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전통 혼례, 제사 등 엄숙한 행사의 배경으로 사용되는 병풍은 때론 중심이 되지 못하고 희미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인다. 하지만 병풍은 예로부터 족자, 화첩, 두루마리 등과 같이 한국의 회화장르 중 하나였으며, 조선은 병풍의 나라로 불릴 만큼 병풍으로 제작된 회화 작품이 많다.
조선시대의 병풍은 한옥에서 유용한 인테리어 요소였다. 온돌 구조의 난방을 사용하는 한옥은 특성상 벽에 윗바람이 들 수밖에 없는데, 병풍은 이 윗바람을 막는 가림막 역할을 했다. 또한 접었다 펼 수 있어 파티션처럼 공간을 쉽게 분할할 수 있다. 기능성과 함께 미감을 갖춘 병풍은 마치 현시대의 미드 센추리 모던 양식의 소품처럼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인테리어 소품이었다.
보통 전통 회화 전시는 화가나 작품에 집중하지만,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 ‘조선, 병풍의 나라 2’는 병풍이란 장르에 집중했다.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는 15개 기관 및 개인이 소장한 50여 점의 병풍을 모아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사용 및 제작 주체에 따라 나눈 민간 병풍과 궁중 병풍, 제작 시기에 따른 근대 병풍을 소개해 조선 병풍의 계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민간 병풍에서는 개성 넘치는 미감과 자유분방한 형식을 느낄 수 있고, 궁중 병풍은 조선 왕실의 권위와 품격을 드러내며, 전통을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계승한 한국 근대 화단의 일면을 병풍으로 보여준다.
개인과 나라, 시대적 변화를 읽다
민간 병풍의 자유분방한 표현 방식에서는 양반, 서민 등 다양한 개인들의 소망과 취향, 그리고 개성이 읽힌다. ‘평생도8폭병풍’은 문관으로 급제한 상류층 사대부 양반의 일생을 그린 병풍으로 과거 시험 급제, 결혼, 관직 생활, 노후 등 전형적인 삶의 통과 의례를 다루며 관료의 성공적인 삶에 대한 염원을 담아냈다. 다양한 동·식물이 조화롭게 그려진 ‘백납도10폭병풍’과 원숭이, 코끼리 등 이국 동물을 포함해 다양한 동물을 그린 ‘백수도10폭병풍’에는 당시 유행한 박물학의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외에도 효·제·충·신 등 유교의 핵심 가치를 드러내는 문자를 타이포그래피처럼 병풍에 그려 넣거나, 『구운몽』이나 『삼국지연의』처럼 인기 소설의 내용을 묘사한 그림을 병풍에 그려 독특한 개성을 보여줬다.
* 환경과조경 421호(2023년 5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