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탑골공원이 세워진 지 올해로 117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공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으로 본 근대 공원의 일면을 조명한 연구가 발표됐다. 지난 6월 26일, 서울시립대학교 경농관 빨간벽돌갤러리에서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의 심포지엄 ‘근대 동아시아 수도의 재편’이 열렸다. 세션1에서는 ‘남산의 근대화로 본 서울의 수도성’을 주제로 우동선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의 “이토 츄타와 조선신궁”,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의 “근대기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으로 본 한국 도시공원의 일면”, 염복규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의 “일제하 조선의 전원도시론 수용과 남산 남록 개발 논의의 의미” 등 3개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세션2에서는 ‘동아시아 수도의 근대화’를 주제로 박삼헌 교수(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의 “도쿄 투어리즘과 ‘제도帝都’, 도쿄의 탄생”, 신규환 교수(연세대학교 의사학과)의 “20세기 전반 북경의 도시공간과 위생”, 이길훈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의 “철도로 본 도쿄의 근대화” 등 3개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이 심포지엄에서 박희성 교수의 발표는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을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파악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였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일본인’을 위한 공원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남산공원은 오늘날 서울시민에게 여가와 휴식을 제공하는 안식처인 동시에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서울타워, 연인들이 남기고간 수천 개의 자물쇠가 달린 조망대, ‘남산’ 하면 떠오르는 음식인 ‘남산 왕돈까스’까지 남산공원과 남산을 둘러싼 일대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하지만 남산에 생긴 첫 공원인 왜성대공원의 개원 당시(1898년 11월, 대신궁 봉안식 기준) 남산 일대는 일본인을 위한 행락지로 개발됐다. 왜성대공원이 자리했던 남산의 북사면 일대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이 주둔했던 곳으로 일본인 거류지인 본정통과 인접하며 이후 조선신궁이 세워져 종교적 기능까지 담당하게 된다. 박희성 교수는 이 점에 주목해 근대 공원의 일면을 포착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와 같이 시민 사회의 성숙과 함께 자생적으로 ‘공원park’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을 위한, 일본식 공원’이 세워졌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초기 근대공원의 한계를 조명했다. 공원park과 정원garden, 공공정원public garden 개념이 혼재되어 사용되었던 당시 일본의 조원학은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되었고 엄밀한 의미의 공원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공공 정원에 머물게 되었다는 요지다. 또한 박희성 교수는 신사와 사찰을 중심으로 공원과 행락 문화가 결합한 일본 특유의 양식이 남산에 조선신궁이 세워지는 데 일조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발표에 관해 토론의 패널로 참석한 성종상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는 “남산 공원은 우리와 친숙한 곳이지만 그 족보나 역사에 대해 정확히 알 기회가 없었는 데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평가하며 “공공 정원과 공원의 개념 정의에 대한 부분은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남산에 조성된 공원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고, 시민에게 건강과 휴식, 레크리에이션 기능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공공 정원에 적합하다고 보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공 정원의 개념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식물’이라며 초창기의 근대 공원이 식물원과 과수원을 포함한 식물과 관련된 시설을 어떻게 갖추고 있었는가가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근대 공원의 민낯을 보는 일
지난해 한 인터넷 신문에 “남산 케이블카 ‘오 마이 갓’, 볼거리 부족 ‘오, 노’”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보고 남산을 찾은 외국인들이 생각보다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며 실망감을 안고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남산을 찾은 외국인들은 케이블카, 서
울타워, 야경 등의 파편적이고 단순한 이미지만 기억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남산이 축적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지층이 깊고 두터움에도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이기에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친숙한 공간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했다는 점에서 서울학연구소 심포지엄은 의의가 있다. 남산에 조성된 공원의 변천 과정을 통해 어원과 개념,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뿌리를 더듬으며 근대 공원의 민낯을 보는 일은 당시의 근대성을 이해하고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남산의 ‘공원’ 변천 과정으로 근대 도시 공원의 일면을 추적한 박희성 교수뿐만 아니라 조선신궁의 건립 이유와 양식과 유형을 연구한 우동선 교수, 남산주회도로 부설과 고급 주택지 개발 등에서 나타나는 일제강점기 전원도시론을 연구한 염복규 교수는 남산 일대의 근대화 과정을 재구성하며 남산을 다각도로 바라보았다. ‘근대 동아시아 수도의 재편’ 심포지엄은 ‘근대이행기남산’을 조경적, 건축적, 도시학적 시각을 통해 봄으로써 서울에 근대적 요소가 유입됨에 따라 도시가 어떻게 변화·재편되었는지 심층적으로 접근했다. 우리의 도시가 한 가지 얼굴로만 보인다면 얼마나 따분할까?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화려하게 화장한 얼굴로만 인식되던 서울의 민낯을 본 듯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