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심부, 고층 빌딩 숲 사이로 노란 파라솔이 펼쳐지고, 차도와 철로 위 지상 17m 높이의 고가에 녹색인조 잔디가 길게 깔렸다. 시민들은 파라솔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나눠 먹고 몇몇은 선베드에 누워 한낮의 오수를 즐기기도 했다. 잔디 위에서는 DJ가 틀어주는 흥겨운 비트의 음악이 울렸다. 영상 24도의 초여름 날씨에 고가 위에 설치된 커피 매대와 아이스크림 트럭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사갔다. 축제와 같은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피크닉이 벌어졌다.
미리 체험하는 서울역 고가의 미래
지난 5월 10일 서울 중구 서울역 고가 도로에서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역 고가 시민 개방 행사 ‘고가에서 봄’이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는 지난 2014년 10월, 44년 만에 보행자에게 개방되었던 첫 번째 시민 개방 행사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되었다. 이날 고가에는 폭 6m, 길이 400m의 인조 잔디밭이 조성되고 그늘막, 매트, 의자 등이 비치되어 앞으로 공원으로 조성될 고가의 모습을 시민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연출되었다.
다양한 부대 행사도 마련되었다. 남대문시장 쪽에서 진입하는 구간에는 서울역 주변 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한 사진전이 펼쳐져 서울역 고가에 얽힌 역사를 돌아볼 수 있게 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고가 중앙 구간에서는 인디밴드 12팀의 공연이 열려 오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또한 전 구간에 총 4개의 ‘할말 부스’를 설치해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과 이날 행사에 대한 소감을 남길 수 있도록 했다. 시민들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었다.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동 도서관이 고가 위에 올라 왔다. 시민들은 1만 권의 도서를 비치한 이동 도서관에서 햇살을 즐기며 책을 읽는 여유를 만끽했다. 한편, 서울역 고가 아이디어 시민공모전에서 1위를 한 ‘도보환승센터’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도입해 운영하기도 했다. 서울역 고가 주변을 관광 동선으로 만들어 안내자와 함께 걸으며 골목의 역사와 문화를 돌아보는 ‘산책버스’를 두 가지 코스(남산방향, 청파동 방향)로 선보였다. 만리동 초입과 연결되는 구간에서는 금호타이어에서 지원하는 가족 화분 만들기 체험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체험에 참여한 시민들은 한 손에는 꽃 모종을 다른 손에는 삽을 쥐고 저마다 개성 있는 화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울역 고가의 전 구간은 행사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날 행사에는 총 4만8천여 명(서울시 추산)의 시민들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1만3천여 명이 다녀간 지난 2014년 첫 개방 행사 때보다 약 3배 이상 많은 인원이다. 12시께 고가를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역 고가는 도심 속 새로운 휴식 공간이될 것”이라며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의 긍정적 효과를 홍보했다.
고가 아래에선 ‘불통 시장’ 외쳐
한편 남대문 시장 쪽 고가 아래에서는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대한 대규모 반대 시위 집회가 열렸다. 서울 남대문시장 상인회와 중구 일대 주민 약 150여 명이 모여 공원화 사업 반대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소통 시장인 줄 알았더니 불통 시장”이라며 반대 구호를 외쳤다. 이날 반대 시위에 참석한 이충웅 대체도로건설 범시민대책위원장은 “우리의 입장은 제일 먼저 대체 도로를 확보하라는 것”이라며 “대체 도로가 확보되어야지만 지역 경제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역고가 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은 하루에 약 4만6천여 대로 추산된다. 따라서 고가 도로가 보행자만 통행할 수 있는 공원으로 바뀌면 남대문 시장으로 유입되는 동서간선 차량이 우회할 수밖에 없어 교통체증이 유발되고 이에 따라 손님이 줄어 지역 경제가 침체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남대문 상인들의 우려에 대해 박원순 시장은 이날 “서울역 북부 역세권 개발을 빠르게 추진하겠다. 코레일 및 여러 민자 사업자들과 협의해서 대체 도로도 함께 만들겠다”며 새로운 경제 활력을 창출하고 교통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반대하는 상인과 주민들은 박 시장이 등장하자 항의의 표시로 고가도로에서 행진을 하려다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서울역 고가 행사에 참여한 동대문구 주민 최희금 씨는 “서울역 고가 위에 올라와서 보니 사방이 탁트여 있어서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서울의 중심지인데다가 주변에 역사 깊은 건물과 랜드마크와 연결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 올 수 있는 도심 휴식처가 될 것 같아 이 사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았다”면서도 “옆에서 상인들이 시위하는 것을 보고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그들이 왜 이 사업에 대해 반대하는지, 사업이 시행되면 얼마만큼의 피해가 생기는지, 해결 방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도 이 자리에서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행사에 참가한 소감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