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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의 멋진 점은 제목과는 다르게 역설적으로 소설 속에서 불멸이 배제된다는 것이다. 소설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첫 번째 주인공의 얘기가 한참 전개되고 있을 때 주인공의 주변을 스쳐 지나간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배경 인물이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며, 소설은 그 사람의 관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세 개의 연작 중편은 여러모로 쿤데라를 연상시킨다. 한강이 인정하건 아니건 ‘몽고반점’과 ‘나무불꽃’으로 이어지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쿤데라에게 바치는 일종의 오마주처럼 보인다. 물론 쿤데라조차도 에리히 레마르크의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한 수 배운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그들은 하나 같이 인생의 본질은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며, 또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불멸』에서 우리로 하여금 무한한 애정을 갖게 만든 여자 주인공은 소설 중간에 (자살을 시도하는 어떤 멍청이 때문에) 뜬금없이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쿤데라의 다른 소설에 붙여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제목은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에 붙였어야 했다. 또 다른 주인공이며 여자 주인공의 아버지이기도 한 남자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과 관련된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자신의 물건, 자신에 대한 기록을 포함하여 자신을 기억하게 할 만한 모든 것들을 모조리 없애기 시작한다. 자신이 죽었을 때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다. 쿤데라는 이 주인공을 통해 어차피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니 그럴 바엔 아예 기억되지 않는 것도 가치가 있다는 점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건 우리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지독하고 잔인한 페이소스기도 하다. 하지만 이 터무니없는 페이소스가 이렇게 마음에 와 닿으니 참 터무니없는 일이다.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몇천 년을 버텨왔으니 앞으로도 영원할까. 앞으로 잘하면 몇백 년, 더 잘하면 몇천 년 갈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
* 환경과조경 341호(2016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진양교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조경학과 및 도시지역계획학과에서 공부했으며, 강원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1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2년부터 CA조경기술사사무소를 열고 실무의 최전방을 절절하게 체험하고 있다. 2010년 봄부터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의 전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주요 설계 작품으로 하늘공원, 한강 반포공원 등이 있으며, 저서로 『기억과 상징으로의 여행』, 『건축의 바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