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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원의 8경
다시, 정원을 말하다
  • 환경과조경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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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밋밋한 모습의 어울누리뜰 ⓒ정욱주

 

어울누리뜰

2010년 가을, 서울그린트러스트의 스무 번째 ‘우리 동네 숲’으로 조성된 이 정원은 20년 넘게 방치되어 있었던 잡초 밭을 휴식 뿐 아니라 텃밭 활동, 가드닝 활동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한 프로젝트였다.

서울그린트러스트에서 마련해준 설계비를 종잣돈으로 필자와 복지관 간의 기부와 매칭의 룰을 만들었고, 마스터 가드너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정원을 관리해줄 가드너가 필요했던 복지관과 학생들과 함께 정원실습을 할 공간이 필요했던 필자 간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져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정원에는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정원이 스스로 자라난 것도 있고,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보태져 지금의 모습으로 가꿔나간 부분도 있다. 호미질만 신경 쓰고 기록에 소홀하다보니, 지난 3년 동안 남긴 것은 사진과 수목 거래 명세서들뿐이다. 준공 당시 96주의 수목과 7,860본의 초화를 심었고, 완공 이후 지금까지 45주의 관목과 2,830본의 초화를 추가로 식재하였다. 이것은 구매한 물량이고, 주변 경사지에서 채집해 오거나 씨를 받아서 퍼뜨린 초화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은 식물들이 이 정원에서 자라고 있다. 그밖에도 모름지기 정원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조각 한 점과 물확 한 점을 들여와 나름 정원의 구색을 갖추었다.

아직 노련함과는 거리가 있어서 구상한대로 정원이 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어떤 놈들은 계속 비실거리고, 어떤 놈들은 너무 왕성해서 이제는 뽑아내야 할지경이며, 이에 더해서 잡초들은 항상 왕성하게 자라서 분위기를 부산하게 만들고 있다. 잡초도 삶의 투쟁을 하고 있는데 미안하게도 서로의 운명이 엇갈렸으니 어쩌겠는가. 계속 나고 계속 뽑고…. 정원이 유지되는 한 반복될 작은 전쟁이다. 볼만한 정원 사진 한 장 갖고자 하면 수 시간 품을 팔아야 가능하다. 저절로 아름다워지는 정원에 대한 희망은 포기한지 오래다. 정원은 사람 손때가 층층이 묻어있는 인공물이라는 확신이 들고 있다. 그린 섬Green Thumb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그 과정상의 즐거움도 적지 않다. 가꿈의 대가로 정원이 돌려주는 소박한 보상이랄까. 식상한 방식이지만 현 시점의 ‘어울누리 뜰의 소소한 8경’을 선정하여, 이 정원이 필자에게 되돌려준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한다.


1景 겨울의 스산함 속의 봄기운

겨울의 허전함이 나쁘지만은 않다. 설계를 하다보면 클라이언트들은 겨울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꽃이나 열매를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가지만 앙상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봄기운이 막돌기 시작하기 직전까지 겨울의 정원은 밋밋하고 허전하다. 하지만 이내 돌단풍, 돌나물 등 손톱만한 새순들이 웅성대기 시작하고, 신록이 정원을 덮는 데는 몇 주 걸리지 않는다. 항상 경이로운 봄의 원기 왕성함은 스산한 겨울이 있어서 대비되고 증폭된다. 겨울이 겨울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는 과대한 노력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 정취를 연출하기 위해서 수크령, 억새 등의 그라스 등과 큰꿩의비름처럼 꽃대가 녹지 않고 겨울을 버티는 초화들이 역할을 다하고 있다. 새순이 와글대는 초봄에 이들을 잘라주며 수고했다는 한마디를 잊지 않는다.


2景 보라 보라 보라 보라

늦가을 심어둔 구근류는 초화 팀의 선두 타자다. 크로커스가 아직 겨울 분위기인 정원에 듬성듬성 보라를 선보인다. 이어서 무스카리가 방울방울 보랏빛을 선보인다. 무스카리가 타석에서 물러설 즈음 매해 영역을 넓히고 있는 아주가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보라색을 뿜어낸다. 4번 타자는 자란이다. 우아한 자태의 자란은 매력적인 보라 꽃의 정점을 찍는다. 물론 이 순서를 알고서 플랜팅을 한 것은 아니고 가꾸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쨌든 보라 정원의 연출 순서 아이디어를 덤으로 얻게 되었다. 4, 5월의 어울누리뜰은 보라다.



정욱주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였고, 올린 파트너십(Olin Partnership)과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에서 조경가로 활동하면서 대규모 도시 공원, 대학 캠퍼스 마스터플랜프로젝트 등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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