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현 한국조경사회 회장 인터뷰
지난 5월 19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한국조경학회(회장 김한배) 주관으로 진행된 이 공청회는, 지난 2013년 4월 24일 이노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을 위해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현재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사회를 비롯한 조경 단체들은 건설 분야의 반대로 제정이 지연되고 있는 이 법안을 6월 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조경계의 관심과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이 밖에도 최근 조경 관련 단체들은 산림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등 제도 변화에 활발하게 대응하고 있다. 본지는 한국조경사회의 정주현 회장을 만나 조경산업진흥법을 비롯한 조경 관련 법 제도 정비의 배경과 그 추진 전략에 관해 의견을 들어보았다.
도시 공원에 대한 국고 지원의 의미와 영향: 생활권 공원과 국가 도시 공원
laK 현재 추진하고 있는 조경 관련 법 제·개정 배경에 관해 설명해 달라.
CJH 2000년대 후반 조경 산업은 호황의 절정을 누렸으나, 그 이후 조경 분야의 성장 저하 속도는 너무나 빠르다. 경기가 침체되자 조경 관련 법과 제도가 없으니 일을 만들어내기 무척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동시에 조경이 미래 지향적인 분야라는 인식도 정책 결정자들 간에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 제도를 정비할 적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생활권 공원과 국가 도시 공원이 그것이다. 우선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통해 생활권 공원과 지방의 대형 공원을 지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실 국토교통부는 법만 담당하고 있지, 지난 20년 동안 한 번도 예산 지원을 하지 않았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1980.6.1. ‘도시공원법’ 제정)을 다루는 곳이 국토교통부의 녹색도시과인데 법의 사업 집행을 모두 지방자치단체 사업으로 위임해 놓았다. 반면 예산을 배분하는 기획재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에 국고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때문이다.
대통령 공약 사항에 ‘도시공원 조성에 대한 국비 지원’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이를 근거로 공원 사업에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고자 한 것이 ‘생활(권) 공원’이다. 우리도 이 공약에 큰 기대를 걸었다(지난해 국토교통부는 국비 2,000억 원을 투입해 향후 5년간 총 1,000개의 ‘생활 공원’을 조성하려는 사업계획을 밝혔으나, 올해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임기 5년 동안, 첫 해에는 계획을 세우고, 올해부터 향후 4년간 1,000개의 도시 공원을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도시 공원 한 개소당 대략 5억 원 정도의 조성비가 든다. 그러면 총 5,000억 원에 달하는데, 이를 모두 국고로 감당하긴 힘들 테니 국비와 지방비를 50대 50으로 매칭하여 2,500억 원을 지원받는 것으로 로드맵을 짜고 예산안을 올렸다. 첫해에는 100개의 도시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니 이에 필요한 국비는 250억 원이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이미 복지에 많은 예산이 배정되었다는 이유로 공원에는 예산을 전혀 할애하지 않았다. 이에 국토교통부와 논의해서 예산을 예결위에 다시 올리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등 애를 많이 썼으나 최종적으로 국비지원이 무산되었다. 사실 타 부처에 비해 많은 예산을 올리는 국토교통부의 사업 중 공원 관련 업무는 우선순위에서 쉽게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올해는 다른 항목의 예산을 일부활용해 도시 공원을 조성하고 다음 해에 기획재정부에 다시 신청하겠다는 복안을 내놓았다. 앞으로 도시 공원에 국비를 지원받으려면 선례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가 도시 공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서 국가 도시 공원 시스템을 만들자는 이야기다. 각 광역자치단체마다 도시 공원 한 개씩을 국가 도시 공원으로 지정하여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대형 공원 하나당 조성 비용을 3,000억 원 가량이라고 생각하면 17개 광역자치단체를 합하면 4~5조 원이 된다. 전국에는 2만여 개의 도시 공원이 지정되어 있지만, 그 가운데 약 60%는 조성되지 못한 실정이다.
2020년이 되면 장기미집행시설 일몰제 때문에 도시공원 지정이 해제되는 상황이지 않은가(10년 이상 된 미집행 공원이 그 대상인데, 이미 2015년 10월 1일부터 자동 실효되는 미집행 공원이 생기게 된다). 그때가 되면 공원 녹지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니 큰 공원 하나라도 살리자는 이야기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열악하다보니 큰 공원에는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국토교통부 입장에서는 일단 지방자치단체에 일임한 사업을 다시 국가 사업으로 가져오기 힘들다. 그러니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시 예산을 달라고 국가에 요청하는 편이 수월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초자치단체 시장·군수 협의회에 국고를 요청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생활권 공원과 국가 도시 공원 두 가지에 국고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차츰 정비해 나가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그동안 4대강 건설 등 대형 토목·건축사업이 많았기 때문에 조경 분야에 큰 관심을 쏟기 힘들었다. 그런데 최근 회색 사회간접자본(SOC)보다 녹색 기반 시설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니 이제 공원이나 녹지에 지원해야겠다는 마인드가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국토교통부도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기획재정부가 개정안 자체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그간의 관행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의 인식도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하드웨어는 ‘도시공원법’ 개정, 소프트웨어는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으로,
laK ‘조경산업진흥법’은 어떤 배경에서 준비되고 있는 것인가?
CJH 법 제도 정비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하나는 기존법, 즉 ‘도시공원 및 녹지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서 실제 하드웨어인 공원·녹지 등을 국고로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조경산업진흥법’은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법이다. 이 진흥법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만드는 제정법이라 추진이 쉽지 않다.
지금까지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 조경과 관련된 유일한 법이다. 산림이나 건축 분야에는 ‘산림’ 혹은 ‘건축’이란 이름이 붙은 법이 10~20여 개가 된다. 반면 ‘조경’이란 이름이 붙은 법은 아직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건축기본법’(2007.12.21. 제정)이 만들어지자, 조경계에서도 그 영향으로 처음에는 ‘조경기본법’을 만들고자 했다(2010년 1월 5일 ‘조경기본법안’이 의원 발의되었으나, 관련 부처가 반대하여 2012년 5월 29일 회기만료로 폐기되었다). 법이란 기본법, 일반법, 특별법으로 구분되는데, 당시 무리해서 기본법부터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건축기본법’은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김진애 의원이 치밀한 로드맵을 준비해 시작한 반면, 조경계는 당시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와 전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법안 제정을 밀어붙였다. ‘조경기본법’이 좌절되자 2012년에는 당시 한국조경학회 양홍모 회장이 ‘녹색기반법’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다양한 공원, 녹지, 하천, 그린벨트 등을 연결하는 시스템은 환경부의 소관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조경계는 계속 법을 제정하고자 국토해양부와 협의를 해 나갔고 특별법인 ‘조경산업진흥법’을 만들어보자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사례 조사를 해보니,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산업을 육성하는 진흥법이 있었다. 일례로 ‘소금산업진흥법’도 있고, 특히 IT산업 분야는 진흥법이 많다. 이렇게 다른 진흥법 내용들을 참고하여 국토교통부와 협의해가며 법안을 만들어갔고, 지난해 4월 24일 이노근 의원이 대표 발의하게 된 것이다.
laK ‘조경산업진흥법’이 만들어진다면 실질적으로 어떻게 조경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가?
CJH 담당 부서인 국토교통부 내부에 이 법을 다루는 담당 조직이 생기게 될 테고, 이는 조경계에 대한 예산 지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조경 산업의 진흥을 위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기본계획을 세우게 되고, 조경산업진흥센터와 같은 법정 단체를 만들 수 있으며, 산업진흥단지를 조성해 입주 업체에 세제 지원 등을 할 수도있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조경산업진흥법’을 제정하게 되면, 조경계에는 기본적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법이 하나씩 생기는 셈이다. 그 이후 계획은 ‘녹색기반법’을 다시 준비하는 것이다. 이제 국토교통부도 그린인프라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laK ‘조경산업진흥법’ 제정에 대해 대한건설협회가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CJH 대한건설협회는 조경 관련법이 생기면 조경이 건설 분야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현재 법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지만, 차후에 법 개정을 통해 분리 발주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건설업은 일반건설업과 전문건설업으로 나뉘는데, 조경은 이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되어 업종이 3개가 된다. 일반건설업이란 토목, 건축, 토목건축, 산업·환경설비, 조경 이렇게 5가지를 말하고, 전문건설업 안에는 조경식재와 조경시설공사업이 있다. 일반건설업으로 본다면 조경은 토목이나 건축과 대등한 건설업의 한 종류다. 그런데 대한건설협회는 조경을 토목·건축의 하위 시스템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의 명분이 부족하다.
laK 최근 정원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는데,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하는가? 지난 5월 14일 있었던 ‘산림청과 조경계와의 상생 발전을 위한 간담회’에서 이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갔는가?
CJH 산림청과의 대화는, 작년 9월에 산림청장 면담을 하면서 산림청과 조경계 간 실무위원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현안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연말에 첫 회의를 했는데, 그때 산림청이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관련 내용을 가져왔다. 내용을 보니 우리가 해야 할 정원에 관한 내용들이 상당 부분 담겨 있었다. 산림 분야가 보기에는 정원에는 주인이 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러한 산림청의 행보에 위기감을 느껴 지난 해 한국정원문화협회를 발족하게 된 것이다. 이후 올 2월에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정원 조성을 지원하고 인력을 육성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현재 여·야 국회의원이 모두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 (2014.2.14. 이낙연 의원 대표 발의; 2014.2.28. 경대수 의원 대표 발의)했으므로 합의해서 통과시킬 가능성이 크다.
laK 조경계 일부에서는 건설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산림청이 정부 예산으로 일을 만들어내면, 어차피 하도급을 받더라도 조경 인력이 참여할 수 있으니 조경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겠냐는 의견도 있다.
CJH 그런 딜레마도 있다. 이번 산림청과의 간담회에서 이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산림청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원 관련 사업은 100% 조경공사업으로 발주하여 산림조합은 빠지고 조경업체만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문제는 상당수의 산림조합이 조경공사업 면허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거다. 다른 산림 사업처럼 산림조합과 수의계약을 맺지는 안겠다고 하는데, 특히 지방에서는 조경공사업으로 발주한다고 해도 산림조합이 조경공사업 면허를 내면, 나중에는 관행대로 우리 식구 감싸기를 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제도적 울타리, 정부와의 관계
정부에는 조경계와 관련지을 수 있는 여러 부처가 있다. 우리는 우리를 지원하고 예산을 만들어주는 조직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예산과 조직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셈이고, 산림청은 그간 조경에 관계되는 사업을 많이 추진해 왔으나 조경 쪽에 실질적으로 일을 많이 주지는 못했다. 문화적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문화체육관광부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일전에 문화체육관광부에 ‘정원문화육성법’과 같은 법안을 올리려고도 계획해 보았으나, 아직까지는 부처 내 조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앞으로 세미나와 같은 활동을 통해 정원이 문화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laK 문화체육관광부는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법률’의 주무부처인 산림청을 의식해서 정원에 관심을 가지기 힘들지 않겠는가?
CJH 그래서 지금 교통정리를 잘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은 산업적으로도, 법 제도적으로도 정부와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실리적으로 보면 ‘조경’이란 단어에 너무 연연하지 않을 필요도 있다. 여러 부처와 대화를 해보니 ‘조경’이란 말은 결국 국토교통부의 소관이다. 환경부는 생태 복원, 산림청은 도시숲, 국토교통부는 공원 녹지, 문화체육관광부는 정원 문화, 이런 방식으로 유연하게 역할을 분담하면서 여러 부처와 관계를 맺고 시장을 키워야 한다. 도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변곡점에 와 있다. 좋은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조금만 더 서로 도와주며 노력하면 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