등. 좋은 공간이라고 느끼게 하는 건 아주 지극히 개인적일 거라 생각이 듭니다만. 조경설계를 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공간은 바로!

B 바로 바로!

E 어떻게 생긴 그릇이냐인데. 도시냐 시골이냐 자연 옆이냐 건물 주변이냐에 따라 아주 다양한 의견이 나오겠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요.

I 플랜이 좋은 것은, 공간이 평면상에서 이해하기 쉽다? 아니면 설계자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

E 짜임새 있는 공간 구조. 즉 평면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D 근데 좋은 공간이라는 게 엄청 불편하고 식재 하나 없어도 메모리얼처럼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공간인 걸 인지하고, 그걸 잘하면 좋은 공간이 되기도 하잖아요?

E 공간을 설계할 때 몇 명이 이용하느냐 누가 이용하느냐 어떤 문화적 주제가 필요하냐 등 다양한 조건에 부합해야 하는데, 그것을 3D 기반으로 설계하기는 어렵죠. 설계는 평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D 그래서 물리적 공간 요소랑 플랜으로 대응되는 공간 주제 전 달력은 필수불가분이죠.

E 본질이 평면이기에 평면이 좋아야 모든 설계는 납득이 됩니다.

F 좋은 플랜이라고 꼭 공간이 좋진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반대로 좋은 공간은 플랜도 어느 정도 좋을 거라는 생각.

D 본질이 평면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ㅋㅋㅋ

A 저는 단순하게 물이 흐르는데 옆에 수초도 있고 나무도 있고 그늘도 있는데 오리도 있고 이런 곳이 너무 좋다 이러고 있었음 → 생태적으로 나름 건강한 곳.

F 공간이 좋다는 건, 조성된 목적의 제 기능을 하는 것? 외부 공간에 집중해서 말하는 거라면 아무래도 외부라는 강점을 잘 살려서 계절, 날씨, 시간대에 따라 갈 때마다 변화하는 곳이 매력적인 거 같아요.

G 좋은 (설계된) 공간이란 자연환경을 포함한 대상지의 특성이나 환경을 풍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인 거 같아요.

A 대상지의 역사 같은 것을 잘 살리면 좋은 설계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고유한 것은 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스토리를 좋아해서?

B 재미있는 주제.

D 저는 설계자가 준 기능보다 경험하는 사람이 무슨 이유가 되었건 직관적으로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는 공간이 좋은 공간인 것 같아요.

C 공간 조성의 목적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단순함이 미덕인 공간이라면 목적을 달성했느냐에 따라 좋은 공간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A 어린이 놀이터에서는 특히 더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D 조경이 본래 땅을 제외하곤 이야기할 수 없는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전 사람들이 이 땅을 어떻게 썼는지 또는 바라봤는지에 대한 축적된 고민을 학습할 수 있어서 정도인 것 같은데요.

B 역사 길 만들기, 남아 있지 않은 역사를 물리적으로 억지로 이어붙이는 작업 같아 공간 경험자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어요.

C 표현의 영역이라고 답한 것에 연장이긴 한데 부지의 히스토리는 표현의 모티브, 인스퍼레이션으로 기댈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봐요.

A 옛것이 있을 때 뭔가 시간이 더 깊게 느껴져서 잠시 흥미로운 점은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다 새것으로만 만들었을 때보다 뭔가 더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된달까?


재능: 타고난 자 vs. 노력파

‘재능’ 차원은 설계/계획에 대한 교육 및 타고난 능력을 측정합니다. 타고난 감각이 있거나 어린 시절부터 설계적으로 보고 배울 것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 ‘타고난 자’, 후천적인 노력이 좀 더 중요했던 경우 ‘노력파’로 분류됩니다.

 

[크기변환]어떤 디자인_질문 3.jpg

 

A HLD는 내가 아는 다른 설계사와 어떤 점이 다른지?

C 집요함?

H intensive work hours

B 술을 강권(?)하지 않는다는 것이 단순하지만 여러 측면을 보여주는 듯.

A 오 요새 술 강권하는 회사도 있나요?

I 분업화를 추구하지 않는 것, like… 실시/계획 팀 나누기 / CG 하는 사람은 CG 특화시키기 / 캐드의 신 만들기 이런 것.

A 분업화 원해요?

I 저는 다양성과 밸런스를 추구합니다.

C 미 투. 이건 확실히 효율적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팀원 개개인에게 좋은 방향은 아닌듯 합니다. 스페셜티 영역을 가진 제너럴리스트.

I 조용하다?

I 똑똑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에 5점 주신 분은 얼마나 자주 듣는지 궁금해요.

H 자기 자신한테 똑똑하다고 칭찬해주는 것도 포함!??

I 매일 아침 나는 똑똑하다 삼창하면 인정.

H 나 오늘 참 잘했어~


변화: 개혁파 vs. 보수파

‘변화’ 차원은 설계 일반의 관습에 대한 태도를 측정합니다. 지금 당장 달라져야 한다에 동의할수록 ‘개혁파’,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수록 ‘보수파’로 분류됩니다.

 

“BF 인증, 좀 더 공부해보고 싶은 영역입니다. 장애학을 공부하는 건축가와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인증제 때문에 힘들다 하면서도, 별개로 장애 당사자의 경험을 공간 설계자로서 얼마나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도 하더라고요.”

“BF 인증 기준 만들 때 설계자들이 손 놓고 있었다는 건 맞는 말인 듯. 반성할 부분이 분명 있어요.”

“지금의 프로젝트 입찰 방식은 실력 있는 조경가를 선정하는 데 문제가 많다. 어떻게 바꿔야하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

 

[크기변환]어떤 디자인_질문 4.jpg

 

[크기변환]어떤 디자인_질문 5.jpg

 

* 설문과 익명 채팅 등의 형식은 웨이브(wavve)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를 참고했다.


유 노

HLD


HLD

회사 이름의 시작은 이호영, 이해인의 영문 이니셜에서 따왔다. SWA의 S가 히데오 사사키Hideo Sasaki이고 W가 피터 워커Peter Walker라는 사실을 SWA를 볼때마다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HLD가 창업자 두 명에 대한 것보다는 그냥 고유명사로 불리기를 바라면서 지은 이름이다. 하이 랜드스케이프 디자인(High) (또는 High-end) Landscape Design, 하버드 랜드스케이프 디자인(Harvard Landscape Design)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고밀도 지단백질(High Density Lipoprotein)을 뜻하는 HDL로 오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괜찮다. 

 

미션 스테이트먼트(mission statement)

창립 몇 달 이내에 홈페이지에 소개 글이 필요해 부랴부랴 우리 회사의 생각을 적었던 것이 아래의 글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어를 직역한 글 같아 어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글솜씨 문제를 빼고는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HLD의 태도를 잘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창의적 디자인 회사다. HLD의 디자인은 다양한 공간적 문제와 사회적 도전 과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핵심적 개입’을 제공한다. 핵심적 개입이란 물리적 측면 또는 운영 전략상 대상지의 잠재력을 발현할 연결고리를 찾아냄으로써 긍정적인 변화를 가능케 하는 설계적 장치를 의미한다. ‘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우리의 설계는 시작된다. 우리는 피상적인 외관 개선이나 장식, 스타일 입히기를 지양한다. HLD의 핵심적 개입은 전통적인 조경설계의 범위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분석을 활용한다. 조경가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애정, 그리고 대상지의 맥락에 대한 존중을 통해 촉각적 표현부터 지역적 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아이디어를 구현한다. HLD는 모든 스케일의 프로젝트에서 환경적,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근본적 접근을 추구한다.”

 

슬로건: advocacy & innovation by design

면접을 볼 때, ‘크리티컬 인터벤션(critical intervention)’에 크게 공감했다는 지원자를 많이 만났다. 하지만 실제로는 2017~2018년 즈음 로고를 새로 디자인하며 만든 ‘디자인을 통한 주창과 혁신(advocacy & innovation by design)’이라는 슬로건이 좀 더 명백하게 HLD의 목표와 개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이 슬로건에 대해 이야기한 지원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은 조금 의외다. (advocacy)는 주창이라고 번역한다. 특정 사회적 목표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어떤 아이디어나 정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추진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쓴 말이라서, 주장이나 옹호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혁신(innovation)도 변화나 발전, 개선보다 더 새로운 방식을 통해 더 큰 파급 효과를 주기 위해 고른 단어다.

 

업태: 조경설계, 학술 연구 +

사업자등록 상 업태는 조경설계와 학술 연구이긴 하지만, 2019년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고 ‘creative design practices of nearly all kinds거의 모든 종류의 창의적 디자인 작업’라는 설명을 붙이면서, 단순히 명함에 플래닝(planning)이 들어가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역할을 협의의 조경 분야에 가두어 놓지 않겠다는 점을 더 분명하게 드러냈다.

 

특장점

HLD의 홍보 브로셔에는 네 가지를 HLD의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1) 질문 재정의하기(reframing the question). 단순히 주어진 공간을 좋게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 주어진 질문을 재정의하고 사회적 가치를 더 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2) 디테일에 신경을 쓴 독특하고 새로운 디자인(uniquely new design with attention to details).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디자인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며 이를 뒷받침할 디테일에 애쓴다. 3) 세계 최고 수준의 퀄리티를 위한 최첨단 프로세스(cutting-edge process for world class quality). 세계적 수준의 결과물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협력, 신기술 도입을 통해 최선을 다한다. 4) 사고의 도구로서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as a thinking tool). 커뮤니케이션을 사고의 도구로 활용해 좋은 디자인 결정을 돕기 위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HLD 문화

HLD의 지향점이 무엇이냐 하는 측면에서는 분명 두 대표의 생각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HLD의 개성을 구성하는 것은 역시 다양한 구성원과 이들이 만들어온 문화다. 글 이해인 대표

 

[크기변환]HLD29.jpg

 

[크기변환]HLD28.jpg

 

HLD는

어떤 점이 다른가


디자이너로부터

HLD는 신입 디자이너 또는 인턴이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단순히 지시를 받고 주어진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능동적 자세로 프로젝트에 임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전략 도출에서 설계안 작성까지의 과정에서 초기에 수행한 조사 분석과 이를 통해 도출한 생각을 계속 활용한다. 이러한 바텀 업bottom up 방식을 통해 디자이너의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활용하고 개인이 좀 더 주인의식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한다. 이는 설계 능력을 한층 성장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HLD에 입사하면 받는 직책이 디자이너 인 이유다.

 

공정 경쟁

가끔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리더가 모든 설계안을 결정짓지 않고 다양한 생각을 끌어내기 위해 내부 디자인 공모를 진행한다. 모두가 하나의 프로젝트에 쓰일지 안 쓰일지 모르는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은 회사로서는 큰 투자다. 보통 짧게는 두어 시간, 길게는 반나절 정도 시간을 주고 전 직원이 글, 3D 모델, 모형, 스케치 등 자신만의 표현 방식으로 뭐라도 만든다. 발표 시간은 달랑 1분, 질의 응답 시간도 1분만 주어진다. 투표로 당선작을 선정하면 정말 그 안을 기반으로 설계안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상품을 준다. 이기면 좋고, 안 이겨도 나쁘지 않다.

 

모형 만들기

HLD 설계가 단숨에 그려지는 몇 개의 선으로 결정되는 일은 드물다. 단숨에 많은 것을 확정짓지 않고 다지고 또 다진다. 평면 또는 3D 모델(라이노) 상에서 발견할 수 없는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1대100, 1대 50, 1대1 스케일의 모형을 만들어 함께 검토하고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 나간다. 효율적으로만 일하려고 한다면 맞지 않는 방식이겠지만, 실시설계 진행 중에도 필요한 검증은 한다. 시간과의 싸움으로 피로할 수 있으나, 최선이자 최고의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 중에 하나임이 분명하다.

 

공감대 형성

어쩌면 이러한 설계 과정과 결론 도출은 발주처를 설득하기 위해서라기보다 HLD 구성원들이 함께 공감하고 그 공감대를 기반으로 설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바탕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구성원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이 합을 이루어 주창하고 혁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HLD를 특별하게 만드는 철학 아닐까. 글 김주환 소장


집요함의 형태

내가 생각하는 HLD의 디자인 철학은 집요함이다. 어떤 공간에 대해 가장 효과적이고 적합한 설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끊임없이 설득하는 과정을 보며, 좋은 디자인에 대한 집요함이 HLD를 여기까지 이끌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리조트 프로젝트의 보고를 불과 며칠 앞두고 아무래도 발표 자료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며 소장님이 모형 제작을 부탁했다. 뷰를 보여주는 조감도와 다이어그램만으로는 클라이언트가 지형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료만 잘 마무리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인력도 부족한데 이게 현명한 일일까 의구심이 든 게 사실이지만, 결국 모형은 미팅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모형을 만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지형 설계와 동선 연결, 공간감 등이 이미지를 통한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도 있고, 디자이너가 스스로 주장하는 바에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기도 한다.

 

HLD는 뷰, 다이어그램, 모형, 스케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장 이상적이고 적합한 설계를 이해시키고 관철하려 노력하는 집단이다. 고된 것 같더라도 좋은 설계와 좋은 공간을 실현하기 위해 집요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HLD다. 만약 노력하는 자신을 향해 주변이 던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돼?’ 라는 말에 좌절해 본 사람이라면 이곳으로 와 합류하길. 글 김윤하 팀장

 

평화를 빕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대부분 무계획 답사와 킥오프 미팅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회의가 시작되면 각자 답사를 통해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관점으로 프로젝트에 다가가야 의미 있는 설계가 나올 것인지에 대해 ‘아무 말 토론’이 펼쳐진다. 토론에서는 섬세한 대상지의 역사와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꽃과 풀과 새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대상지와 인근의 산업이나 경제적 특장점에 대한 논의도 있으며,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지만 나름 통찰력 있는 연관 주제에 대한 ‘외침’도 있고, 언제 공부한 건지 체계적인 공간 해부를 통해 이미 도출해버린 로드맵도 있다.

 

회의는 종종 산으로 간다. 다가오는 인구 절벽과 AI와 에너지 위기와 이상 고온 시대 속 조경의 의미를 지나 국내 조경 저변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와 함께 지속가능한 따릉이 출근에 대한 찬사를 거친 다음에야 한 단락 마무리 짓기 일쑤다. 물론 결론은커녕 아무런 답도 얻지 못한 채 쉼표도 없어 읽기조차 어지러운 회의록만 남기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무 말 토론의 결과물이 생산적일 거라고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도, HLD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이 과정을 겪어낸다. 좋은 설계에 욕심이 많기에 그렇다. 대상지가 가지고 있는 맥락을 모르고 답을 내릴 수 없다. 예쁜 공간만 만드는 게 아니라 다가오는 도시의 변화를 수용하는 공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 사회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수반한 지속가능하고 생태적인 시스템으로 변화를 이끄는 메시지를 전달하길 바란다.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을 넘어서서, 공간의 역사, 사회, 맥락과 자생 수종 분석 등 지금 당장 꼭 필요해 보이지 않는 주제에 대한 연구와 토론과 같은 ‘군불’을 늘 지피는 것이 HLD의 설계에 필요한 이유다.

 

그러니 HLD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기면 어김없이 즐겁게 새로운 군불을 땐다. 사실 이 과정에서 남들이 이걸 쓸모 있다 없다, 또는 효율적이다 아니다라 평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조경에 대한 좁은 인식이 바뀌어서 우리가 하는 가치 있는 일이 조금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HLD에서 일하는 것은 마냥 평온하지만은 않다.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치매 예방에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글 이정빈 실장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창의적 디자인 회사로, 다양한 스케일의 조경설계 및 계획, 학술 연구와 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