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1313~1375)의 소설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돌던 중세 이탈리아의 피렌체가 배경이다. 이야기는 열 명의 젊은 남녀가 흑사병이 퍼진 도시, 피렌체를 떠나 가까운 시골 마을인 피에솔레의 한 저택에서 보름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매일 밤 저택의 정원에서 하나의 주제를 놓고 열 사람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날의 최고의 이야기꾼을 선정하는 놀이를 했다. 보름이긴 하지만 일주일 중 하루는 합창의 시간으로, 또 다른 하루는 신의 날로 정해 쉬었기 때문에 딱 열흘간, 열 사람의 총 백 개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책의 제목이 ‘열흘’이라는 뜻의 데카메론이다.
여기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언급하는 이유는 물론 소설 자체를 분석하기 위함은 아니다. 정원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보카치오는 이 소설을 실제로 흑사병이 돌던 1348년부터 구상했고 병이 잠잠해진 1353년에서야 원고를 탈고했다. 그러니 흑사병을 피해 시골의 주택으로 피난을 떠났다는 소설의 설정은 단순한 이야기 전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어찌해볼 수 없는 재앙 속
에서 보카치오가 상상해낸 혹은 실제로 해보았을 현장상황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듯싶다.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사실적으로 풀어보면 이렇다. 검은 쥐가 옮기는 전염병인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은 인구의 30~60%를 잃게 된다. 통계상으로만 짐작해도 두 사람 중 하나, 4인가족이라면 그중 반이 병으로 죽은 상황이다. 나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 사람들은 병에 걸린가족을 돌보는 대신 이들을 피해 도망을 쳤다.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보카치오가 이런 상황 속에서 시골 저택의 정원을 떠올렸다는 것이 놀랍고 신선하고 그리고 참 당연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때의 내가 보카치오의 입장이었다면 나 역시도 전염병이 들끓는 도시를 떠나 시골집에서 큰 안식과 위로를 받지 않을까 충분히 상상되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 예를 들 수도 있다. 나의 어머니는 지병인 당뇨 합병증으로 1년간 투병을 하시다 결국 생을 마감하셨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더 이상 가망 없다는 진단을 받고 어머니께서 가족에게 한 부탁은 자신을 병원에서 꺼내 어머니의 친정인 충남논산의 시골집으로 내려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건 생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담긴 마지막 소망이었다.
오경아는 방송작가 출신의 가든 디자이너로 다양한 영역과의 협업을 통해 독창적이면서도 상호 조화로운 정원의 세계를 꿈꾸는 중이다. 16년간의 방송작가 활동을 접고 2005년 영국으로 떠나 The University of Essex에서 조경학을 공부했고, 이후 2012년 귀국해 정원 전문회사 오가든스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네이버캐스트에서 연재한 정원 콘텐츠를 엮은 『정원의 발견』을 비롯해 『소박한 정원』, 『영국 정원 산책』 등 다수의 정원 관련 서적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