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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마감
Editorial: Deadline
  • 환경과조경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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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며칠 앞둔 편집실, 출품 전야의 설계실 못지않은 전쟁터 풍경이다. 지면 배열의 수정, 서너 차례 반복되는 원고 교정과 교열, 편집 디자인 수정과 보완이 복합적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내부 원고도 뒤늦게 생산된다. 이어지는 야근과 철야는 문제도 아니다. 가장 심각한 위기는 최종 데드라인까지 외부 필자의 원고가 도착하지 않을 때다.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한계선에 임박해 필자들의 원고를 챙기다 보면 편집자들의 “혼이 비정상”이 되곤한다.

고백하자면 아마추어 편집주간도 혼돈의 마감 풍경에 한몫 톡톡히 한다. 매달 거의 제일 마지막으로 디자이너에게 넘어가는 원고가 A4 두 장이 채못 되는 이 에디토리얼 원고다. 편집된 잡지 전반을 다 검토하고 뭔가 아우르며(?) 쓰겠다는 심산이지만, 잡지 첫 쪽에 등장하는 데 대한 부담감, 글감의 고갈에 따른 막막함, 고질적인 게으름, 이 셋이 절묘한 비율로 혼합된 결과라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할 것 같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호이니 이번 달만큼은 제 시간에 끝내는 모범을 보이겠다고 작심했다. 그러나 순백색 모니터를 마주하니 갑자기 연말의 멜랑콜리가 몰려오고 창밖에는 열흘째 가을비가 내리고 서울광장의 물대포에, 파리와 레바논의 테러에, 케냐의 학살까지, 핑계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무래도 이번 달도 문을 닫는 원고가될 것 같다.

필자 입장에서도 마감 시한의 압박감은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고통 그 이상이다. 영어로는 데드라인, 참 무시무시한 단어다. 글쓰기의 스타일이 모두 다르듯 “마감에 임하는 필자들의 태도”도 천차만별이다. 자칭 “야매 출판인” 김홍민이 출판계의 속사정을 다룬 책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어크로스, 2015)를 보면, 여러 필자들의 다양한 마감 타입이 소개되어 있다. 첫째 유형은 ‘모범생형’.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필자, 모든 편집자의 로망이다. 심지어 마감일 하루나 이틀 전에 원고를 보내와 감동을 선사해 준다. 『환경과조경』의 연재 필자 중에도 이런 분들이 몇 명 있다. 심지어 일주일 전에 주는 분도 있다. 둘째는 마감을 지키지않았지만 도리어화를 내며 담당 편집자를 당황하게 하는 ‘적반하장형’. 유명 필자와 초보 편집자 사이에서 이런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물론 『환경과조경』 필자 중엔 이런 분이 없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는 ‘잠수형’ 필자가 등장하는 경우는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천리안형’이다. 편집자는 원고를 청탁할 때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마감일을 당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안전핀도 잡지사의 생리를 잘 아는 베테랑 필자들에게는 소용없다. 그들은 언제가 진짜 마감일인지 뻔히 알고 있다. 『환경과조경』에도 이런 유형의 노련한 필자들이 여럿 계시다. 그들과의 줄다리기는 즐거운 게임이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읍소형’이 있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가 마감이 한참지나 독촉 문자, 메일, 전화를 하면 그제야 아직 못쓴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타입이다. 그들에게는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환경과조경』 편집자들을 붙잡고 또 어떤 마감 스타일이 있는지 취재해 보니, ‘연쇄살인형’도 있다고 한다. 며칠 사이에 연달아 가족이 아프고 친구가 사고를 당하고 스승이 돌아가시는 유형. 거의다 썼다, 이제 곧 끝난다고 계속 연락이 오지만 결국엔 맨 꼴찌로 마감하는 ‘철가방형’도 있다. 언제 쓴다고 했냐고 되묻는 ‘기억상실형’, 몸이 너무 안좋다고 하소연하는 ‘동정유발형’, 이제 절필한다는 ‘은퇴형’도 있다. 밤을 새워 다 썼는데 컴퓨터 바이러스에 날아갔다는 ‘목수 연장 탓하기형’도 드물지 않다. 17년 경력의 베테랑 남기준 편집장에 따르면, 마감에 얽힌 인생 최고의 추억은 인쇄소로 넘기기 직전 절체절명의 심야에 캔맥주 식스팩을 들고 편집실에 쳐들어와 편집자와 함께 밤을 새우며 원고를 쓴 어느 필자라고 한다. 듣다보니, 아뿔싸, 몇 년 전 나의 행각이다. 도대체 무슨 형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마감에 속이 타고 피가 마르는 강도는 편집자보다 필자의 경우가 더 셀 것이다. 2015년 과월호 열한 권을 다시 펼쳐보니 여러 필자들의 분투가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그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연재 필자들의 노력과 인내에 깊이 감사드린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것이 일상을 감옥에 가두는 일임을, 불안과 초조의 늪으로 자신을 내모는 일임을.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잡지 리뉴얼 이후 2년간 연속된 최이규 교수의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가 막을 내린다. 사실 이 연재 인터뷰는 2013년에도 조금 다른 이름의 꼭지로 실렸으니 그는 3년간 무려 35명의 해외 디자이너와 매달 이야기를 나눈 강행군을 펼쳐온 것이다. 편집부의 도움 없이 뉴욕에서 홀로 기획과 섭외부터 인터뷰와 기사 작성까지 모두 담당했다. 김세훈 교수의 연재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도 이번 달에 최종회가 실린다. 다른 어느 원고보다도 두터운 독자층을 가졌던 연재물의 마지막 회를 읽으니 인기 드라마의 종영일처럼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는 마지막 원고와 함께 “지난 1년, 글을 쓰는 고통(?)과 함께 했지만, 차분히 우리 도시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두 분의 수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두 연재물 모두 단행본으로 새롭게 편집되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 김연금 소장의 연재 ‘그들이 설계하는 법’도 이번 달로 맺는다. 세달 간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좁은 지면 탓에 일일이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지난 1년간 옥고를 보내주신 모든 필자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 몇 년간 한창 유행했던 긍정심리학 류의 책들을 보면, 감사할 일을 떠올리고 늘 감사할 때 우리는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환경과조경』을 사랑해주시는 여러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며 한해를 행복하게 마감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순백색 모니터를 응시하다 보니 그만 마감 에피소드로 흐르고 말았다. 문득 우리 인생에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아주 큰 마감이 있음을 깨닫는다. 삶의 마감일을 미리 알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없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살까, 매일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한층 열심히 살까. 아마 우리는 그 마감의 시한을 알더라도 “마감에 임하는 필자들의 태도” 못지않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지 않을까? 이렇게 2015년을 마감한다. 아니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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