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디자이너 9인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올해 설립된 한국조경학회(회장 김한배) 정원학연구센터(센터장 조경진)가 ‘정원문화 심포지엄’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판을 깔았다. 부제는 좀 길다. ‘Garden Talk: 매혹의 공간, 정원을 디자인하다.’ 그 밑에 설명이 한 줄 더 달려있다. ‘아홉 명의 디자이너의 정원 이야기.’
9인의 발표자는 30대 신진 디자이너부터 50대 중견 디자이너까지 연령대만 다양한 것이 아니었다. 서울숲 같은 대형 공원을 설계한 조경가부터 설계 교육과 실무를 병행하는 대학 교수, 여러 프로젝트에서 색다른 플랜팅 디자인을 선보인 정원 디자이너, 쇼 가든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정원 설계사의 대표, 정원은 물론 인테리어 성격의 공간까지 통합적으로 다루는 디자이너까지, 활동 무대도 경력도 다양했다. 그들이 풀어낸 정원 이야기도 개인 주택 정원부터 공공 정원, 전시회까지 그 폭과 결이 다채로웠다.
지난 5월 8일 고양국제꽃박람회와 코리아가든쇼가 펼쳐진 일산호수공원 내 플라워컨퍼런스룸에서 만난 정원 디자이너들의 9인 9색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9인 9색 정원 이야기
“우리의 도시는 가꿈과 돌봄이 필요하다”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한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는 복지관 정원 두 곳과 보육원 정원 조성 사례를 소개했다. 본지 4월호 특집 “다시, 정원을 말하다”에 “어느 정원의 8경”이란 제목으로도 소개된 바 있는 ‘어울누리뜰’(지적장애인복지관)은 일반적인 개인 주택 정원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엄연한 정원이다. “가꾸는 도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그의 발표는 정원의 범주와 정의가 확장되고 있으며, 정원의 핵심 키워드인 가꿈이 왜 도시로 확산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했다.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은 아예 스몰 퍼블릭 가든이란 용어를 언급하며, 식물원이나 미술관처럼 공공이 만들었으나 법적으로 공원으로 분류되지 않는 곳, 개인이 만들었으나 공공에게 개방된 장소에 만들어지는 정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공 정원을 조성하는 과정의 지난함에 대한 그의 위트 넘치는 발표도 흥미로웠지만, 공공 정원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이유로 그가 제시한 여러 근거(커뮤니티 활성화, 범죄율 저하 등)도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의 발표 제목이기도 했던 “열린 정원, 공공 정원”이 도시를 풍요롭게 하리란 기대감도 싹텄다.
이어진 발표에서 이재연 소장(조경디자인 린)은 자신이 디자인한 세 곳의 정원을 소개했다. ‘삶 속의 정원, 일터의 정원, 장식적인 정원’으로 구분된 정원 사례는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전달했지만, 그 정원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소개된 에피소드는 이미지에서 얻을 수 없는 더 많은 생각거리를 전달했다. “오래된 정원은 가족사의 기록이다. … 때로 정원은 식물에대한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 정원은 시간이 완성한다.” 특히 1년 동안 경관이 변화하는 모습을 4계절 9절기로 나누어 디자인을 한다는 대목은 꽤 인상적이었다(그가 소개한 작품 중 한 곳은 이번호 48쪽에 수록되었다.)
“때론 나뭇가지 하나가 정원의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한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한 김용택 소장(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은 “도시 정원의 유형과 디테일”이란 제목 하에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어떤 방식으로 디자인을 풀어나가는지를 찬찬히 소개했다. 마치 원래 그러한 지형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사진 속 정원의 모습이 섬세한 지형 조작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설명에서는 디테일의 중요성이 달리 보이기도 했다.
우현미 소장(디자인 알레)은 다채로운 오브제를 갖춘 쇼룸, 실내외 조경, 플라워 & 인테리어 데커레이션, 디스플레이 등 복합적인 디자인 솔루션을 제안하는 디자이너답게 현대백화점 옥상 정원을 비롯한 독특한 상업 공간 정원 사례를 소개했고,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는 “네 개의 정원, 두 개의 질문”이란 타이틀로 개인 정원과 공공 정원(하나는 전시회)을 디자인하면서 각각 맞닥뜨렸던 근본적인 질문 두 가지를 던졌다. ‘당신이 꿈꾸는 자연은 무엇입니까’는 “통제 가능한 자연과 야생의 거친 자연”을 원했던 각기 다른 개인 정원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며 마주했던 물음이고, ‘당신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입니까’는 한 사람의 꿈보다 여러 사람에게 의미 있는 자연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디자인한 공공 정원 작업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안계동 대표(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는 한옥 정원 한 곳과 가든 카페 한 곳을 디자인했던 경험을 나누어주었다. 특히 제대로 된 한옥 정원 사례가 많지 않은 상황이기에, 그가 소개한 율수원 디자인 과정은 그 의미가 더 커보였다. 또 사옥 1층을 가든 카페로 디자인한 사례는, 자신이 디자이너이자 클라이언트였기에 가능했던 여러 가지 디테일 실험이 흥미로웠다.
‘화무십일홍’을 늘 마음에 새기며 작업을 한다는 조혜령 소장(정원사친구들)은 “식재 계획시 꽃의 화려함만을 고려하는 것은 어리석다”며 정원의 즐거움이 시각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후 자신만의 ‘정원 문화 사용법’을 들려주었고, 최윤석 대표(그람디자인)는 이제 국내에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쇼가든에 얽힌 경험담을 전했다. 가장 대표적인 과일인 사과의 경우, 사람들이 사과 열매는 잘 알아도 정작사과나무를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어서 쇼 가든에 일부러 포함시켜보았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색다른 아이디어와 접근방식에 시선이 쏠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가든과 힐링은 같지 않다. ‘가드닝’과 힐링이 같다”는 대목을 힘주어 강조했다.
심포지엄이 끝난 후 코리아가든쇼를 둘러보는 내내최윤석 대표가 이야기한 “정원은 늘 우리 곁에 있던 것이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