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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늙은 근대성과 도시 공공성의 스펙터클
  • 환경과조경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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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시대 세운상가라는 거대한 구조물로 인해 도시의 동서축은 단절되었다(사진제공: 서울시).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해 공공 공간을 다루는 전략적 태도는 무엇인가?

서울시는 지난 6월 16일 제출된 82개 작품 중에서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 당선작으로 이_스케이프(대표 김택빈)와 장용순(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상구(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팀이 공동으로 제안한 ‘현대적 토속Modern Vernacular’을 최종 선정했다. 이번 공모전에서 요구한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 공간 설계는 세운상가의 민간 소유 영역을 제외하고 서울시가 소유권을 갖고 있는 공중 보행 가로인 데크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당선작을 중심으로 설계안을 들여다보자. 당선작, 2등작, 그리고 3등작은 일견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한 인식의 차이를 갖고 있다. 애매모호한 가치를 설정하거나 경직된 건축화의 태도로 일관한 안들과 달리 당선작은, 세운상가를 둘러싼 공간 담론, 세운상가에 대한 공적 개입의 타당성, 세운상가 내부목소리에 대한 이해, 그리고 도시와 삶의 흔적에 대한 존중이란 네 가지 측면에서 볼 때 확실한 비교우위를 갖는다.

‘Modern Vernacular’ 즉 ‘현대적 토속’이란 제명이 대변하듯이 당선작은 공공공간에 개입함으로써 세운상가를 넘어서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좀 더 큰 틀에서의 도시 역사, 공간 구조와 장소성을 보완하거나 복원하는 데 가치를 부여했다. 당선작의 보행 데크 활성화는 크게 보면 남북축의 기능에 의존한다. 세운상가의 동서축 연결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느슨하다. 개발 시대 세운상가라는 거대한 구조물로 인해 단절되었던 동서 양축과 기존 도시 조직의 연결에 대해 여백과 흐름의 가능성을 남겨 두는 것이 오히려 적극적인 해결이 될 수 있다고 본 점은 인위적 개입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있어서 좋다. 남북을 잇는 보행 데크를 복원하여 구체적인 프로그램 공간을 삽입하고 세운초록띠공원 자리는 종묘와 연결되는 경사진 광장으로 전환하는 제안이 남북축 보행 데크 활성화의 주된 내용이다. 이렇듯 남북과 동서축에 대해 서로 다른 언어로 접근한 것 역시 도시 구조의 역사와 장소성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 듯하다. 당선작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세운상가의 공공 공간에 대한 개입은 여전히 개념과 해석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는다. 왜냐하면 거기엔 세운상가 내부의 치열한 목소리가 들리기 않기 때문이다. 세운상가를 소유에 따라 서로 다른 두 개의 주체로 분리해서 접근하다 보니 복잡하게 얽힌 내부의 목소리를 공공이 소유한 공공 공간으로 이끌어낼 수 없었다. 이는 결국 세운상가 활성화를 ‘밖에서부터 안으로’, 즉 추진하기 쉬운 곳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서울시의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가 공공 공을 다루는 전략적 태도다. 본질이 문제의 핵심을 우회하고 있는데, 세운상가는 과연 활성화 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든다.


빅 플랜을 넘어서기 위한 공공 공간 개입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확보될 수 있을까?

세운상가를 개발 시대의 빅 플랜Big Plan의 상징이라고 보자. 시대가 바뀌고 도시적 상황이 변화했다. 가장 크게는 세운상가를 지탱해 온 도시 산업 생태계의 몰락을 들 수 있다. 이제 다른 가치로 세운상가의 시대성을 읽어 내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야 한다면, 가장 우선해야 할 태도와 접근이 과연 공공 공간인 데크의 활성화이어야만 했을까?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울시가 내세운 세운상가 보행 데크 복원이 도대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봐야만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거대 스케일의 보행 데크가 완성되면 종묘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보행 녹지축이 형성된다고 한다. 서울 시민들이 도심에서 남북으로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고도 한다. 더 큰 틀에서 보면 보행 데크를 통해 연결된 남산은 향후 용산과 한강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곧 종묘, 북악산, 삼각산을 통해 백두대간이 한강까지 이어지는 생태계의 중요한 연결 통로의 회복을 상징하는 역할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환상은 우리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리는가?

 

 

이영범은 1986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영국 AA 스쿨 대학원에서 도시 공간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는 시민단체인 도시연대에서 커뮤니티디자인센터를 설립해 주민참여 디자인을 통한 마을만들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경기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저서로는 『도시의 죽음을 기억하라』, 『뉴욕 런던 서울의 도시재생 이야기』(공저),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다』(공저), 『건축과 도시, 공공성으로 읽다』(공저), 『사회적 기업을 이용한 주거지 재생』(공저), 『새로운 도시재생의 구상』(공저), 『우리, 마을만들기』(공저), 『도시 마을만들기의 쟁점과 과제』(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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