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서재에 쓸 책을 고민하다가 나의 서재를 확인했다. 독서 패턴을 알아보기 위함이랄까. 디자인과 관련해서는 형태와 도구에 대한 실험 또는 기술에 대한 관심에 따라 구매한 책들이 대부분이었고 2000년대 나온 책이 상당수였다. 고전으로 분류할 만한 건 찾기 어려웠다. 항상 새롭다는 것들 중에 이상하거나 특이한 것이 좋았고, 떠오르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업과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집중했다. 사들이는 책도 마찬가지였고, 대개 화려한 이미지가 가득했다.
두 달 전쯤 그달의 눈요기를 책임져줄 책을 찾고 있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나의 검색 습관에 따라 이런 저런 책을 추천했는데, 그날은 까만 바탕의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폰트로 제목만 달려 있는, 처음엔 ‘이게 뭔가 싶은’ 책을 추천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이미지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출판사 로고에 불과했지만, 『디자이너란 무엇인가』(노먼 포터, 최성민 역, 작업실유령, 2015)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랫입술을 깨물게 했다. ‘그러게. 내가 좋아한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그게 뭐지’싶은 거다.
충격이었다. 노먼 포터Norman Potter가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논하는 그 독특한 방식은 그동안의 환상을 처참히 무너뜨렸다. 힘든 일이라는 건 질릴 만큼 들어왔지만, 그럼에도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 자체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 10대 청소년이 아이돌에 갖는 환상처럼 말이다. 내지의 절반 이상을 실무에서의 디자인 노동 과정과 그 고뇌에 할애하고, 그 부분을 짙은 주황색 내지에 담아낸 책의 편집 방식부터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왔다.1 “디자인작업의 10%는 영감에 의존하고 나머지 90%는 고된 노동, 즉 일종의 예술적 업무행위로 이루어진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그렇다는 거지, 책의 형식과 메시지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넌 아무것도 모른다.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미친 짓임에도 이 책에 언급된 내용을 잘 해낼 수 있으면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 더 나은 디자인 교육(수습)의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한다. 찾아낸다 해도 넌 웬만하면 실패할 것이다.’ 자주 들어왔던 이야기 아닌가?
처음 이 책을 받아들면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한 책으로만 읽힐 수 있다.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때처럼 가끔은 논점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기도 하지만, 결국엔 끊임없이 디자인의 사유와 산물에 숨은 (노동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나아가 디자인을 공부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단순히 도면 위의 스케치 아티스트가 아닌 실천적 디자인을 갈구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직업적’ 소명을 열렬히 설명한다.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라고 말이다.
두 달간 거의 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이런 저런 생각을 끄적이고 밑줄을 그어대어 지저분해진 책을 다시 펼쳤다. 밑줄 친 부분은 “믿지 말아야 한다”, “~하기 어렵다”, “바람직하지 않다”, “착각이다”, “~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로 안된다”까지 상당수가 부정적인 서술어로 마무리 짓는 문장이다. 얼마 전 나를 가르쳤던 교수가 한 말이 오버랩 되었다. “어쩌면 학교에서는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 쉽게 갖게 되는 (변화를 이끌겠다는 식의) 영웅 심리를 버리지 못하거나 마음 한 구석에 숨겨 놓는 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쉽게 스스로를 포기할지 모른다.” 포터는 그런 영웅 심리를 끌어내리려고 한 것일까? 끊임없이 겸손의 태도를 갖길 바라며 학교에서 배운 건 디자인의 몇 가지 기본 사항을 확인한 데 지나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 1년 간, 타협과 양보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고백(?)’하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를 만날 수 있었다. 같은 시기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담당 에디터로 있으면서 이 연재를 ‘그들이 설계하는 법: 화려한 모습 편’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기획 의도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초년생 디자이너와 학생을 주요 독자층으로 한다’는 것이긴 하지만, 실패한 경우보다는 잘된 프로젝트나 남에게 보여주기에 좋은 경우를 보여주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던 건 아닌지. 또 주관적인 편집을 거친 이야기에 현실을 잘 모르는 목표 독자층은 글로는 표현될 수 없는 (90%의) 노동을 배제한 채, (10%의) 영감과 화려함만을 읽어내는 것은 아닌지. 지나친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질문’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60세를 훨씬 넘긴 어느 유명 디자인 스쿨의 교수를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두 시간의 인터뷰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이 책에 대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공식적인 자리였음에도 결국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서, 그 갈피를 잡는데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던진 “디자이너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나도 모른다. 그럼에도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라고 짧게 답할 뿐이었다.
그때서야 ‘요약: 학생은 디자이너이다’라는 8장의 제목을 시작으로 조각난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는 듯했다.2 “우리를 기다려 주는 역할 따위는 없다. …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되묻는 … 학생이 확신할 수 있는 바가 하나 있다면 … 창의적 도전이 어떤 속성을 띨지는 닥쳐 보아야 알지, 예견할 수는 없다 … 단지 ‘근본 원리’를 바탕으로 적절한 결정을 내리려는 태도, 직업윤리에 관해 진솔하고 현실적인 태도를 스스로에게 촉구할 뿐이다.”
포터가 책의 첫 문장으로 “당신은 제도판 위의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 조직하는 사람이다”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말을 인용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본문에서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던 저 일련의 조각들을 어떤 순서로 읽느냐에 따라 실망과 좌절을 느끼기도 했으며, 희망과 도전의 실버라이닝silver lining(밝은 희망)을 찾아낼 수도 있었다. 포터와 그 ‘60대 교수’가 쉬운 답을 기대하지 말 것을 주지시키면서도 한 가지에는 분명한 답을 제시했다. ‘정신과 태도가 기술과 도구를 앞선다.’ 즉 유행을 타지 않고 행동의 중심이 되는 소명 의식과 직업적 윤리의식을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읽어낸 걸까.
몇 날 며칠 이어진 야근에 지친 어느 인턴 사원은 실무를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이가 고작 디자인 고전 하나 읽고 내뱉는 ‘끄적임’에 불과한 외침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띠워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당신의 서재 또한 10%의 화려한 기술로만 가득 차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아무튼 저자가 강조한대로, 이 책에 담긴 그 어떤 권고나 처방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현대 운동의 정신과 손을 맞잡고 싶다 해도, 그 정신이 그냥 찾아와 주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 밖에 나가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