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공모에 대한 글을 몇 편 쓰며 스스로 묻고 답하고 싶은 질문이 하나 생겼다. 과연 설계공모의 시초는 언제이며 어디에서 시작됐는가. 경쟁‧경연‧대회(competition)라는 형식에 기반을 둔 효시는 쉽게 예상할 수 있듯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이다. 건설 환경 분야와 관련된 디자인 공모에 대한 최초 기록은 기원전 448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세운 전쟁기념관을 위한 설계공모다.(각주 1) 몇몇 글에 따르면, 중세에는 여러 예술 창작자 사이에서 의뢰 지정 방식에 대한 대안으로, 근대에는 건축 양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전에 없던 형태와 디자인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설계공모가 실행됐다. 균등 기회 기반의 경쟁 입찰이 일반화되고 디자인의 교류가 국제화를 넘어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의 설계를 확인할 수 있게 된 현 시점의 설계공모는 어떤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일까.
조경 설계공모의 첫 걸음, 민주적 변곡점
설계공모는 디자이너 개인의 자율 창작 의지에 기반한 아이디어를 사회적으로 합의된 의사 결정으로 만들어가는 열린 동의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다. 조경은 공공 영역과 자주 맞닿기에 공동체를 위한 합의 기능에 기대야 마땅하다고 여겨지고, 분야의 탄생 자체가 옴스테드와 복스의 센트럴파크 설계공모 당선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한국의 조경 중심 설계공모의 역사는 의외로 길지 않다. 그리고 정부 주도의 국토 개발 역사를 지녀 조경 설계공모의 시작과 발전이 정치적 성숙과 그 진도를 함께 해왔다. 건축 설계공모는 해방 이후부터 그 역사를 찾아볼 수 있고 일찍이 일반화됐지만, 공원 녹지 사업을 조경 주도로 기획‧실행한 첫 설계공모는 1996년 말 공고해 1997년에 당선작을 발표한 여의도광장 공원화 설계현상공모다.(각주 2)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에 등장한 민원(民願) 제도와 그 시점이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에게 널리 공개하여 모집한다’는 의미의 공모(公募)와 1997년 제정된 ‘국민이 행정 기관에 어떠한 것을 신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민원 제도가 만났던 이 시기는 공공의 영역에 대한 제안을 국민에게 널리 열어서 모집하는 공식적 경로가 열린 한국 조경의 민주적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여의도광장의 공원화 사업을 시작으로 몇 해 동안의 조경 설계공모는 서울의 대표적 오픈스페이스 유형들에서 하나씩 시행됐다. ‘공원’으로의 변화를 꾀한 여의도(1997)를 시작으로, 서울‘광장’이 된 서울시청 앞 광장조성 설계공모(2002)(각주 3)에 이어 ‘도시 숲’의 시초가 된 서울숲 조성 설계공모(2003)(각주 4)까지 설계공모가 실행된 이 시기를 조경 설계공모의 태동기라 하겠다. 초창기인 만큼 설계공모라는 경쟁 게임에 대한 미숙한 규칙과 진행이 많았다. 여의도광장 공원화 설계현상공모 참가 팀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는 『환경과조경』 1997년 3월호 내용을 인용한다.(각주 5)
“주무부서의 치밀한 사전 준비 절대 부족”, “심판관 얼굴 가릴 필요있나”, “게임이므로 공정성과 형평성의 원칙에 따라야”, “앞으로 설계경기 기간을 이번 1개월 보다 늘리겠지만”, “심사위원 사전 공개는 불변 심사위원 소감 및 소개”, “심사위원 사전 공개 시범적으로 해봄직”, “서울 공원 유지‧관리에 대한 서울시의 장래 계획이 언급되어야”, “더 많은 전문가의 의견 수렴 필요, 추진 방법에는 신중 가해야”, “상식 수준에서 선택된 작품이라고 판단”, “본 과업의 적극적 홍보 필요, 여성 심사위원 수도 좀 더 늘렸으면”.
게임의 규칙, 심판, 선수의 매너 모두에 대한 불만과 불완전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렇듯 설계공모의 기획, 진행, 후속 절차는 초보 단계에 머물렀기에, 여의도의 경우 당선작과 크게 다른 준공 결과물을 남겼고, 서울시청 앞 광장은 당선작이 전면 취소되기도 하는 등 반복되어서는 안 될 선례를 남겼다. 반면, 서울숲 설계공모는 ‘숲’이라는 구체적 오픈스페이스 유형에 맞춘 기획이 탄탄하게 갖춰진 사례였다. 도시 숲 성격에 맞는 숲 연계 프로그램이나 환경 생태 기능을 강조하는 구체적 설계 지침을 제시하는 판을 깔았기에, 상투적 개념 구현이나 형태 중심 설계를 탈피하고 목적에 합당하고 ‘쓸모 있는’ 당선작이 선정됐다(각주 6)는 평가를 받았다. 기획과 결과 간의 동기화가 된 선례다.
* 환경과조경 443호(2025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Jack L. Nasar, Design by Competition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p.29.
2. 한우드엔지니어링의 작품이 당선됐다.
3. 당선작: ‘빛의 광장’, 서현(당시 한양대 교수)·인터씨티건축사사무소
4. 당선작: ‘서울숲’,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대우엔지니어링·조경진(당시 서울시립대 교수)
5. “여의도광장 공원화 추진의 발자취”, 『환경과조경』 1997년 3월호, pp.143~151.
6. 이상민·조정송, “서울숲 조성 설계공모에 대한 비판적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2(31), 2004, pp.15~27.
최영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조경설계를 가르치고 조경 디자인의 성능을 연구하는 교수지만, 정체성의 중심에는 외부 공간을 그리고 만들어가는 조경가가 자리한다. 매년 다시 찾아가고 싶은 준공된 장소를 하나씩 만들어 이웃들과 공유하는 기쁨을 위해 설계하고 짓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