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현대 철학자들이 아시아 중에서도 한반도의 상황을 예시로 들어 자신의 철학 사상이나 이론을 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유일한 분단국으로 북한에서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지만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대범함(?)을 지닌 민족, 짧은 기간에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대다수가 힘들다고 느끼는 나라. 명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마르크스와 자크 라캉의 정신 분석에 기반한 이론가로 알려진 슬라보예 지젝은 최근 저서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박준형 옮김, 문학사상, 2017)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이렇게 본다. “일제강점기 피해는 심각해서 한국인은 끔찍한 상처를 잊고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잊지는 말되 용서하라’는 니체의 표준화된 공식을 완전히 반대로 적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즉, 일본의 잔학성을 ‘잊되 절대 용서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지젝은 용서는 하지만 절대 잊지 않겠다는 태도에는 언제까지나 죄책감을 느끼게 하겠다는 강력한 협박의 뜻이 교묘하게 담겨 있다고 해석한다. 어쩌면 잊지 말아야 할 일을 자주 ‘잊는’ 한국인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으로도 들린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지난 8월 말, 그간의 연재를 묶어 단행본 『시네마 스케이프』를 선보였다. 책이 나오기까지 마음 써 주신 분들, 출판 북토크에 와 주신 분들, 격려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출간을 계기로 더 분발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다시 초심이다.
* 환경과조경 354호(2017년 10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