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지난 해 막바지는 조경기술자의 자격에 관한 국토부의 법률개정으로 시끄러웠다. 그 와중에 밴드와 카톡 회의의 홍수 속에서 우연히 마주한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재욱 사무국장의 말이 명쾌했다. 그이의 말중 “과거 건설 호경기 시절 건축과 토목의 그늘 아래에서 조경은 노력을 안 해도 혜택을 많이 입었습니다. 건설 불황기인 지금, 건축, 토목 기술자도 일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작년 건축, 토목 특급기술자 조항을 넣은 것이지 담당자의 단순 실수나 오해가 있어서가 아닙니다”라는 구절이 정말 마음에 확와 닿았다. 산림은 물론이고 땅을 다루는 모든 건설 분야에서 일은 없고 사람은 많은 것이다. 정말이지 옛날 누구 말과는 정반대로 땅은 좁고 할 일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은 건설 불황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건설 불황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그리 정확한 말은 아니다. 불황기라는 말은 곧 또는 나중에 좋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담은 말이다. 선진 국가의 경우, 건설 분야가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5%정도다. 우리의 경우에는 최악의 기간이었던 2012년과 2013년에 3%대였다. 그때는 불황기가 맞았다. 그전까지는 건설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20% 이상을 상회하며 우리나라의 전체 경제를 견인했다. 거짓말 같던 호황기를 불과 십 년도 못 누리고 불황을 제대로 맞은 것이다. 재작년 그리고 작년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건설 경기가 다소 호전되어 건설 분야의 비중이 선진국의 경우처럼 4~5%대로 올라왔다고 한다. 최악의 불황기가 지나고 살짝 경기가 좋아지는 상황에 있다는 얘기인데, 문제는 더 좋아지지 않고 이대로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강하다는 것이다. 주택 경기가 다시 살아나고 그래서 한 번 더 건설 경기를 정상으로 끌고 갈 기회가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설사 그런 호황이 다시 온다 하더라도 그건 일시적일 것이 틀림없거나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건설 경기는 일시적으로 회복될지도 모르지만 곧 다시 선진국형 고착화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일이 줄었다는 문제 외에도 또 다른 문제는 현재 너무 많은 사람들이 조경을 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졸업생이 너무 많은 것이다. 우리의 일 양이 더 늘지 않고 지금 수준에서 고착화될 것이라고 본다면 냉정하게 얘기해서 서너 개 대학의 졸업생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는데, 우리는 무려 50개에 육박하는 대학에서 조경 전공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졸업생을 줄이거나 현재 실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른 분야로 전향하는 것이 어렵다면, 그래서 현재의 실무 인력을 최대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게 어렵다면, 남아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모든 인력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의 장점은 실무 인력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훈련이 잘 되어 있고 혹독한 경쟁 속에서 성장해 왔다는 점이다. 우리의 조경 인력이 해외로 나갈 수만 있다면. 내 경험으로 볼 때 그들은 어느 환경에서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반년 동안 외국 도시의 조경 일을 수주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반년이 지나서야 겨우 계약 시점까지 와 있고 곧 최종 계약 과정을 진행할 요량이다. 설계 견적을 무려 11번이나 보내야 했고 설계비에 대한 밀고 당김의 실랑이도 적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난 아직도 최종 합의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번 경험으로 톡톡히 알게 된 것은 일개 조경설계사가 외국의 발주처와 설계 용역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경우 따져보아야 할 계약서만 하더라도 무려 50개가 넘는 조항이 담긴 30쪽짜리의 영문 문서인데다가, 모든 조항 하나하나의 내용이 정말 꼼꼼히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사항들이었다. 종합엔지니어링회사나 대형 건축설계사무소 같은 곳은 해외 업무 전담팀이 조직되어 있고 그러한 전담 팀이 계약 서류나 세금 관계 그리고 법규 사항을 조율할 수 있다. 하지만 크지 않은 조경설계사무소가 그정도 인력을 갖추기는 불가능하다. 모든 설계사무실이 영어를 편하게 말하고 쓰고 서류를 작성하고 법규를 검토할 수 있는 인력을 보유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외국 일을 수주하는 건 만만치가 않다.
그렇지만 우리의 미래는 오직 밖에 있고 그 외에는 대안이 없다. 밖으로 나갈 우리의 실력은 충분하니밖으로 나갈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조경사회나 한국조경학회 또는 관련 단체가 외국 일을 수주하고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조직이나 모듈을 마련할 필요가 절실하다. 전시성 이벤트나 불필요한 행사는 과감히 줄이고 좀 더 필요한 곳에 에너지와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되는 행사라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행사는 줄이되 그 행사에 들어갈 돈과 시간을 한 곳에 모아주어야 한다. 이를테면 외국 설계 수주 지원팀―영어도 도와주고, 세무 사항과 법규를 검토해 주고,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프로젝트 전액 보험(project liability insurance)도 보증해 줄 수 있는 팀― 같은 것이 절실하다. 필요하다면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모든 설계사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을 수도 있다. 대신 그 돈을 실질적 해외진출에 도움이 되는 곳에만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행사를 너무 많이 한다. 대부분 소모적이고 전시적이다. 의도는 안 그렇겠지만 결과가 그렇다. 에너지와 자원은 행사에 소모해버리고 정작 일을 수주해서 미래를 도모하려는 노력은 미미하다. 건축, 토목 그리고 산림과의 싸움에서 실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날의 영화를 무조건 되돌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철 안든 아이처럼 행동할 때가 아니다. 냉정하게 우리 것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되 대신우리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개척해야한다.
어느 회사가 외국으로 나간다고 동시에 모두 나가려고 노력하지는 말자. 대신 처음 나가는 회사에 힘을 모아줄 필요는 있다. 그 회사가 잘하면 일은 또 생길 것이고 새로 생기는 일들을 다음 회사가 맡으면 된다. 처음 회사가 다 맡을 거라고? 아니다.
분명히 장담하건대 다른 회사도 일을 맡게 된다. 한번 뚫린 곳은 어떻게든 알려지고 나누어지게 된다. 처음이 어려운 것이다. 처음 간 사람은 선두주자라서 아무래도 더 많은 일을 하겠지만 다음 사람들은 선두주자가 개척해 놓은 인프라를 따라 걸으며 더 좋은 기회를 맞을 수 있다.
제발이지 우리의 같은 꿈이 다른 하늘에서도 값지게 펼쳐질 수 있으면 좋겠다.
진양교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조경학과 및 도시지역계획학과에서 공부했으며, 강원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1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2년부터 CA조경기술사사무소를 열고 실무의 최전방을 절절하게 체험하고 있다. 2010년 봄부터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의 전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주요 설계 작품으로 하늘공원, 한강 반포공원 등이 있으며, 저서로 『기억과 상징으로의 여행』, 『건축의 바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