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첫 아이 낳은 후 정신없이 살던 두 아줌마가 어렵사리 저녁 나들이를 하게 됐다. 홍상수라는 신인 감독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짧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근처 맥줏집으로 향했다. 종로 연타운은 대학 시절과 변함없이 성업 중이었다. 마침 그날은 성년의 날이어서 그곳은 젊음의 열기로 가득했다. 대학 시절의 추억과 오랜만의 밤 문화에 살짝 들뜬 우리는 맥주를 빨리 많이 마셨다. 그것도 모자라 검정 봉지에 캔 맥주를 넣어 극장에 들어갔다.
시네코아라는 극장은 그런 짓이 살짝 용인되는(물론 근거 없는 주장이다), 소위 ‘아트 무비’로 분류되는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맥주를 몰래 마시기 위해 객석 가운데 있는 기둥 근처에 자리 잡았다. 관객은 몇 명 되지 않았고 영화는 소문대로 충분히 낯설었다. 맥주 탓에 둘 다 화장실을 들락거려서 가뜩이나 낯선 영화의 집중도는 현격히 떨어졌다. 영화가 끝날 때쯤 또 화장실에 다녀온 나는 갑작스러운 살인 사건 장면을 보고 누가 왜 죽인 거냐고 친구에게 물었다.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는데.”
그 후 내게 홍상수의 영화는 얼마 동안 ‘잘 모르겠는’ 영화였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국내외 비평가들은 엄청난 찬사를 보냈으며 논문 주제로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영화는 점점 단순해지는데 평론은 더 어려워지고 심오해졌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첫날 달려가서 봤다. 기존 상업 영화들이 식상해서였는지 ‘아트 무비보기’라는 허세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찌질한 남자가 등장했고, 그들은 항상 술을 마시며 남자는 여자와 자거나 혹은 자고 싶어 했다. 더는 극장에서 맥주를 마시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소주가 마시고 싶었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