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길을 잃다
2005년이었는지 아니면 그 전 해였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 언저리의 어느 날이었고, 겨울이었다. 모임에 참석했던 누군가 “정원 일은 봄이 아니라 겨울부터 시작되는 법”이라며, 정원 책을 위해 마련된 겨울 모임을 반겼다. 세 명의 필자와 한 명의 편집자가 마주 앉아 세 시간여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리가 파할 무렵 새로운 기획안이 싹텄다. 세 명의 저자가 1/3씩을 맡아 『유럽 정원박람회를 가다』란 제목의 책을 펴내려던 애초의 구상을 백지화한 대신, 세 명의 필자가 각기 한 권씩의 책을 따로 펴내기로 한 것이다. 첼시 플라워 쇼로 대표되는 영국의 다양한 정원 축제와 매년 개최 장소가 바뀌는 독일의 정원박람회는 그 배경과 성격이 꽤 상이하고, 각각 한 권의 책으로 묶을 수 있을 만큼 관련 내용이 풍부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를 맡기로 한 권진욱 교수 역시 쇼몽 가든 페스티벌과 관련된 자료 축적이 상당한 상태였다. 그렇게 해서 『영국의 플라워 쇼와 정원 문화 - 정원 디자인의 최신 경향과 실험적 사례들』(윤상준, 2006년 4월 15일 출간)과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 정원박람회가 만든 녹색도시를 가다』(고정희, 2006년 6월 10일 출간)1를 두 달 간격으로 잇따라 펴냈다.2
아마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정원 관련 도서를 기획해보고자, 틈 날 때마다 대형 서점의 정원 서적 코너를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당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는 적어도 세 군데 코너는 돌아야 정원 신간을 모두 살펴볼 수 있었다.
우선 가장 많은 종수를 자랑하는(?) 정원 가꾸기 실용서는 ‘여행·취미·생활·건강’코너에, 몇 종 되지 않았던 정원 이론서와 전원주택 정원처럼 건축(집짓기)과 관련된 정원 만들기 책은 ‘과학·기술공학’ 코너에 각각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찾기 어려웠던 책은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한 정원 에세이였다. ‘소설·시·에세이’ 코너에 비치된 이 책들은 출간 직후 한창 잘 팔리는 시기에는 눈에 띄는 곳에 진열되어 있어 손쉽게 확인이 가능하지만, 그 시기를 놓치게 되면(물론 출간 당시 일간지 북 섹션을 비롯해 여러 경로를 통해 관련 정보가 퍼져나가기에 대부분은 출간 여부를 인지하게 되지만) 출판사 이름 가나다 순서대로 혹은 책 이름 가나다순으로 자리를 부여 받기 때문에 검색을 하지 않으면 쉬이 발견할 수 없다. 도서검색대에서 ‘정원’이란 키워드를 입력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지만, 검색을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정원’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 중에서 정원과 관련 없는 책이 최소 10배 이상은 된다. 또 ‘정원’을 출판사 이름에 사용하고 있는 곳도 서너 곳 있을 뿐만 아니라, 필자 이름에 ‘정원’이 포함된 경우도 적지 않다. 끝없이 이어지는 검색 결과를 몇 차례 클릭하다가 상세 조건 검색을 시도하지만,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뿐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는 쉽지 않다. 건축 도서가 아주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책부터 대중적인 에세이까지 비교적 가까이 몰려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일례로, 서현 교수의 『빨간 도시』나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같은 에세이도, 건축 이론서도, 건축 비평서도, 건축기사 문제집도, 구조와 설비를 다루는 실용서도, 집짓기 책도 모두 ‘과학·기술공학’ 코너의 건축서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물론 건축가 조한의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처럼 ‘인문·역사·문화’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이는 일부러 의도했을 가능성이 크고), 어떤 건축가는 왜 건축 책이 ‘예술’ 코너가 아니라 ‘과학·기술공학’ 코너에 있냐며 발끈할 수도 있겠지만, 길 잃은 아이마냥 이 코너 저 코너를 기웃거리다 검색 한 번 하고 다시 새로운 코너로 발걸음을 옮길 때면, 절로 투덜거림이 삐져나온다. 그렇게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몇 차례 돌다가 ‘정원은 과연 무엇인가’란 근원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물은 적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기특한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