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 ‘공간 공감’이 연재 2주년을 맞아 좌담회를 가졌다. 한 달에 한 번씩 대상지를 답사한 후 함께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결과를 수록해 왔기에 ‘공간 공감’ 멤버들에게 좌담회는 무척이나 익숙하다. 하지만 이번 좌담회에서는 특정 대상지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답사를 바탕으로 ‘좋은 공간감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첫 회의 프롤로그 이후 ‘이태원(상업시설 건축물), 무교공원, 성곡미술관, 대학로, 서울시립대학교 캠퍼스, 연남교 교차로, 메리츠타워, 책테마파크, 백남준아트센터, 지앤아트스페이스, 웅진싱크빅 옥상정원, 파주 환경과조경 사옥(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서초동 삼성출판사 공개공지, 합천영상테마파크, 서울대학교 미술관, 양재동 꽃시장, 석파정, 알토사옥 옥상정원, 창덕궁 후원, 박수근미술관, 명동성당, 홍익대학교 중앙광장’까지 총 스물두 곳을 찾았다.
알토사옥은 허승효 회장(알토)의 안내로, 창덕궁 후원은 건축사진작가인 김용관 대표(다큐멘텀)와, 박수근미술관은 정재헌 교수(경희대학교 건축학과)와 함께 둘러보았다.
담당 에디터도 연남교 교차로, 웅진싱크빅, 삼성출판사 등의 답사에 동행했다.
경남 합천부터 강원도 양구까지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차를 몰았던 동력 중의 하나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물론, 함께 답사한 이들이 같은 공간을 얼마나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도 궁금했다. 답사 수첩에 대상지가 하나씩 차곡차곡 쌓이고 공간감과 디테일에 대한 갑론을박이 풍성해지는 동안, ‘공간 공감’ 멤버들은 첫 원고에서 밝혔던 “우리 도시에서 당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외부 공간은 어디인가? 그리고 그곳을 왜 좋아하는가”란 질문의 답을 얼마나 찾았을까? 스물두번의 답사 이야기를 반추하며, ‘좋은 공간감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벌인 스물세 번째 좌담회를 이지면에 옮긴다. _ 편집자 주
“공간의 질이 아니라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느냐가 중요”
정욱주 어느덧 연재를 시작한 지 2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답사한 22곳의 대상지를 하나씩 떠올려보니 특징이나 성격이 꽤 다양하다. 처음에 의도했던 “우리 도시에서 좋은 공간을 발굴하고 이를 설명하는 어휘를 개발하고 축적”하기 위한 목적에서 살짝 비껴간 곳도 있고, “우리의 정주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양질의 공공 공간”을 탐색하겠다는 뜻에 정확히 부합하는 곳도 있다. 그 달의 답사 대상지를 선정하는 과정 자체가 큰 공부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공간감이나 디테일이 뛰어나서 대상지로 선정된 곳도 있고,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는 공간을 꼼꼼히 살펴봄으로써, 역으로 좋은 공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승진 대상지 발굴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 곧 우리 도시 환경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처음 의도와 결이 다른 공간을 둘러본 것이 단점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좋든 아쉽든 다양한 공간을 소개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내년 답사에서도 이기조를 유지할 것인지는 논의가 좀 필요하다.
정욱주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도 있었지만 ‘연남교 교차로’처럼 자연적으로 발생된 공간을 답사하기도 했다. 건강한 비평 기능을 살리고 실제로 설계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디자인된 공간 위주로 답사를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연남교 교차로는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김아연 결국은 좋은 공간감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누군가에 의해 디자인된 곳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곳이더라도 좋은 공간감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다면, 기꺼이 가보아야하지 않을까.
박승진 그렇다. 공간의 질이 중요하다기보다 이야깃거리를 얼마나 품고 있느냐, 공간에 대한 다양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답사한 곳 중에서는”
이홍선 그동안 답사한 곳 중에서는 메리츠타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반전이 있었다. 뭐랄까, 공간 구성 자체가 극적이었다. 그런 점을 보면, 단순히 디자인이 아름답거나 뛰어나다고 해서 공간감이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메리츠타워는 대상지가 안고 있는 레벨 차이라는 한계도 상당히 잘 활용했다. 나무는 그리 수형이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화분의 크기나 배열 방식, 리듬감 등이 나무랄 데 없었다. 최근에 찾은 홍익대학교 중앙광장은 공간이 커가는 과정을 꽤 오랫동안 지켜보았기 때문인지, 지금의 모습이 감탄스럽다. ‘공간 공감’ 답사 이후에도 몇 차례 더 가보았는 데, 찬찬히 둘러보니 그 매스감이 더 놀라웠다. 처음에는 학교 캠퍼스의 광장을 왜 수목 농장처럼 만들어 놓았는지 의아했는데, 한 해 한 해 지나 식물이 커나가면서 전혀 다른 공간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나무를 아예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놔둔 것이 주효했다. 나무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처지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근사한 도시 숲이 탄생했다. 어느정도 설계자가 이렇게 의도한 공간이 아닌가 싶다.
박승진 때론 너무 깔끔하고 계획적으로 관리하는 것보다 스스로 자랄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다. 의도대로 가꾸기 위해 치밀하게 관리하다 보면 더 엇나가거나 불필요하게 웃자랄 수 있다. 풀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김용택 나 역시 그런 전략을 의도적으로 취하는 편이다. 스스로는 그것이 나의 관리 매뉴얼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대로 두는 것 말이다. 홍대 중앙광장의 경우, 숲을 만들겠다는 것은 디자인을 했겠지만 관리하는 방식은 풀어두는 전략을 취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홍대라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점이 더욱 돋보였다. 그 외에 답사하면서 좋았던 곳으로는 박수근 미술관을 꼽고 싶다. 조형적인 디자인이 뛰어나거나 조형물이 돋보이는 곳보다는 분위기가 잘 갖추어진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재료가 시간을 머금고 있다거나 물성이 잘 드러나는 디테일에도 애착이 간다. 박수근미술관이 바로 그런 공간이었다. 재료와 공간이 잘 어우러져, 그 공간의 인상을 좌우하는 곳. 좋은 공간감이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홍선 박수근미술관과 명동성당은 아쉬움과 만족스러움이 비슷한 측면에서 동일했다. 전면부를 좀 더 여유있게 비워두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박승진 명동성당의 경우는 조경 설계 이전에 이루어진 기본 방향 설정에서, 전면 공간에서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도가 개입되어 지금과 같은 공간 연출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성당 뒤편 공간은 그 의도에서 자유로웠기에 지금처럼 아늑하고 만족스러운 공간이 유지될 수 있었고.
김용택 ‘공간 공감’ 멤버들은 과도하게 디자인된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분당의 책테마파크 같은 경우, 디자인 자체만 보면 상당히 공들여 설계된 곳이지만 공간의 맥락에서 바라보면 디자인이 조금 과해 보인다. 그 때문에 답사 당시에 아쉬운 점에 대한 토로가 많았다.
김아연 개인적으로는 지앤아트스페이스와 양재동 꽃시장의 생명력이 돋보였다. 디자인 차원을 떠나서, 판매행위를 위해 제품을 외부에 내놓은 공간들인데 그곳만의 확실한 생명력이 있었다.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 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 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