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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식물에게] 조경가와 식물, 조경가의 식물
  • 환경과조경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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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에 대한 기억 류’, 2018 태화강정원박람회 쇼가든 낮은 채도와 구조감, 독특한 질감을 지닌 그라스는 단일 소재로 식재해도 매력적일 뿐 아니라 다른 식물과 함께 식재하면 주변 식물을 돋보이게 한다. (정원 디자인 및 식재 시공: 박주현, 시공 총괄: 디자인스튜디오 이레) ©이상아

 

 

독특한 디자인 소재

“식물이 없는 공간도 정원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질문의 본질은 맞고 틀림,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 ‘더 좋은 정원’ 혹은 ‘더 좋은 조경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각종 도시 환경 문제와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현 인류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공간을 만드는 조경가에게 식물은 어떤 존재일까.’ 이에 대한 답은 ‘조경가가 만드는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당위성에 대한 질문을 통해 명확해진다. 인류가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번창하면서 만들어 낸 도시, 공원, 광장, 정원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리고 자연과 공간을 바라보는 조경가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조경가가 만드는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조경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고민과 더불어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조경인으로서 두 가지 중요 포인트를 담을 수 있다. 첫째 생태적으로 건강하며 지속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둘째 미적으로 가치 있으며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쯤 되니 본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가능해진다. 첫째로 생태계 일부로서의 식물이고, 둘째로는 디자인 소재로서의 식물이다. 다시 말해 조경가에게 식물은 생태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디자인 소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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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소공원, 2021 정원드림프로젝트 지형 특성과 단순한 공원 프로그램으로 인해 통행로로만 이용됐던 공원을 사람, 동물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재조성했다. (정원 디자인 및 시공: 박지윤·송인엽·윤채영·이재훈·정다건(동국대)+박주현, 시공 총괄: 청보조경)

 

 

살아 있는 디자인 요소

식물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며 중요한 특성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살아 있기에 번식하고, 군락을 이루며, 병들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다른 디자인 소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개념인 생육 환경, 서식처를 디자인에 적용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겨준다. 이 개념은 자연 안에서 살아가는 식물을 관찰함으로써 오랜 세월을 거쳐 터득되어 왔다. 윌리엄 로빈슨에서부터 칼 푀르스터, 리하르트 한젠, 우르스 발저, 피트 아우돌프, 카시안 슈미트까지 자연 속에서 식물이 어떻게 살아가고 번식하며 적응하는지 관찰하고 실험하며 디자인에 적용해왔다. 식물의 개체와 군락이 스스로 번식하며 조화를 이루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생육 환경 및 서식처 특성을 파악해 그에 적합한 식물을 바르게 조합해 식재하는 것은 기후위기 시대 속에서 조경가가 만드는 공간이 생태적으로 건강한 환경으로 거듭나는 열쇠가 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디자인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식물은 살아있기에 성장한다. 식물은 키가 자라고 부피를 늘리고 생육 영역을 넓히면서 경관을 변화시킨다. 이는 디자이너의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식물의 생장은 평면상에서 식재 위치, 간격, 밀도 등 많은 고려 사항을 만들어낸다. 입면을 생각하면 더 복잡해진다. 수종마다 유전적으로 정해진 수고와 초장, 가지치기와 적심을 통해 유지 가능한 수고와 초장, 꽃이 피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초장 등. 

 

식물은 생존을 위한 번식 과정을 통해 계절마다 모습을 변화시킨다. 식물은 지구상에서 좀 더 오래, 넓은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새와 곤충을 유인한다. 꽃은 벌, 나비, 새가 날아들도록 하기 위해 더 크고 아름다운 형태와 색채를 만들어 낸다. 눈에 띄기 위해 꽃대를 높게 솟아올리기도 하고 꽃 개체 수를 늘려 수정 확률을 높이기도 한다. 바람에 잘 흔들리는 구조를 택해 자연 현상을 이용하고 향기를 통해 유인하기도 한다. 꽃의 형태(꽃송이의 형태), 크기, 꽃대 구조와 높이, 색, 밀도, 꽃이 피는 시기, 열매 색과 형태 등은 식재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시간이 만들어 내는 찰나의 경관은 그 시간과 장소에만 존재하는 아쉬움이 되지만 그래서 감동을 배가시킨다. 그 외에도 상록성과 낙엽성, 1년생과 다년생 등 생육 습성, 단풍과 낙엽과 같은 계절 변화(온도)에 대한 적응 등 식물 고유의 특성은 조경가의 공간을 다른 분야 디자이너의 공간과 구분하게 한다.

 

환경과조경 430(2024년 2월호수록본 일부


박주현은 서울여자대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더 올림 플라워와 가든 스튜디오(The Ollim Flower&Garden Studio)에서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정원을 중심으로 실내외 공간의 기획, 설계, 시공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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