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시에서 오래된 건축물과 다리, 담장, 무덤 등의 건조물은 역사문화유산으로서 ‘제도’에 의해 보호받고 존재한다. 유형의 문화유산은 문학이나, 음악, 공예 등 무형유산처럼 기록과 재현을 통해 그 원형을 지키는 것이 아닌, 유일무이하며 장소와 결합된 물리적 실체로서 그 자체가 원형이다.(각주 1) 또한 문화유산은 현재 도시 안에 공존하며 도시를 이루는 구성 요소 중 하나다. 이런 특성 때문에 문화유산이 보호받고 존재하는 제도적 방식에 의해 문화유산은 ‘과거’에 박제되고 주변의 ‘현재’ 도시 공간의 필요와 충돌한다.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많은 노력과 고민을 통해 이룬 바를 부정하거나 문화유산 보호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전 시대의 요구와 기술, 문화로부터 만들어진 건조물이 시대를 가로질러 원형으로 보호받고 존재하기 위해 유산이 박제되고, 또 현재와 갈등을 겪는 것은 불가피하고 심지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형의 유산이 현재 도시 공간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살펴보고 그 한계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생각해본다.
논의의 전제로서 몇 가지 짚자면, 우리는 왜 여러 제도를 통해 공식적으로 문화유산을 보존할까? 로버트 파우저(Robert Fouser)는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이전 시대 역사 유적을 보존하려는 공적인 행위를 해왔고, 이 행위에는 전혀 순수할 수 없는 의도가 있다고 설명한다. 로마의 첫 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 같은 권력자에 의해서건, 일정 시민 집단에 의해서건, 문화유산의 보존과 복원 노력에는 정통성 과시, 사회적 통합, 정체성 강화, 우월성 증명 같은 정치적 목적이 분명히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가진 역사 보존은 현재도 계속된다.
문화유산 보존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당연히 역사를 정치적으로 선택해 보존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궁성이 민가와 마을보다 먼저 보존의 대상이 되고, 한 장소에 누적된 여러 시간 중 특정 시간으로 복원한다. 이전 시대에 만든 것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지켜 그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미래의 기회를 열어 두려는 것이 문화유산 보존의 순수한 인류학적 목적이라면, 선택적 보존은 그런 기회를 미리 편집하는 것이다. 물론 그 편집도 우리 시대가 만드는 역사일수 있다.
문화유산 보존의 당위성은 경제적 가치로 증명되기도 한다. 문화유산은 간접적으로 도시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로 여겨진다. 또한 중산층 중심의 소비주의 하에서 문화유산을 점점 더 관광이라는 신산업을 위한 ‘자원’으로 여기며 그 보존과 활용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커지고 있다. 문화유산이 주민의 현실적인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대신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역사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나아가 유산을 둘러싼 포괄적 역사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공간적 필요를 동시에 달성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팽팽한 밀고 당기기에서 역사유산의 보존이 우선되거나 반대로 개발 압력 등 현대의 공간적 수요가 우위에 있을 때 어떤 도시적 상황이 나타날까.
복원은 원형의 회복일까
역사문화유산을 현재 기능하는 도시 공간보다 우위에 두는 가장 강한 방식은 유산의 원형을 위해 이미 들어선 건물과 시설을 없애거나 변형하는 복원이다. 최근 사례로는 2022년에 마무리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을 들 수 있다. 이전 광화문광장은 2009년 세종로의 가운데 녹지대를 넓혀 만들어졌으나 넓은 세종로 가운데 섬처럼 위치한 탓에 일상적인 공공 공간으로서 한계가 있었다. 결국 광장 조성 10년 만에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장을 넓혀 광장이 도시 가로와 연결되도록 하자는 결정이 이루어진다. 물론 이는 도시 공간적으로도 큰 변화고, 보행 환경의 개선과 더불어 그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이고 상징적 의미가 강했던 광장이라는 도시 시설을 일상의 공공 공간으로 만드는 시도다.
이번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또 다른 큰 변화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 월대를 복원하기 위해 광화문 전면 사직로-율곡로의 도로 선형을 바꾼 것이다.(그림 2) 월대의 복원과 현 도심의 교통 흐름, 그리고 비용을 두고 여러 대안이 검토됐고 찬반 논쟁도 이어졌다. 그런데 월대의 복원이 그 공간의 원형을 회복하는 것일까. 조선시대 경복궁 앞 육조거리인 광화문광장이 경복궁이라는 권력의 정점으로 들어가는 막다른 공간이었다면, 현재 경복궁은 시대의 뒤편으로 물러나 도시의 배경이 되었고 그곳은 현재 사통팔달의 한복판이다. 광화문 일대가 작동하는 공간의 구조가 이미 달라진 것이다.
물론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방향을 정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원형을 복원해야 한다는 당위가 관철된 것이다. 하지만 월대 복원의 원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조선시대 경복궁 광화문 앞 육조거리에 월대라는 개별 요소를 복원한다고 그 공간의 도시적 의미가 복원되지 않는다. 자동차 도로가 휘감은 월대에서 과거 그 공간의 구조가 의도한 권위와 위엄을 느낄 수 있는가. 왕정이 아닌 지금, 월대가 아니라 그 무엇을 복원해도 그것은 진정한 원형이 아니라는 비현실적이고 편협한 주장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월대를 복원한 것은 왕궁 전면의 공간 구성 요소를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문제는 이미 당시의 사회와 분리되어 남은 유적을 보전함에 있어서 종종 원형이라는 것을 물리적인 개별 요소의 합과 등가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준에서 실행되는 복원의 결과물은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 환경과조경 437호(2024년 9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물론 문화유산이 전쟁이나 화마로 부서지거나 소실된 경우 복원을 하며, 원형 확인은 복원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크게 훼손됐으나, 조선 정조 당시 화성의 건설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 기초해 복원할 수 있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당시에도 수원화성 상당 부분이 현대에 복원된 것이나 원형을 명확히 고증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평가됐다.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