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가 정영선과 한국 조경 50년
1941년생 정영선은 1973년 신설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경학과에 1기로 입학하면서 조경과 연을 맺는다. 1인당 국민소득 320불에 불과하던 시절, 근대화와 국토 개발의 급류 속에서 한국가 통치자의 강력한 주도로 서구의 전문 직능이자 학문 분과인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 전격 수입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경제비서실 내에 조경비서관까지 임명했고(1972년), 제도권 조경은 불과 3년 만에 학제(1973년 학과 신설), 공공기관(1974년 한국조경공사 설립), 자격제도(1975년 조경기술사 시행)를 갖추게 된다.(각주 1) 이 이례적인 상황 속에서 시작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정영선의 조경 인생은 한국 조경 50년사의 궤적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 자신의 회고처럼, 그의 조경은 “오늘 우리 조경계가 안고 있는 고뇌”였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끝없는 갈등을 헤쳐 나온 우리 조경인들의 삶 그 자체”(각주 2)였다. 조경가 정영선을 통해 우리는 한국 조경의 50년 성장사와 그 명암을 다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영선의 조경은 곧 한국 현대 조경이라는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지점에서 구별된다. 그는 주로 공공 발주 물량과 건설 시장 여건에 의존해 온 한국 조경계 전반의 불안정한 조건을 독자적 조경론과 경관 미학, 창의적 조경 실천을 통해 돌파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다. 2023년 세계조경가협회(IFLA)는 정영선에게 제15대 제프리 젤리코상(Sir Geoffrey Jellicoe Award)을 수여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정영선은 한국에서 조경설계를 개척하고 선도했을 뿐 아니라 서양에서 유래한 조경 개념을 한국의 대지와 경관에 맞게 ‘번역’해냈다. 그는 청계천 복원, 선유도공원 등 다수의 독보적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과 도시를 화해시키고 자연의 과정과 건조 환경을 통합하며 과거의 산업 흔적을 존중해 설계의 한 부분으로 포섭하는 최근의 세계적 경향을 예견하고 실천했다.
동시대 조경의 핵심인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명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작업에 내재해 있었다.”(각주 3) 이처럼 여러 걸음 앞서가며 새 지평을 연 정영선의 이론과 실천은 그 개인의 작품과 문화적 역량에 대한 조명과 인정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전문 직능으로서 조경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영선의 조경은 한국 조경 50년사에 대한 예리한 비평이기도 하다.
진화와 세 개의 변곡점
정영선의 손을 거친 조경 작품은 정확한 목록을 작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개인과 기업의 정원, 도시 가로와 광장, 근린공원, 기념공원, 생태공원, 산업시설 재활용 공원, 선형 공원, 묘역, 병원, 오피스, 상업시설, 복합문화공간, 공동주택 단지, 공장, 캠퍼스, 종교 시설과 단지, 테마파크, 리조트 등 그가 다룬 프로젝트의 유형은 조경 업역의 다양성과 복합성 그 자체를 예시한다. 작업의 양과 유형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조경 이론과 실천이 계속 진화해 왔다는 점이다. 그 진화의 함수에서 변곡점이 된 세 가지 작업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 환경과조경 436호(2024년 8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1970년대의 정치 지형과 사회 상황과 결부된 한국 조경 태동기의 사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할 것. 배정한, “근대의 굴레, 녹색의 이면: 한국 조경의 근대성과 박정희의 조경관”, 『건축·도시·조경의 지식 지형』, 나무도시, 2011, pp.152~181.
2. 정영선, “조경과의 조우, 그리고 나를 있게 한 소중한 것들”, 『환경과조경』 1998년 6월호, p.30.
3. International Federation of Landscape Architects, “Landscape Architect Youngsun Jung from South Korea is the 2023 Recipient of the Sir Geoffrey Jellocoe Award”, www.iflaworld.com/sgja-2023-winner, 2023.
배정한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며, 본지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조경 이론과 설계, 조경 미학과 비평의 접면을 확장해왔다. 대표 저서로 『공원의 위로』, 『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 『현대 조경설계의 이론과 쟁점』이 있으며, 『경관이 만드는 도시』와 『라지 파크』를 번역했다.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용산공원』, 『건축·도시·조경의 지식 지형』, 『공원을 읽다』, 『서울도시계획사』 등 이십여 권의 책을 기획하고 동학들과 함께 썼으며, ‘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 등 다수의 대형 공원 프로젝트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