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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출판기피증
  • 환경과조경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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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건대 『환경과조경』에서 독자 여러분의 시간을 가장 덜 빼앗는 꼭지는 ‘워크 & 크리티시즘work & criticism’, 특히 외국 작품이 실린 지면일 것 같다.


“그냥 사진발 아닐까?”

“페이스북 링크에서 두 달 전에 이미 본 건데?”

“설계비 제대로 받을 수 있고 공사비 넉넉해서 좋은 재료 쓸 수 있으면, 설계자가 합리적인 조건으로 감리까지 할 수 있으면, 우리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뭔가 다르고, 근사하네! 다음에 시간 날 때 제대로 읽어보자.”


적지 않은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작품 지면을 빛의 속도로 넘기실 것이다. 작품을 설명하는 텍스트를 정독하는 독자는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환경과조경』 리뉴얼을 기획하던 3년 전 가을, 가장 큰 혁신이 필요한 지면은 작품 꼭지라고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았다. 사진의 질을 높인다, 해외와 국내 작품의 비율을 잘 조율하는 건 물론이고 국내 작품을 적극적으로 발굴한다, 사진만 나열하는 화보식 구성을 극복하고 가급적이면 비평을, 아니면 설계 노트나 인터뷰라도 함께 싣는다는 큰 편집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해외 작품의 비율을 낮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조경 전문지가 국외의 최신 경향이나 디자인 쟁점에 지면을 할애하는 게 잘못된 방향은 아니다. 다양한 경로의 취재와 조사, 여러 단계의 검토 회의를 통해 양질의 외국 작품을 선정하려고 애쓰고 있다. 실은 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잘 알려진 유수의 세계적 사무소든 가진 거라곤 의욕밖에 없는 동구권의 신생 사무소든 대체로 해외의 조경설계사무소에서는 반응이 아주 빨리 오기 때문이다. 게재 의사를 타진하면 대부분의 경우 잘 정리된 텍스트, 저작권이 해결된 사진, 출판에 최적화된 도면과 그래픽 등이 한 묶음으로 며칠 안에 바로 날아온다. 작은 사무실이더라도 홍보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를 따로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디자인이 크게 바뀌었어요. 초기 콘셉트와 완전히 달라져서 우리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재하도 업체가 시공을 한 터라 완성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감리 계약을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니 설계 이후의 과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실정이에요. 우리가 설계한 거라고 도저히 보기 어렵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점점 터무니없어져서 결국 산으로 갔어요. 말도 하기 싫어요.”

“이제 겨우 완공해서 식재가 아직 볼품없을 텐데요.”

“준공 직후라 지주목이 나무보다 더 주인공이에요.”

“관리가 안 되어서 엉망이에요.”


홍길동도 아니고 자기 작품을 자기 작품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 근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국내설계사무소에 연락을 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하소연이다. 섭외 단계부터 녹록지 않다. 어렵게 섭외가 되더라도 게재까지 걸리는 시간이 해외 작품보다 서너 배는 더 길다. 작품 구하기부터 지난하다 보니 비평 의뢰는 말할 것도 없다. 조경설계사무소가 넘쳐나는 이 땅에 작업의 양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예전처럼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대부분의 조경가가 작품 게재를 꺼려하거나 기피하는 현상. 우선 시스템 상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설계와 감리, 설계와 시공이 호흡을 함께 할 수 없는 제도적 여건 속에서 설계자의 의도대로 작품이 완성되기 어렵다. 잦은 설계 변경과 클라이언트의 비합리적 요구를 겪고 어렵게 실현해낸 작업이지만 만족스럽기 쉽지 않다. 적어도 수천 명의 손에 들릴 잡지를 통해 공개하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물론 겸양의 미덕이라는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잡지 편집자로서의 편향된 시각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조경가들에게 출판에 대한 마인드가 조금 부족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매체를 통해 작품을 출판한다는 것은 현재의 산물과 그 수준을 기록하고 공론의 영역에 소통시키는 과정의 첫걸음이다. 이런 거창한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출판은 홍보와 마케팅을 위한 아주 현실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출판에 신경 쓰고 정성 들이는 게 오히려 경제적이다. 열악한 설계 환경, 미비한 제도, 침체된 경기에 대처하기도 벅찬데 작품은 대체 뭐고 출판이 무슨 소용이냐는 반론이 벌써부터 들려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신세 한탄, 소모적이다. 불안감과 피로감을 확대 재생산할 뿐이다. SNS에 작품 이미지를 올리는 것처럼 즐겁게 『환경과조경』의 문을 두드려주시면 좋겠다. 『환경과조경』의 작품 지면은 일생일대의 역작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동시대의 실험과 성과를 함께 나누고 이야기하는 생산적 공간을 지향한다.

모처럼 이번 달에는 오피스박김과 이화원의 근작 여섯 개를 담는다. 지난 10년간 자신만의 설계 문법을 실험하고 구축해 온 그들의 작품에 독자 여러분의 시선이 오래 머무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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