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생명체들이 주변 환경에서 주어지는 여러 가지 특별한 기회를 늘 활용하는 것처럼, 생태계 또한 우리가 부분적인 지식만으로는 결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부분은 오직 전체 맥락 안에서만 특수화된 역할을 맡는다.”
- 어니스트 칼렌바크 저, 노태복 역, 『생태학 개념어 사전』, 에코리브르, 2009.
200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정치적·문화적 논란의 중심에 있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지난 3월 21일 개관했다. DDP는 규모의 측면에서 보면 1993년 전관을 개관한 예술의전당 이후 서울에 건립된 최대 규모의 복합 문화 공간이다. (1980년대 추진된 예술의전당은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 아트센터(복합 예술 공간)로 계획되었다.) 2004년 참여정부가 추진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광주광역시 소재)의 개관이 늦어지면서 DDP는 21세기 최초, 최대 규모의 복합 문화 공간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예술의전당, 국립아시아문화전당, DDP 등 대형 문화 프로젝트는 플래그십flagship 프로젝트 또는 아이콘 프로젝트라고 불린다.
플래그십 또는 아이콘 프로젝트는 대개 격렬한 논란을 유발하며 논쟁이 벌어지지만 논의의 접점을 잡기도 쉽지 않다. 도시계획적 측면, 역사적 측면, 문화적 측면, 산업적 측면, 지역공동체적 측면 등 복잡하고 복합적인 맥락이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DDP 역시 이를 피해갈 수 없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다만 개관 시점에서 우리는 어떠한 시각에서 이 거대 문화 공간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고 예측해야 하는지 말해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 DDP에 대해 많은 이들이 비평적 측면에서 여러 각도의 유의미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지만, 필자는 서울의 문화·산업 생태계에서 더 나은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당부하는 관점에서 글을 쓰고자 한다.
DDP, 새 가치 창출의 중재자가 되자
서울 시장이 초기 DDP 건립을 주도했던 오세훈 시장에서 박원순 시장으로 바뀌면서 DDP의 비전은 ‘세계 디자인의 메카’에서 ‘디자인 창조 산업의 발신지’로 궤도를 수정했다. 허울뿐인 비전이라 불릴 수 있지만, 비전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디자인에서 창조 산업으로의 확장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DDP라는 그릇이 담고자 하는 창조 산업의 범위는 매우 넓다. 창조 산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영국에서는 ‘개인의 창의성, 기술, 재능 등에 기원을 두고, 지적재산권의 발생 및 활용을 통해서 부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크게 13가지 산업, 즉 광고, 건축 설계, 미술품과 골동품, 수공예, 디자인, 영화, 쌍방향 소프트웨어, 음반, 공연 예술, 출판,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포함하고 있다. 창조산업의 정의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창의성creativity’, ‘기술technology’, ‘재능talent’을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DDP가 ‘디자인 창조 산업의 발신지’가 되기 위해서는 동대문, 서울, 아시아, 세계의 ‘창의성’, ‘기술’, ‘재능’이 모이는 장소(DDP에서는 이를 ‘터’라는 말로 부른다)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쟁점은 ‘창의성, 기술, 재능을 어떻게 모이게 할 것인가’이며 나아가 ‘이들이 결집하는 모멘텀momentum은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가’이다. DDP가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전시를 기획하고 유치하면 발현되는가, DDP가 한국 디자인의 원형을 전시하고 해설하면 실현될 수 있을까. 아직 정확한 해답은 없지만, 찾아야 하는 숙제다.
도시 문화적 관점에서 문화 공간은 중재자에 가깝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이고 작품을 선보이고 이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모인다. 이를 중재하는 곳이 문화 공간이다. 고전적으로 공연장, 박물관이 이러한 역할을 해왔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3세대 문화 공간에서 중요한 지점은 예술가(작품)를 관객과 만나게 하는 중재적 역할(마케팅)을 넘어서,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관계를 형성하게 하고 창의적인 관객들의 관계적 참여를 이끄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DDP를 통해 창의적인 디자이너, 예술가, 기획자들이 어떻게 상호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을 통해 창의적 구상을 펼치게 될 것인가. 스스로 창의성을 발현하는 장소가 되는 것, DDP가 주목할 지점의 하나다.
최도인은 메타기획컨설팅에서 예술 경영, 문화 공간, 도시 문화 전략 등의 컨설팅을 총괄해 왔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서울시립교향악단, 통영국제음악당, 아시아예술극장, DDP 운영 체계 컨설팅 등이 있다. 창조 도시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의 저서 『크리에이티브 시티 메이킹』 한국어판을 기획·감수했다. 서울공연예술센터 국제심포지엄, 타이완 타이베이현 창조도시 국제심포지엄과 러시아연방 브리야트 바이칼포럼 등에 초청받아 기조 발제를 하였다. 2011년부터 북방아시아 예술가와 기획자들의 창작 협력 프로젝트인 유목창작여행(Nomadic Artists’Journey)의 프로젝트 디렉터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