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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식물에게] 불가피한 난제, 불가능한 애도
  • 환경과조경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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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 제거 계획도

 

 

특별한 설계자

1990년 조경학과에 입학했고, 고향의 시골 어르신들은 “대체 조경이 뭐냐”며 물었다. 동네에서 그래도 세상 물정 꿰고 있다는 어르신이 먼저 나서서 “조경은 나무 심는 게지”라고 답하곤 했다. 당시에는 조경을 한낱 나무 심는 일로 잘못 알고 있다고 억울해하면서, 전체 배치도도 그리며 포장과 시설물을 섬세히 디자인하는 일도 조경이라고 애써 항변하기도 했다. 이제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 식물만을 다루는 건 분명 아니지만, 우리는 ‘식물’이라는 ‘특별한’ 재료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 ‘특별한’ 설계자들이다.

 

식물 재료는 탄생과 성장과 쇠퇴라는 삶의 여러 단계를 지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한다. 개체가 처한 환경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모습을 지니므로 그 개별 형태는 실로 무한하다. 게다가 적절히 관리해서 무리 없이 자란다면, 식물은, 특히 나무는 살아갈 자리를 정한 설계자보다도 이 땅에 더 오래 살아남을 존재이기도 하다. 이 재료에는 내구 연한이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식물을 대하는 마음이 한없이 숙연해진다.

 

발췌한 마음, 난제

고백하자면, 천변만화하는 식물 재료에 대한 내 지식은 체계적인 공부와는 거리가 멀고 관심도 변변치 않아서, 설계사무소에서 함께 고생한 고수들이나 협의에서 만난 발주처 조경 담당들로부터 귀동냥으로 주워섬긴 게 대부분이다. “석류나 노각은 겨울 바람에 약해서 담으로 막힌 데 모아 심어라”, “산사, 마가목은 도시에서 잘 살지 못하니 다른 나무로 바꾸라”는 식으로 실제 식재 공사와 식물 성장, 유지·관리 과정을 지켜본 경험 많은 실무자들을 통해서 배운 것이다.

 

그래서 수종, 초종의 식물 리스트를 만들 때 언제나 조심스러운데, 그러다가도 읽던 책에서 불현듯 영감을 받기도 한다. 이를테면, 징그러운 묘사들이 있어 ‘호더(hoarder)’와 ‘호러’를 오가는 김인숙 작가의 소설 『자작나무 숲』의 도입부한 대목. “하얗게 서 있는 나무들의 숲이었다. 하얗고, 곧게. 그리고 빛을 뿜어내는 숲이었다.”(각주 1) 눈앞에 희부연 밤 풍경이 펼쳐지는데 껍질이 찬연한 이 나무들을 외면할 재간이 있겠는가. 하자 걱정일랑 잊어버리고 빛을 쏘아 올리기 위해서 식재 평면도의 표를 늘려서 자작나무를 넣고 무리 지어 심는다. 기본이 탄탄치 못한 잡지식과 뜬금없는 충동도 문제지만, 설계한 식물들을 현장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실수와 오류를 보완하는 피드백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는 게 무엇보다 뼈아프다. 

 

“초보들이 식재 도면을 그리나 봐요”(천만에, 초안은 내가 한 거야), “좁은 땅에 식물들이 자잘하게 뒤섞여서 너무 조잡해요”(맙소사, 또 빌어먹을 스케일 감이 문제로군), “중요한 공간이니까 소장님이 직접 신경 써주세요”(알았다고 이 양반아, 내가 그렸다니까). 별나게도 식물에 밝으시나 심사는 까탈스러운 자문위원이나 발주처 담당자를 만나게 되면, 볼 빨간 얼굴과 너덜너덜해진 심정을 애써 감추고 다스리면서 사무실로 돌아온다. 뭐가 문제인가, 괜찮아. 하지만 그런 날 밤이면 비평에 관한 책을 절로 떠올리고 남몰래 뒤적인다. 이를테면, 꾹 눌러 밑줄 친 이런 부분. “비평가들이란 하렘의 환관과 같다. 매일 밤 그곳에 있으면서 매일 밤 그 짓을 지켜본다. 매일 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은 그걸 할 수가 없다.”(브랜던 비언)(각주 2) 물론 품위 있는 오십 대 쿨가이로서 맹세컨대 이렇게 야멸차고 한편으로는 애잔한 문장들을 즐기지 않는다. 다만 검토와 지적, 비판과 비평을 당하는 비슷한 처지에 공감한 나머지 그저 음험한 미소가 지어질 뿐이다, 라고만 해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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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동 앞의 멋진 배롱나무도 가식장 자리의 부족과 시공 중 하자 우려로 인해서 제거 대상이 되었다.

 

발췌한 마음, 애도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초·중·고교의 신축보다는 증·개축 사업들이 대폭 늘어나서 사무실 프로젝트 중에서 비중이 꽤 커졌다. 교사동의 증축, 개축은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게 무엇보다 앞서는 전제라서, 새 건축물을 운동장이나 녹지가 있던 자리에 짓고 원래 건물을 철거해서 운동장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달리 말하면, 식물을 새로 심는 일에 앞서서 원래 있던 나무와 풀들을 옮기거나 제거하는 일을 도맡아야 한다는 뜻이다.(각주 3) 우리가 설계한 대학 캠퍼스 강의동 신축 공사를 사례로 보면, 건축물 한 동을 짓기 위해서 평균 5,000~6,000m2 면적의 숲과 그곳에서 살던 교목 약 700~800그루를 거의 전량 제거하며, 여기서 임목 폐기물은 땅 위 줄기, 가지와 지하의 뿌리를 모두 합쳐서 적어도 100톤 이상 나온다. 도시지역 초·중·고교들도 증·개축 사업을 하면 학교 한 곳마다 교목은 평균 100~200주, 임목 폐기물 60~70톤을 처리해야 한다. 대지 전체를 파헤치니까 가식할 장소가 마땅치 않고 옮겨 심자고 해도 공사비가 빠듯해서 이식 수목의 유지·관리는 뒷전이다.  

 

이런 프로젝트들의 설계 초반에 존치와 이식, 제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 현장 조사를 다니다 보면 흔치 않은 나무들을 만나기도 한다. 작년 춘천의 학교에서는 이름만 들으면 왠지 별똥별 같은 위성류渭城柳(Tamarix chinensis)를 난생처음 봤다. 그다지 말쑥하지는 않지만 키 10m, 흉고직경 45cm로 우람하게 서 있는 유별난 모습. 화석으로만 남았던 메타세쿼이아가 1943년 7월 말 중국의 깊은 산속에서 무려 35m 높이의 커다란 나무로 살아있음을 기적처럼 목격한 학자의 충격에 비하면 새 발의 피가 되겠으나, 잎이 나질 않아서 처음 본 2월에는 그냥 버들일까 했던 그 나무가 바로 위성류임을 구글 렌즈와 수목 도감으로 거듭 확인하고 올려다보는 마음이 묘했다. 2023년 7월 말의 작열하는 여름 볕을 잠시나마 잊을 정도로. 하지만 이 나무도 갑작스레 죽음을 맞을 것이다. 위성류는 불운하게도 운동장으로 바뀔 건물 중정 귀퉁이에 서 있고, 이식해서 살리기에는 덩치가 너무 큰 나무다.(각주 4)

 

애도하며 반성한다. 시인 이성복의 아포리즘을 모은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의 제목 자체를 즐겨 인용하며, 그래도 내역 작업으로 고통스럽게 야근하면서 유기질 비료를 무수히 잡아줬기 때문에 “나는 예외다”라고 너스레를 떨어왔건만, 이제는 푸른 잎은커녕 나무를 통째로 없애는 일에 가담하는 처지니 말이다. 정작 식물을 사랑해야 할 사람은 놓치고 사는데 소설가 김연수가 일깨우는, 이를테면 이런 장면. “나무는 저마다 다른 나무인데 하나의 이름으로만 부르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요? 오늘 우리는 은행나무니 향나무니 하는 이름 말고 그 나무만의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각주 5)

 

아파트 단지 철거를 앞두고 그곳에서 삼십여 년을 함께 살아온 나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주민들이 스무 명 남짓 모여서 치르는 의식은 나무마다 각자 고유의 이름을 붙여서 함께 불러보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반려견 ‘궁금이’를 추억하며, 어느 칠엽수에게 ‘궁금이와 함께 웃는 나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식물들이 개별화된 자신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니, 순전히 우리가 세심하게 지켜보고 알아듣고 불러주어야 하는 일이다.

 

나에게 별다른 기억이 없는 개체, 개별적이지 못한 개체에 대한 애도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일하다 보면 식물을 아끼고 보호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이들이 식물과 나눈 교감을 찬찬히 새겨듣고, 커다란 나무는 공사 범위에 대해 설득하고 고쳐가면서 최대한 존치하며 작은 나무는 가식장을 잘 골라서 한 그루라도 더 옮기고 살려야 할 것이다. 학교 나무인 목백합 주변의 잘 가꾼 나무들까지 함께 동산으로 만들어 달라고 신신당부하던 교무부장, 원래 나무는 잘 몰랐는데 재산 대장 처리를 하느라 나무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정이 들어서 마냥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된다던 학교 행정실장, 캠퍼스 나무를 하나라도 건드리려면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소문이 난 교수. 모두 식물과 함께 한 추억들을 온전히 지켜내고자 설계자를 바르게 인도하는 든든한 후원자다. 

 

나이가 들면서 야속하게도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일에만 유독 예민해진다. 그러니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지키기 힘들 것이다. 어디까지가 이웃한 생명이며, 어떻게 이웃의 고통을 지겨워하지 않고 그 삶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한다. 조경설계는 식물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감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이렇게 아름다움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조경 일의 속 깊은 본질이라고 믿는다. 

 

 

 

**각주 정리

1. 김인숙, “자작나무 숲”,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북다, 2023, p.177.

2. 빌 헨더슨·앙드레 버나드, 최재봉 역, 『악평: 퇴짜 맞은 명저들』, 열린책들, 2011, pp.154~155. 참고로 브랜던 비언(1923~1964)은 아일랜드의 작가.

3. 전에는 주로 산림에 적용하는 ‘벌목’과 ‘뿌리뽑기’만 있었는데, 올해 『2024년 건설공사 표준품셈』은 유지·관리 부문에 ‘가로수 제거(1-2-20, 24년 신설)’를 추가했다. 도시에서도 가로수나 도시림 등 수목을 제거하는 공사가 많아졌다는 하나의 방증일 것이다. 

4. 한국도로공사에서 이식한 약 2만 그루의 자생 수목을 대상으로 성공한 비율을 정리한 논문에 따르면, 근원직경이 커질수록 이식 성공률은 감소하며 예측 회귀 모형은 “Y=-0.811X+88.627(X=근원직경, Y=이식성공률)”이었다. 이 식에 따르면 흉고직경 45cm(근원직경 54cm)의 위성류를 이식해서 성공할 확률은 45%에 불과하며, 가식 후 다시 옮겨서 정식한다면 20%까지 생존율이 줄어들 것이다. 이상철 외 2인, “자생수목 이식 성공률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43(2), 2015, pp.23~29. 

5. 김연수, “나 혼자만 웃는 사람일 수는 없어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레제, 2023, pp.25~26. 

 

 

허대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이후 사반세기에 걸쳐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조경설계 힘(studio HYMH) 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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