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만드는 사람들에겐 정기구독자 수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환경과조경』 편집부는 누가, 어느 콘텐츠를, 얼마나 많이 읽는지 늘 궁금합니다. 무더위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한여름의 마감 날이지만, “매달 첫날을 기다리게 하는 잡지, 받자마자 소중한 두 시간을 빼앗는 잡지, 한 달에 세 번은 다시 펼쳐 보는 잡지, 과월호도 다시 뒤적이게 하는 잡지”를 만들자는 소박한 다짐을 다시 한번 되
새겨 봅니다.
그게 무슨 소박한 다짐이냐고요? 맞습니다. 거창한 꿈인 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잡지 편집 일에 발 들이기 전엔 책상 위에 배달된 『환경과조경』을 한 달 내내 열어보지 않은 적이 많습니다. 큰 인심 쓰듯 넘겨보더라도 5분이면 족했습니다. 어느 영화 잡지는 3년 치를 봉투도 뜯지 않고 쌓아두었다 재활용품 수거함에 곱게 전달한 적도 있고, 어떤 미술 잡지는 미루고 미루다 구독료 본전 생각 반, 미술 애호가여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 반에 작심하고 하루에 2년 치를 독파한 적도 있습니다. 아마 독자 여러분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물론 가끔은 격무에 지친 편집부를 들뜨게 하는 상큼한 미담(?)도 들려옵니다. 얼마 전에는 어느 학교 조경학과 학생 대여섯 명이 모여 매달 『환경과조경』으로 세미나를 하고 있다는 깜찍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열독률 높은 연재 꼭지 중 하나로 알려진 ‘시스’―줄임말이 대세인 시대, ‘시네마 스케이프’를 ‘시스’로 줄여 부르는 독자가 많다고 합니다―의 필자는 어느 열혈 독자로부터 장문의 리뷰 글을 받았다고 며칠 전 편집부에 알려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확장과 소통의 경험은 『환경과조경』의 큰 동력입니다. 월간이라는 사이클이 반복과 관행과 진부함의 굴레를 초대할 때면,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세계적 동시대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 기지”라는 비전을 다시 소환해 엄중한 자기 검열의 잣대로 삼겠습니다.
이번 달 ‘프로젝트’ 꼭지에는 모처럼 국내 작품들을 싣습니다. 더 많은 국내 작품을 실어 한국 조경의 오늘을 기록하고 토론과 비평의 장을 마련한다는 편집 방향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보다는 실천하기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난점은 사진입니다. 조경 작업의 특성상 초여름, 적어도 늦봄은 되어야 괜찮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어서 상반기에는 국내 작업을 싣기 힘든 형편입니다. 그렇다고 마침 사진 작업이 용이한 계절에 완공되었다는 이유로 이번 달 작품들을 고른 건 아닙니다. 지면에서 바로 느끼시겠지만,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맘껏 놀이터’와 정원사친구들(조혜령, 최윤석)의 ‘엄마의 정원’은 어린이 공간의 설계와 문화를 둘러싼 관행에 반기를 든 문제작입니다.
폭염이 한풀 꺾이면 꼭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정원이라는 미명 하에 강요되는 과잉 의미, 과다한 상징, 조악한 장식에 지친 분들에게 신선하고 담백한 경험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김아연 교수가 말하듯, 이러한 작업이 “우리 사회의 놀이와 놀이터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축적되고 … 더 즐거운 공간을 만들기 위한 비평과 문제 제기가 이어질 열린 텍스트로 작동하길” 바랍니다.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 하나를 덧붙일까 합니다. 직접 취재하지는 않았지만 떠도는 풍문에 따르면, 조경 설계의 ‘사회적 실천’을 예시해 준 이 두 작업의 설계비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시민 단체나 아동 구호 기관과 엮인 이런 류의 ‘착한’ 프로젝트일수록 이른바 전문가의 ‘재능 기부’나 ‘열정 페이’를 당연시하는 풍토가 안타깝습니다.
『환경과조경』에는 다양한 성격의 여러 연재 꼭지가 있습니다. 주변의 독자들에게 탐문해 보면 꼭지마다 독자층이 좀 다릅니다. 잡지를 처음부터 넘길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선호하는 연재부터 먼저 읽는다는 독자가 적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학생 독자들은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읽고 마음을 충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지난 호부터는 최근 여러 국내외 설계공모에서 주목할 만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조경가 전진현(스튜디오 MRDO 공동대표)이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열다섯 번째 주자를 맡아주고 있습니다. 좁은 의미의 조경에서 가장 거리가 먼 연재는 아마 진나래 작가(일시합의기업 ETC, 잠복자들 공동대표)의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일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정보를 많이 얻고 있는 꼭지입니다. 틀에 박힌 조경이 권태롭다면, 텍스트의 양과 밀도에 질려 다음으로 미루어두지 말고 일독해 보시길 편집자로서 감히 권합니다.
2014년 리뉴얼 이후 연재 원고를 바탕으로 두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그리 두텁지 않은 한국 조경과 도시설계의 이론적 폭을 확장하고 있는 책,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2016)와 김세훈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2017)입니다. 오는 8월 말에는 현재 연재 중인 꼭지 하나가 새로 묶여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의 작은 출판 축하 파티가 준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오래 전 영화 제목을 듣는 순간, 갑자기 무더운 한여름의 긴 터널을 시원하게 통과할 용기가 생깁니다.
『환경과조경』이 주최하는 ‘2017 조경비평상’의 마감이 오는 9월 8일로 다가왔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경’을 주어로 고민 중인 예비 조경 비평가들의 많은 출품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