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컵 차기’가 유행이었다. 조경학과가 있던 이공관 앞마당과 지금은 조경학과 건물이 된 도서관 앞이 전용 경기장이었다. 커피 자판기의 일회용 컵과 두 명 이상만 모이면 가능한 실내외 구분 없는 레저였다. 한 번은 이공관 옆에 위치한 공학관에서 건축학과 교수님께서 내려다보고는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동아리 선배에게 매일 컵 차기하는 저 키 큰 여학생은 대체 누구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나의 족구 기본기는 그렇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져졌다. 졸업 후 다니던 건축사무소는 잠원동 고속도로 완충 녹지 변에 위치해서 후면에 넓은 주차장과 공터가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농구를 하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종목이 족구로 바뀌었다. 서브를 받거나 최전방에서 공격을 하는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패스로 공격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역할을 주로 했다. 야근을 할 때는 저녁 먹은 후 자동차 라이트를 켜 놓은 채 야간 경기도 했다. 비 온 직후 약간의 물웅덩이가 있던 어느 날 오전이었다. 일하다 창문을 보니 우리 팀 주장이 롤러로 땅을 메우고 있었다. 그의 진지한 동작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우리는 질척거리는 땅에서 신발을 망쳐가며 그날도 어김없이 족구를 했다. 그러다 앞 사무실이 이사 가는 바람에 비게 되자 그곳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꽤 괜찮은 전용 족구장이 되었다. 실내에서 족구해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되려나. 실내 족구는 공을 가지러 뛰어다니지 않아도 될 뿐더러 벽과 천장을 활용해서 훨씬 다이내믹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천장의 전등이 모두 깨지고 창문까지 깨지는 바람에 우리의 실내 족구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오로지 족구하기 위해 출근하는 것 같았던 그 철없던 과장님들, 지금 모두 잘 계신지 궁금하다. 족구 개인사가 길어졌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하고 족구한 이야기를 왜 길게 하는 지 나는 이해해야 한다.
영화 ‘족구왕’(2014)은 주인공 만섭이 군대에서 족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족구를 위해 태어난 듯한 체격을 가진 만섭은 사단장배 족구 대회 우승패를 가슴에 안고 제대한다. 다니던 대학교에 복학하자마자 제일 먼저 족구장을 둘러보지만 그곳은 군대간 사이 테니스장이 되었다. 변한 곳은 족구장만이 아니다. 기숙사 선배는 스펙에는 관심 없는 만섭에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며 공무원 시험 준비해라”라고 다그치고, 조교는 족구장을 찾는 그에게 “족구 같은 소리나 한다”라며 비아냥거린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