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이 심해도 너무 심해.” 내가 아플 때마다 이마를 짚어주던 그녀의 진단이다. 좀 억울한 점도 있지만, 수긍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는 계속 아프다고 징징거릴 뿐이다. 그러니 “심하게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을 피우는 것”이라는 그녀의 진단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단, 투덜거리며 입술을 쭉 내민 채말이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두 달이 멀다 하고 병원을 들락거렸다. 먼저, 허리에 이상 신호가 왔다. 정확히는 오른쪽 허벅지 부근이었다. 잠을 잘못 자서 그러려니 했는데,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도 통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심해졌다. 걷는 게 불편할 정도가 되니 병원을 안 갈 재간이 없었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도 ‘그 가기 싫어하던 병원에 왔구나’라는 생각 따위를 할 여유가 없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그저 내 순서가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앉거나 서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아프니, 다른 생각은 모두 사치였다. 의사는 허리 디스크가 의심된다며 물리치료와 바른 자세, 스트레칭 등의 처방을 해주었다. 허리에 문제가 생기면 허벅지나 종아리 부근이 아프다는 점을 일러주었고, 상태가 더 나빠지면 수술을 할 수도 있다며 겁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리치료를 받고 사무실로 돌아와 가장 먼저 푹신한 의자를 딱딱한 의자로 바꿨다. 1시간에 한 번 정도 잠깐이나마 일어서서 일을 보았고, 의자에 앉아 있을 때도 나름 자세에 신경을 썼다. 돌아가는 코스이지만 조금 더 걷는 쪽으로 출근길 노선도 바꿨다. 그렇게 허리는 안정을 찾아갔다.
두 번째 병원 방문은 예기치 않은 사고(?) 때문이었다. 여름 휴가를 맞아 물놀이를 할 때였는데, 젖은 슬리퍼를 신은 채 계단을 내려가다가 스텝이 꼬이면서 미끄러졌다. 넘어지는 그 찰나의 짧은 순간에 ‘아, 워터 슈즈를 신고 올 걸’이라는 후회를 했다. 이미 같은 장소에서 반나절 동안 한두 번 미끄러질 뻔한 경험을 했던 터였다. 슬리퍼를 벗고 일어나서 몸 상태를 확인하니,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오른손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에 약간 피가 나고 부은 정도였다. 별로 다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자, 걱정이 썰물처럼 멀어져갔지만 부끄러움이 집채만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쪽팔림은 순간일 뿐이니까.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짐짓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파라솔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리곤 밴드를 붙이고 더 놀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휴가가 끝나고도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약국에서 산 연고의 효능을 믿었고, 시간의 치유력을 신봉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 붓기가 전혀 빠지지 않고 더 심해졌다. 게다가 손가락 마디 근처가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나흘 째 되는 날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인대 손상과 골절이라는 진단을 내린 후, 절대로 손가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반 깁스를 해주고는 붕대로 칭칭 동여맸다. 태어나 처음 해 본 깁스였다. 그 이물감과 불편함이란 상상 이상이었다. 두 달이 흐른 지금 네 번째 손가락은 완치되었는데, 다섯 번째 손가락은 여전히 붓기와 통증이 남아 있다. 깁스를 한 상태에서는 키보드 타이핑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 사무실에 있는 동안 깁스를 풀고 지낸 탓이다.
세 번째 병원 방문은 고열을 동반한 몸살, 네 번째는 심한 치통 때문이었다. 작년에도 몸살을 앓은 적은 있지만 고열이 난 적은 거의 없었다. 또, 가장 가기 싫어하는 병원이 치과이지만 치통이 심해지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치아의 신경을 강제로 긁어버리는 고문이 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떠올랐다. 통증이 더 심해지자, 머리보다 빠르게 손가락이 움직여서 어느새 나는 치과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 의사와 간호사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치과에는 앞으로 몇 번 더 가야 하지만 치통은 사라졌다. 열도 내렸고 몸살도 나았고 허리도 괜찮아졌다. 네 군데 병원을 찾은 덕분에, 지금은 다섯 번째 손가락에 만 통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올해는 잔소리를 안 해도 알아서 병원을 찾자, 그녀가 한 마디 한다. “진짜 아프긴 아픈가 보네.” 물론 한 소리 덧붙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건강할 때 운동을 하고, 좀 이상하다 싶으면 미리 미리 병원에도 가야지.” 결국, 엄살과 진짜 몸살의 차이는 아픈 ‘정도’에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안부 인사로 이야기의 물꼬를 트게 된다. 그 날의 날씨가 가장 만만한 소재이기 마련이다. ‘요즘 갑자기 쌀쌀해졌죠? 작년부터는 가을이 사라진 것 같아요.’ 같은 업종이라면, 업계의 동향을 포괄적으로 언급하면서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이쪽 경기는 왜 갈수록 어려워지죠’ 질문을 던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여전히 많이 바쁘시죠’
내가 잡지사에 다니고 단행본도 만드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은 첫인사로 이런 말들을 건네곤 한다. ‘요즘 잡지사(혹은 출판사)는 사정이 좀 어때요? 아무래도 예전 같지는 않죠. 종이책 보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어서 걱정이 많겠어요.’ 이런 염려를 접할 때마다, 나는 ‘종이책 시장은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을 경신하고 있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엄살을 떨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엄살이었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엄살의 수준을 넘어섰다. 슬슬 정말로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종이책의 쇠락에 대한 체감의 ‘정도’가 그만큼 달라진 것이다.”
이런 내용의 글을 써내려가다가, 우선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모든 종이 잡지가 동일하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달 한 달 정해진 지면을 채우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종이 잡지의 역할과 지향점에 대한 고민이 느슨해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정에 호소하는 읍소보다는 냉철한 ‘진단’이 먼저 이루어져야 효과적인 ‘처방’도 가능할 터. 독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얼마나 시의 적절하게 제공하고 있는지, 독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고 싶도록 매력적인 잡지를 만들고 있는지를 먼저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등등의 고민이 이어졌다.
엄살로 치부하면 많이 억울하겠지만, 고열을 동반한 몸살과 극심한 치통이 마감 기간에 나란히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달 ‘코다’가 이렇게 뒤죽박죽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병원 방문기 내지는 질병 치유기로 점철된 까닭은…. 어디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여튼 엄살이 심해도 너무 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