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개인적인 회상을 언급하자면, 캐나다 유학 초기에 그곳 친구들로부터 흔히 들었던 말이 “너 너무 진지해 보여!You look so serious. Relax!”였다. 물론 사람에 따라 편차가 크겠지만, 돌이켜보면 비단 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한국 유학생이나 교민들의 인상은 유럽이나 남미 출신들에 비해 대체로 긴장돼 있었다. 나는 그런 인상이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전쟁의 여운이 남긴 오랜 대결 구도 속에서 우리 편이 아니면 적으로 몰아붙이는 상황, 0.1점 차로 갈리는 승자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분위기에서 눈치 보며 살다보니 상대적으로 우리 얼굴에는 여유의 자연스런 주름이 새겨질 틈이 없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다. ‘전투적’이라는 말이 칭송받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피부도 보톡스 해서 전투적으로 빵빵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도시와 공간에 대한 계획도 어딘지 모르게 아래아 한글로 작성된 공문서의 표 마냥 줄과 열을 맞춰 착착 번호 매겨진 어색한 느낌이다.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고 이식된 듯한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청도에서 전유성이 해오고 있는 활동은 도시재생, 농촌 재생의 희한한 대안적 옆길 같은 깨달음을 주었다.
지금 30~40대는 예전 인사동의 명물 찻집 겸 주점, ‘학교종이 땡땡땡(이하 학교종)’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시절 교실을 옮겨 놓은 듯한 특이한 공간. 거리를 걷는 여느 연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전유성은 그저 코미디만 하는 코미디언이 아니라는 인상을 깊이 심어주었다. 짝궁과 금 그어놓고 함께 쓰던 진초록의 2인용 책상과 삐걱거리는 코딱지만 한 나무 걸상에 앉아 추억과 차를 곁들이는 곳, 당시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할 데이트 코스였다. 떠드는 사람이 적혀 있는 칠판 위에 걸린 교훈은 ‘공부해서 남 주자’였고, 급훈은 ‘음주운전하면 진짜 학교 간다’였다. 개그맨 지망생들의 공연도 있었고 전유성이 직접 마술쇼를 보이기도 했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