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지각색의 와펜이 촘촘히 박힌 친구의 걸 스카우트 띠가 부러워, 수행 활동에 따라 학교에서 지급하는 와펜을 ‘반칙’으로 구하려 했던 적이 있다. 친구와 함께 수소문한 결과, 동네와 조금 거리가 있는 일명 ‘배다리’란 곳에 가면 수십 가지 종류의 걸 스카우트 와펜을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신이 나서 원정을 가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배다리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가려 했지만, 어른들은 한결같이 그저 이 근방이다, 심지어 같은 자리에서도 여가 배다리다, 저가 배다리다, 하는 것이었다.
결국 가게를 찾지 못하고 나중에 부모님 차를 타고 가서야 와펜을 구할 수 있었다. 부모 없이 동네를 떠나본 적이 별로 없던 시절 겪었던 혼란이었지만, 성인이 되어 지역 기반 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다시 배다리를 찾았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행정 구역 상에 존재하는 이름이 아니었기에 당시 프로젝트를 같이 하던 작가들과 함께 ‘배다리’가 어디인지 지역 주민에게 지도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주민들이 그린 배다리의 영역은 제각기 달랐다. 이로 인해 우리는 ‘지역’이란 무엇인지 각자가 생각하고 있던 정형적인 무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비단 배다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모네 가게가 있던 ‘석바위’ 역시, 정확히 석바위가 어디냐 하면 도통 명확한 경계를 그려낼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어떤 위치 감각은 있지만, 어디까지가 그 동네이고 그렇지 않은가는 결국 개개인의 기억과 인식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있어 석바위는 이모네 가게가 있던 곳 근방이지만, 누군가에게 석바위는 그곳이 아니라 그 근방 다른 곳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내가 자란 이 동네만이 아니라, 행정 구역보다는 마을이나 동네 이름이 더 친근했던 시절 전국 어느 곳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구’, ‘◯◯동’과 같은 행정 구역이 좌표의 영역이라면 ‘◯◯마을’이나 ‘◯◯동네’는 인식의 지도인 셈이다. 그리고 그 인식의 지도는 사람들 개개인과 그들 사이에 형성되는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정보이자 기억, 내러티브의 집합체인 것이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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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과조경 350호(2017년 6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