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의 힘
2006년 베를린에 서울정원이 들어선 이후 한국 정원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유럽 정원은 물론이고 중국 정원, 일본 정원과도 다르면서 더 이해하고 싶다고 한다. 단지 그 이유뿐만 아니라 서양 조경과 정원을 연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것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고, 양 문화권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사유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크게 다가오는 차이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관념의 힘과 유럽인들의 실증적 본능이다. 유럽인은 무엇이든 눈으로 보아야 하고, 만지고 느껴야 비로소 그 ‘존재’를 믿는다. 자연에 있는 것은 모조리 가져다 식물원이나 정원에 심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영국의 저명한 정원 디자이너이자 저술가인 페넬로페 홉하우스(Penelope Hobhouse)는 매일 들어가 일해야 하지 않는 정원은 정원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들에게 베를린 서울정원 툇마루에 앉아 빈 마당이나 먼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이따금 이들의 실물(實物) 집착증이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한국 정원엔 어떤 나무가 자라고 어떤 꽃이 피는지 잔뜩 궁금해하는 청중에게 다소 도발적으로 “사유(思惟)만으로도 정원이 성립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그때 물음표로 가득한 청중의 표정을 보니 조금 미안했다. 그래서 윤선도의 오우가를 들려주며 물, 돌, 소나무, 대나무 그리고 달빛이면 족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리고 한국의 정원 개념에는 성리학이나 도가적 자연관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유럽 정원처럼 식물, 시설물, 조형물을 채우고 배합하고 조합하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예상한 대로 만족스럽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식의 대화를 하다 보면 같은 지구상에 살지만 서로 얼마나 다른지 재삼 확인하게 된다.
* 환경과조경 436호(2024년 8월호) 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지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