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쇼space show’라는 이름의 다양한 천체 현상이 지구인의 눈앞에 펼쳐진다는 뉴스를 간간히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천체 현상은 자주 일어나지도 않고, 관측환경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날씨가 좋아도 한 지점에서 길게는 수 시간, 짧게는 몇 분에 불과한 시간동안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희소성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이유이지 않을까. 지난 2월 말, 네덜란드의 라인Rijn 강과 에이설IJssel 강 사이에 위치한 베스터보르트Westervoort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빛의 쇼가 펼쳐졌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두 시간 반. 4헥타르의 땅에 펼쳐진 물빛이라는 뜻을 가진 푸른빛의 양탄자, ‘바터리히트Waterlicht’가 바로 이번쇼의 주인공이다.
150분의 마법, 바터리히트
바터리히트를 디자인 한 단 로세가르데Daan Roosegaarde(스튜디오 로세가르데 대표)는 “최신 LED 조명 기술이 접목된 빔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가상의 홍수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며 “제방 위를 따라 걷다가 방수로 flood channel에 다다르면 마치 심해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에 젖어들 것”이라고 이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바터리히트에 적용된 기술은 기본적으로 ‘스모그 프리파크Smog Free Park’ 프로젝트에 사용했던 방식과 동일한 것으로, 빛이 공기 중의 입자에 부딪혀 산란되는 효과를 발전시킨 것이다. 조명과 날씨 그리고 시간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광대한 대지 위에 펼쳐진 푸른빛은 다수의 LED 조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중첩시킨 강력한 세기의 빔이 산란된 것이다. 대상지 주변부를 따라 여러 개의 프로젝터를 놓아 기기마다 뿜어내는 빔이 공기 중에서 서로 교차하도록 했다. 프로젝터에 설치된 전동기는 주기적으로 빔의 방향을 변화시켜 이러한 효과가 더욱 배가되도록 했다. 조명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날씨와 시간이었는데, 땅과 수면의 온도 변화에 따라 수증기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대에 맞춰 빛을 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저녁 7시 반부터 열시까지, 단 두 시간반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 이전은 충분히 어둡지 않고, 그 이후에는 공기 중의 수증기 입자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사회적 디자이너 로세가르데
바터리히트를 만든 로세가르데는 패션에서 건축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디자이너다. 그는 ‘일단 저지르고, 직감을 따를 것Just do it and follow your intuition’이라는 그의 신념처럼 자유분방하고 직관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법과 소재를 적용한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그럼에도 바터리히트처럼 로세가르데의 작품을 설명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빛’이다. 그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아무런 조명이 없는 도로를 달리는 야간 주행 차를 위한 녹색 빛의 ‘글로잉 라인스Glowing Lines’, 자동차의 움직임에 반응해 빛이 나는 조명을 설치한 ‘스마트 하이웨이Smart Highway’, 오래된 암스테르담 중앙역의 전면부를 무지갯빛 디스플레이로 새롭게 단장한 ‘레인보우 스테이션Rainbow Station’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세련된 빛의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로세가르데는 자신의 작업을 ‘시적 테크놀로지technopoetry’라 부르며,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단순히 예쁜공간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한다. 최첨단 기술의 적용과 인식의 변화라는 두 가지 요소 사이를 오가는 작품을 선보이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가 ‘2015년 네덜란드 100대 친환경 리더’의 5위권에 오르고,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창조적 변화를 이끄는 100대인사’에 선정되기도 한 데에는 디자인을 통해 사회적 공헌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목표 의식이 있다. 그렇다면 이 푸른빛의 양탄자는 어떨까?
대지 예술, 그 이상의 메시지
이번 프로젝트에서 파트너십을 구성한 라인 강과 에이설 강을 관리하는 수자원협회의 헤인 피에페르Hein Pieper 회장은 작년 발간된 OECD 리포트를 언급하며, “네덜란드의 제방 설계와 시공 능력의 수준은 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래서인지 네덜란드 해안가를 둘러싼 제방 너머의 물이 갖고 있는 파괴적인 힘을 인지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한 대지 예술로서 기획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바닷물을 막고 있는 제방에는 문제가 없다. 국민의 인식 부족이 이러한 홍수 예방 문제에 있어 가장 큰 적”이라며 사람들에게 네덜란드의 상당 부분이 해수면 아래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물에 잠긴 도시를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했으며, 바터리히트는 5월 초 이 프로젝트의 국가적 파급력을 눈여겨 본 ING 그룹과 라인 박물관Rijnmuseum의 후원을 받아 암스테르담 박물관 광장Museumplein Amsterdam에 설치되기도 했다. 피에페르 회장은 “물의 예술(제방)에 대한 관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갖는 의의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사람들이 하루 동안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정보의 80%이상이 이미지 기반의 시각적인 효과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우주쇼에 등장한 여러 행성과의 눈 마주침이 천문학적 지식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바터리히트는 수천만 원 규모의 광고나 인터넷 배너보다 이러한 직간접적 경험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