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가 바라본 정영선의 이야기를 다룬 세션 1, 2가 끝나자 무대 위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 세 개가 놓였다. 이제 주인공이 직접 마이크를 쥘 시간. 세션 3 ‘정영선과의 대화’는 정영선과 두 명의 손님을 초대했다. 중앙 자리에는 정영선, 왼편에는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설계학과)의 자리가 마련됐다. 대담 진행을 맡은 이지회 학예연구사(국립현대미술관)는 조경진이 이번 전시와 어떻게 연을 맺게 되었는지 소개했다. “조경진 교수에게 이번 전시장 입구를 장식한 연보를 의뢰했다. 정영선의 삶과 작업의 역사, 한국 조경사, 그리고 세계 환경 관련 이슈의 연대기 작성을 이끌어주며 이번 전시회의 시공간적 맥락을 짚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오른편 자리에는 배형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가 앉았다. 배형민은 정영선의 작품 중 하나인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개관을 기념하며 출간한 『아모레퍼시픽의 건축』의 저자다. 그는 이지회와 함께 황금사자상을 받은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준비한 바 있는데, 이지회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베니스비엔날레의 기억을 자주 떠올렸다. 오늘 함께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대담의 시작을 알렸다. 세 사람 사이의 대화는 느릿하고 은은하게 오갔다. 조경 철학을 파헤치거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대신, 오랜 세월 묵혀 둔 작업 뒤편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내는 식이었다. 대담 뒤에는 청중에게 질문을 받아 답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중 몇 가지를 뽑아 간단히 소개한다.
사우스케이프, 바위를 쪼아 만든 조경가의 조각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포스터 한가운데를 차지한 것은 식물도, 탁 트인 경관도 아닌 거대한 바위다. 거칠면서도 섬세한 단면이 돋보이는 이 바위는 남해 사우스케이프의 암각 동산이다. 이 바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사우스케이프 설계 의뢰를 받아 처음 클라이언트 내외를 만나러 가던 날, 마당에 있는 억새풀과 들풀을 뜯어 가지고 들어갔어요. 대상지가 본래의 경관이 아름다운 남해인 만큼 이런 우리의 풀들이 보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직접 뽑은 억새풀과 들풀을 보여주며 말하니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대상지에 커다란 바위산이 있었는데, 숙박 시설과 주요 홀, 휴식 공간이 이 바위산을 빙 두르고 있었습니다. 건축 공사를 진행하며 이 바위를 없애보려고 했지만, 깨다 지쳤는지 그대로 방치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이 바위가 너무 좋더라고요. 이 바위를 없애지 않고 다듬어, 주변을 두른 건축물의 다른 고유 기능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물과 꽃을 더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절 믿어준 건지 알아서 해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날부터 한 제자와 함께 호미와 망치를 들고 몇 날 며칠에 걸쳐 바위를 손으로 다듬었습니다. 이 바위는 조경가가 만든 조각인 셈입니다.”
* 환경과조경 436호(2024년 8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