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2017년 1월호 준비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바쁜 걸음을 옮기던 편집장은 날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불안했다. 예의 그 친절한 말투로 “팀장님, 제가 오늘 해야 할 일이 많아서요, 잡지협회 교육생 인터뷰 좀 대신 해주세요.”
흡. 우선 전쟁터 같은 책상의 물건들을 책장 안으로 숨겼다. 조한결 기자가 머뭇거리며 사진 촬영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런 젠장. 얼른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작업복(트레이닝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고쳤다. 다행히 머리는 아직 동여매지 않은 상태였다. 꿈과 희망을 안고 잡지사 탐방을 오는 그들에게 너무 생생한 현실로 실망감을 안겨 주고 싶진 않았다.
가까스로 우아한(멀쩡한?) 모습으로 미팅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잡지협회의 교육 과정을 이수한 그들의 마지막 과제는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잡지사에 인터뷰를 다녀와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취재기자의 업무와 사내 문화, 채용 관련 이야기를 담아 후배 교육생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단다. 그들이 물었다. 『환경과조경』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이 필요하냐고, 조경을 전공해야 하냐고 물었다. 조경을 전공하지 않아도 이 분야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면 오케이. 해외의 정보와 자료를 접해야 하므로 외국어를 잘하면 물론 우대.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잘 써야 한다고 답해주었다. 그것이 공식적인 답변이지만 사실 내 기준은 이 일에 대한 열정이라고 말했다. 함께 시작했던, 또 그 후에 만난 여러 기자들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미처 모두 알 수 없는 지금, 과연 글쓰기 능력이 우선일까, 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 중요할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 엄혹한 시대에 후배들에게 ‘꽃길’을 깔아줄 수도 없으면서 ‘열정’이라고 입 밖으로 내뱉으니 참 식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이는 분야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기준이 아닐까. 물론 “기껏 가르쳐 놓았더니 내 길이 아니라고 떠나버리면 회사로서는 손해다”라고 한탄하는 여러 설계사무소 소장님들의 말씀이나, 적성을 찾기 위해 직접 부딪혀 경험해 볼 수밖에 없는 사회 초년생들의 고민과 선택 또한 모두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10월 말, L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부탁할 요량이었다. L 소장은 이 꼭지의 필자로 편집부의 리스트에 계속 올라 있었지만 시점이 문제였다. 꼭지명이 ‘그들이 설계하는 법’이니 ‘설계’에 방점이 찍히지만, 글이 중요하게 드러나는 잡지의 특성상, 그들이 글 쓰는 성향도 고려의 대상이다. 새해를 맞이해 분위기를 전환해 줄 필자가 필요했다. 그가 미루거나 거절하지 않기를 바랐다. 필자에게 원고를 청탁할 때 최대한 그들이 거절할 수 없는 멘트를 준비한다. 그들이 머뭇거리며 고민하거나 거절의 이유를 찾는 동안, 난 그가 얼마나 이 주제에 적합하며 ‘유일한’ 필자인지 떠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이 약해진 그들은 (편집주간의 표현에 따르면) 스스로의 일상을 마감이라는 감옥으로 보낸다. L 소장에게는 “언젠가 제가 전화할 줄 아셨지요”라고 했다. 피할 수 없다고, 지금이 그 때라고 정공법을 택했던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L 소장의 원고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앞으로 석 달 동안 그 특유의 문체를 즐감할 수 있으리라.
그가 글과 함께 보내온 첫 번째 그림은 모카주전자와 찻잔이다. 그 그림을 보니 반갑다. 잡지 교육생들이 물었다. 필자 섭외는 어떻게 하냐고. 우리는 취재원들과 오랜 관계를 맺으며 교류한다고 답했다. 나도 예전에 그런 게 궁금했던 것 같다. 잡지에 실리는 정보들은 다 어디서 나냐고 나의 첫 번째 편집장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편집장은 “잡지사에 있다 보면 다 들어와” 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 대답에는 많은 것이 생략돼 있었다.
2014년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무렵, L 소장이 설계한 대관령 하늘목장에 함께 갔을 때였다. 양다빈 기자와 조한결 기자가 떨어진 나뭇잎들을 비로 쓸어가며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을 때, 나는 L 소장과 어느 정원에서 저 모카주전자에 커피를 내려 마셨다. 지금도 잡지에 사진으로 남아 있는 양다빈 기자의 어깨와 초록색 비를 보면 괜히 미안해진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십오륙여 년 전에 즐겨 다녔고, 그 이전부터 그가 즐겨 다녔다는 대학로 한 카페에서 그가 깎아주던 사과가 기억난다. 나는 그 시간들과 내 선배들이 그와 맺어온 인연을 믿었나 보다. 그래서 L 소장에게 맡겨 놓은 원고를 내어 놓으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나 보다.
2017년에는 최이규 교수가 1년 만에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이란 이름의 인터뷰 꼭지로 돌아왔다. 2013년부터 그는 ‘조경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주목할 만한 조경가’(2014년부터는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라는 이름으로 현장에서 뛰고 있는 우리 시대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2013년 당시 뉴욕에 있던 최이규 교수와 국제 통화로 연재의 방향에 관해 이야기하며, 바다 건너 있는 그는 원칙을 중시하는 까다로운 필자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 귀국한 그는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공간을 향한 인물 개인의 의지, 그것이 산업 구조를 혁신하는 핵심적 에너지”라며 기존 조경에서 주변부에 존재했던 주제들을 중심으로 초대해 펼쳐 놓는다.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빌려 풀어 놓는 그의 글에서는 혁신을 갈망하는 그의 메시지가 음성 지원되는 듯하다. 이젠 믿고 보는 인터뷰 필자다.
그리고 안동혁의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오경아의 ‘정원 탐독’ 등이 새롭게 선보이는 연재다.
올해는 유난히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시 읽는 글들이 많다. 다른 제목을 떠올리기 어려웠으니 우연이거나 말장난은 아니다. 그만큼 우리 주변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욕구가 충만한 것은 아닐까. 새로운 필자들과 쌓아갈 시간도 기대가 된다.
2017년 1월호의 문을 닫는 글을 쓰다 보니, 이번 달은 새로운 연재들 때문인지 다양한 성격의 글들이 지면을 메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잡지雜誌란 단어의 의미를 풀어보면 본래 잡다하게 뒤섞인 기록이 아니던가. 잡지협회 교육생들과의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환경과조경』을 한 마디로 정의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당당하게 ‘조경 문화 발전소’라고 답해 주었다. 올해도 새로운 필자들과 발전소를 열심히 돌리리라. 독자 여러분들도 이 다양한 글 어디엔가에서 ‘열정’의 실마리를 찾으시길 바라며 이달의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