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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옥의 정원
  • 남기준
  • 환경과조경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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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수원은 완벽한 ‘복원’에 초점을 맞춘 곳이 아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복원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거주와 사용을 목적으로 지어지는 한옥과 정원은 이야기가 다르다. 치밀한 재현보다는 사용의 편의를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최근에 새로 지어지는 한옥에는 유리도, 잔디도 과감히(?) 쓰인다. 한옥의 장점을 취하되, 효율과 취향을 고려한 결과다. 자연스럽게 설계자에게는 선택지가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늬만 한옥’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옥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전국 곳곳에 한옥마을이 만들어지고 있고, 2011년에는 정부 출연 기관인 국가한옥센터도 설립되었다. 서울시는 한옥체험업과 도시민박업을 700개소 늘릴 계획을 발표했고, 국토교통부는 6월에 『한옥 설계의 원리와 실무』라는 한옥 설계 교재까지 발간했다. 한옥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옥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옥의 정원은 어떠해야 할까? 그저 마당이면 족한 것일까? 율수원은 도심형 한옥과 여러 조건이 상이하지만, 한옥 정원을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곳이기에 시사점이 꽤 있어 보였다. 도심 한옥은 훨씬 작은 규모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한옥 정원의 기본 조성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율수원의 설계자인 안계동 대표를 만나, 현대에 지어지는 한옥 정원을 중심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남기준(이하 남): 얼마 전 있었던 ‘정원 문화 심포지엄’에서 율수원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빛바랜 대학 시절 강의 노트를 뒤적이고, 다양한 사례 조사를 통해 현대에 조성되는 한옥 정원의 좋은 예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율수원 프로젝트를 맡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안계동(이하 안): 우연한 기회에 지인에게 소개 받았다. 2년여 동안 공들여서 한옥을 잘 만들어 놓았는데, 정원에는 손도 못 대고 있던 상황이었다. 건물이 모두 지어진 상태였고 담장까지 둘러쳐져 있어서, 수목이나 흙, 자재를 반입하기가 무척 곤란했다.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까지 함께 맡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남: 그동안 꽤 많은 설계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동심원의 대표작 중에서 전통 공간에 대한 설계는 언뜻 기억나는 작품이 없다.


안: 율수원처럼 본격적으로 전통 양식을 따르는 공간을 설계한 적은 없었다. 과거에 조성된 전통 정원과 현대에 실용적인 목적을 가미해 만들어지는 한옥의 정원은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은 욕심이 났고, 과정 자체가 무척 재미있었다.


남: ‘실용적인 목적을 가미했다’는 대목이 색다르게 들린다. 전통적인 양식을 바탕으로 하되, 현대에 요구되는 편의와 필요를 반영했다는 이야기일 텐데,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안: 처음부터 전통 공간의 완벽한 재현은 염두에 두지않았다. 문화재 복원 작업도 아니고, 희원과도 성격이 다른 곳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주인이 이곳에 살면서 생활하는 가옥의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미리 지어진 한옥 역시 큰 뼈대는 전통 양식을 그대로 따랐지만, 조명이나 난방 등은 모두 현대식으로 꾸며졌다. 조경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옥과 어울리는 전통적인 경관이 기본 뼈대가 되어야겠지만,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실용성을 적절히 반영했다. 텃밭을 포함시킨 것도 그 때문이다. 또 우리의 전통 정원은 경치 좋은 곳에 짓고 주변의 자연을 감상하는 차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곳은 주변경관이 무척 열악하다. 차경이 아니라, 도리어 차폐에 신경을 썼다. 클라이언트의 생가라는 특수성도 고려해야 했다. 무작정 전통적인 양식을 따르기보다, 예전에 살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이 되면 어떨까 싶었다. 건물이 이미 다 지어져 있는 상태였지만, 경관이 기억을 매개할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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