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안온한 계곡은 바람도 잠잠했다. 태양을 받아안듯 팔을 벌린 초겨울의 남해, 정원 산책은 한마디로 행복감이었다. 다랑이논이라는 지형 위에 다양한 형식의 컨템퍼러리 가든을 제시한 섬이정원. 수백 년 전에 조성된 둠벙과 농업용 수로라는 문화재급 경관을 그대로 살리면서 우리식으로 귀화한 유럽 스타일과 노하우를 접목시켰다. 외래종과 토종이 서로 어울려 자라고 반딧불과 논의 생물이 번성하는 곳. 우리 국토는 하나의 큰 정원이라는 깨우침을 주는 곳이다. 발아래 펼쳐진 남해 바다와 다도해 섬들의 풍광은 ‘섬이 곧 정원이다’라는 뚜렷한 철학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오르락내리락 높낮이가 다른 다랑이논은 누군가 오래 전에 쌓은 돌담으로 지탱된다. 그렇다, 오래됐다는 것이 핵심이다. 거기에 열한 개의 작은 정원이 각각의 방처럼 다른 주제를 선보이며, 때로는 이태리처럼, 때로는 캘리포니아스럽게 펼쳐진다. 다랑이논은 산 위의 바다 같다. 정원이 물 위에 섬처럼 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초겨울이라 모든 것이 말라 있을 법한 계절이었지만, 섬이정원의 곳곳은 물길과 연못으로 가득했다. 한겨울에도 풍성함과 생동감을 주는 물소리는 반도의 남쪽 끝을 실감케 한다.
정원이란 해 보기 전엔 결코 모르는 것이다. 엄청난 노동이다. 불확실성과 비예측성이 지배하는 정원을 혼자의 힘으로 가꾼다는 것은 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섬이정원은 빼어나다. 무엇보다 정원 자체에 집중하는 사람, 차명호 대표 개인의 취향과 안목이 차분하고 짙게 반영된 곳이라 더욱 값지다. 철저하게 나만의 정원인데, 역설적이게도 그 어느 곳보다 공감되는 정원이기 때문이다. 50톤의 자갈을 수레로 깔았다. 나무 한 그루, 바닥 한 뼘에도 큐레이터로서 그의 판단과 손길이 속속들이 채워져 있다. 어쩌면 채우는 것은 돈으로 가능하지만, 비우는 것은 안목일 수밖에 없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9호(2018년 3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