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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도시와 이주 ― 믹스라이스
  • 환경과조경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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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라이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6’ 전(자료제공= 믹스라이스)

 

 

동료 작가들과 회의를 마치고 차 한 잔을 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크고 단호하게 변하던 그 목소리는 알고 보니 조금 전까지 우리와 함께 이야기 나누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어느 작가의 목소리였다. 좀처럼 격앙된 모습을 보인 적 없던 분이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고, 걱정되는 마음에 조심스레 무슨 일인지 묻자 그는 프로젝트 과정 중에 알게 된 어느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수단에서 온 지인이 최근 불법 체류 문제로 한국에서 강제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내전이 진행 중인 수단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보석을 위해서는 2천만 원이 필요하고, 난민 신청을 하기도 어렵다는 내용의 통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일은 몇 해가 지나도 결과를 알 수 없는 길고 지난한 과정으로 익히 알고 있는 바. 하지만 2천만원쯤이야 호기롭게 내어놓을 수 있는 여유, 아니 그 2천만 원 자체도 없는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주민을 위한 봉사 활동도 다니는 그는 답답함 한편에 냉정하게 말해야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건축이나 도시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듯, 오스만 남작이 방사형으로 계획한 파리는 구역마다 뚜렷한 성격을 갖는 동시에 중심부와 외곽 지역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계층화되어 있다. 방리외banlieue, 즉 외곽 지역에는 주로 이민자인 빈민층이 살고 있다. 과거 노동자를 위해 지어진 획일적인 공영 주택이 이민자들의 터가 된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방리외에도 부촌이 있다. 도식적으로 생각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지만 도시 공간의 사회적 계층화를 짚을 때 종종 언급되고는 하는 것이 프랑스어로 교외suburb를 뜻하는 이 방리외다. 도시 공간이 형성되는 방식은 각 도시, 공간마다 고유한 특수성을 갖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 되었든 이처럼 도시 공간은 각 지역,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 신scene을 가지며 많은 경우 사회적으로 계층화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주체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도시계획이 이를 조장하고 주변화된 이들을 더욱 주변화하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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