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다양성이란 무엇인가
눈을 감고 한 번 떠올려보자. 지난 몇 년간 경험한 도시 중 ‘다양성의 감각’을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는 가로 환경은 어디인가? 다양성의 대상은 눈에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물리적 대상일 때도 있고 사람이나 커뮤니티, 혹은 문화 환경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최근 뉴욕을 다녀온 독자라면 태피스트리tapestry처럼 촘촘하게 짜인 맨해튼 도시 블록의 한 가로를 떠올릴 수도 있고, 어떤 독자는 업종 분화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 신사동 가로수길과 세 로수길의 교차점에서 만난 십인십색의 사람들을 상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 어느 곳을 떠올렸든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해당 가로에서 경험한 ‘무엇’이 그토록 다양하다고 느꼈는가? 나아가 이러한 다양성은 의도적으로 계획된 다양성인가, 아니면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특성인가 도시 공간에서 다양성이란 한 지역 내에 서로 다른 성격의 건축물과 가로, 용도와 사람, 서비스나 지역 문화가 그 고유성을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한 채 섞여 있는 특질이다. 여기에는 다양성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에 대해 접근하고 누릴 수 있는 ‘물리적 경험’의 차원과 함께 차이에 대한 관용이나 상호 존중 같은 ‘비물리적 인식’까지 포함된다(그림1, 2). 나아가 한 장소에서 누릴 수 있는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이나 이국적인 행태가 오랜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는 전통적 환경과 대비를 이룰 때도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차이와 다름의 관점에서 보면 다양성은 이해하기 쉬운 개념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나 상호 존중이 다양성을 위한 전제 조건이긴 하지만, 때로는 한 커뮤니티가 외부로부터의 영향에 대해 상당 기간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즉 수용하기 어려운 차이를 문화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에—고유한 문화가 한 장소에 온전하게 정착하고 결국 지역 다양성의 한 요소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커뮤니티 일부가 문화적 동질성을 갖는 모집단으로부터 분리·독립함으로써 다양성이 시간에 따라 분화되고 공간적으로 확산되는 경우도 있다.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실제 도시 공간에서 다양성의 감각을 일으키는 요소가 무엇인지 좀 더 따져보자.
다양성의 세 가지 요소: 물리적 환경, 사회적 특성, 재화·서비스의 종류
많은 도시 이론가는 도시의 물리적 환경, 사회적 특성, 그리고 제공되는 서비스나 재화의 종류가 다양성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라고 본다.1 첫째, 물리적 환경의 관점에서 작게는 가로의 표면을 덮고 있는 간판이나 건축물 크기, 건축 유형과 용도, 지어진 시기나 스타일, 외장재의 특성을 비롯해, 크게는 가로의 물리적 폭과 연속성, 필지 크기의 균질성과 도시 블록의 크기 등이 다양성과 단조로움의 차이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이를테면 용도와 건축 유형 측면에서 보았을 때, 홍익대학교 입구 주변은 1957년 토지구획정리사업 대상지로 지정된 후 1960~1970년대에 걸쳐 비교적 균질한 저층 주거지로 조성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를 전후로 상업·문화·소비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다양한 비주거 용도와 형형색색의 건축 스타일을 접할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그림3). 그렇지만 상업화가 진행된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언제나 더 높은 수준의 다양성을 보인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같은 홍대 입구 지역이지만 도시 블록 전체가 상업화된 서교동에 비해 기존의 모습이 유지된 단독 주택 단지 환경에 게스트하우스, 공방, 제과점, 이자까야가 골목 구석구석 흩뿌려지고 있는 연남동에서 더 풍부한 다양성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2.
둘째, 다양성의 또 다른 요소인 사회적 특성은 도시 공간의 소비자이자 문화의 생산자인 사람들이 나타내는 문화적·사회적·경제적 차이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거주자의 소득 수준, 직업군, 연령대, 인종과 국적, 언어와 취향이 다채로운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그림4). 반면 도시 변화에 따라 이러한 사회적 특성의 차이가 점차 옅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국내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1~2인 가구를 대상으로 민간 주도의 소형 주택 공급을 확대하려는 ‘도시형 생활 주택’ 정책이 2009년 도입되었다. 그런데 하나의 주택 유형이 일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지어지면서 짧은 시간에 해당 지역의 사회 구성원이 교체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를테면 강서구 화곡동에는 2014년 인허가 건수 기준으로 서울시에 지어진 전체 도시형 생활 주택 중무려 9.1%에 해당하는 1,718세대가 들어서게 되었다.3 이로 인해 화곡동의 20~30세대 1~2인 가구, 특히 젊은 직장인 부부, 전문직종 1인 가구, 취업 준비생의 비율이 갑작스럽게 늘어났으며 이는 해당 지역 거주자의 연령대나 직업군이 오히려 유사해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