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양해를 구한다. 인용이 제법 길다. 하지만 그만큼 흥미진진하다.
“월요일 아침마다 하는 오피스 전체 미팅이 끝나고 회의실을 나가려는 사장님을 불러 세운다. MAC 공모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지 않느냐고. MAC? 표정을 보아하니 맥도날드 빅맥을 생각하는 눈치다. 이메일로 온 공모전 초청에 대해서 설명하니 그제야 알아듣는다. … 전화할 곳이 있어 일어나야겠다는 사장님에게 회사 차원에서 공모전을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면 개인적으로라도 참가하겠다고 말한다. 업무 외 시간과 주말을 이용하여 작업을 할 테니 회사 일에는 지장을 주지않겠다. 그러니 양해해 달라. 바빠서 일어나야 한다는 사장님이 가만히 있는다. 이 자식, 따로 공모전을 한다면 회사 일에는 소홀해질 게 뻔한데, 그렇다고 개인 시간에 한다는 공모전을 못하게 할 명분도 없고. 말투를 들어보니 목숨 걸고 할 기세인데, 혹시라도 좋은 결과가 있으면 공식적으로는 내가 프로젝트 매니저이니, 결과가 좋으면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한데…. 표정을 보고 짧은 순간에 대강 이런 생각이 스쳐갔으리라고 짐작해 본다. 매우 심사숙고를 한 듯한 표정으로 사장님이 입을 연다. 너의 열정을 알겠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의미도 잘 알겠다. 그렇다면 SWA의 이름을 걸고 한번 나가보자. 대신 알다시피 다른 회사 프로젝트들도 바쁘고 큰 공모전을 치른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지원은 거의 못해준다. 너를 믿을 테니 이 공모전을 함께 치뤄보자. 아 참, 그리고 참가 등록할 때 내 이름으로 등록해야 하는 거 알지? … 말은 그럴싸하지만 너 혼자 잘해보라는 의미다. 물론 업무 외 시간을 주로 이용해서. 시작은 미약하지만, 일단 회사 이름을 걸고 참가한다는 것은 큰 성과다.”
『조·경·관』(임승빈 외 17인 공저, 나무도시, 2013)이란 책에 실린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조경 경연 이야기 - 행정중심복합도시 국제 설계공모 참가하기’의 한 대목이다. 이렇게 시작된 설계공모 참가기는 팀 구성, 작품 제출, 결과 발표(낙선), 그 이후의 에피소드까지 공모전의 전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해 놓았다. 교정을 보면서 몇몇 대목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이런 대목이다. “문제는 팀원이다. 그래픽 작업은 물론이고 디자인 개념을 만드는 단계에서도 한명 보다는 두 명이 낫다. 저녁 때 오피스 전체에 이메일을 보내본다. 디자이너로서의 역량과 아이디어를 시험해 볼 도전적인 공모전이 떴다. 한국에 센트럴 파크를 능가하는 규모의, 어쩌면 조경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도 있는 공원이 만들어진다. 그러니 우리 함께 하얗게 밤을 불살라보자꾸나. 다음날, 답 메일은 한 통도 오지 않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일단은 나 혼자 해야겠다.” 그러다가 가끔은 이런 식으로 잡지에 공모전 이야기를 풀어내면 어떨까 하는 궁리를, 아주 잠깐 해보았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맹랑한 상상을 발칙한 공상으로 발전시키게 된 건 카톡방이 발단이 되었다.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가 막 발표된 때 였다. 9월 4일에 당선작이 발표되니 10월호에 지면을 잡아 놓아야겠다는 둥, 이런 공모는 제대로 된 그림보다 강력한 아이디어 한 방이 필요하다는 둥의 뻔한 이야기부터, 서울시에서 공모가 쏟아지는 배경에 대한 정치적 분석까지 흘러갔다가, 코엑스와 한전 부지를 중심으로 한 잠실 일대의 잠재력에 대한 난상토론을 거쳐, ‘설마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를 못 보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건 아니겠지’ 같은 난데없는 취미 생활에 대한 걱정까지, 그야말로 두서없는 대화가 오고갔다. 그러다 누군가 ‘의외로 제출도서가 많지 않다’는 점에 집중했다. 그러자 ‘공개 국제 아이디어 공모’란 공모 방식에서 ‘공개’와 ‘아이디어’란 두 단어가 유독 눈에 도드라졌다. 지나가는 농담으로 흘러가버릴 수 있었던 ‘한 번 해볼까’란 멘트가 본격적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한 건, 앞서 인용한 김영민 교수의 글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에디터의 자전거 출근기’의 뒤를 잇는 후속 기획으로 ‘에디터의 설계공모 도전기’를 한 번 해봐?
그래도 기본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경을 전공하고 지금은 부동산학과 교수가 된 A와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이른바 ‘공모의 여왕’ B를 섭외하는 것으로 팀 구성을 완료했다. 일단 김영민 교수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 세팅된 것 이다. 물론 그 전에 단체 카톡방부터 만들었다. 카톡방 이름은 ‘Project C’로 정했다. 컴피티션Competition의 약자이기도 하지만, 챌린지Challenge의 의미도 담았다. 킥오프 미팅 날짜도 정하고, 각자의 미션도 느슨하게 나누기로 했다. 내가 맡은 건, 공모와는 하등 상관없는 잡지에서 어떤 점을 부각시킬 것인가였다. 그래서 우선 계약서를 먼저 작성하자고 했다. 파주출판도시의 건축주와 건축가들이 맺었던 ‘위대한 계약서’를 카피하여 ‘상징적인 계약서’라는 타이틀부터 뽑았다. 설계공모에서 컨소시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막상 제대로 계약을 맺고 작업을 하는 사례가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문제점을 에둘러 짚어보고자 한 것이다. 계약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1/n’을 바탕으로 하되, 합리적으로 기여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삼았다. 비용 역시 ‘1/n’의 원칙에 따라 부담하기로 했다. 만약 실제로 참가 등록을 하고 아이디어 공모안을 준비했다면, 이 글은 10월호에 수록되었을 것이다. 결과는? 과연 참가에 의의를 두는 수준을 벗어났을까? 지금도 가장 궁금한 대목이다.
결국 참가 등록 마지막 날까지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우리는 ‘Project C’를 없던 일로 되돌렸다. 만약 진행했다면, 에디터들에게 적지 않은 공부가 되었을 것이고, 설계공모의 프로세스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한두 가지 유의미한 이슈를 도출해내지 않았을까 싶지만, 설계공모 도전은 자전거 출근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만큼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10월호에 한 꼭지가 펑크 났으니, 이제 정신 차리고 그걸 때울 생각이나 해야겠다. 상금을 받아서 북유럽으로 다 같이 답사를 가자던 어느 기자의 마음도 달래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