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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베끼기
  • 환경과조경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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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가책

중간 발표는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나의 설계를 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던 교수님도 지적보다는 긍정적인 조언을 많이 주셨고, 어떤 교수님은 최종 발표가 기대된다는 격려까지 해주셨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저 설계는 며칠 전 잡지에서 본 그럴듯한 작품들을 짜깁기하여 베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베낄 의도는 없었다. 참조만 한다는 것이 결국 베끼기가 되어버렸다. 다른 안을 다시 그려보아도 내 눈앞에 있는 모작만 못한 느낌이다. 그냥 이 안으로 끝까지 가볼까? 그러다 원작을 알고 있는 교수님이 지적을 하시거나 친구들이 알아채고 비아냥거릴까봐 걱정이다. 지적과 비웃음을 제쳐두고, 좋은 조경가가 되고 싶다는 내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작가는 자신만의 생각과 개성을 작품에 담아야 한다고 배워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문득 의문이 생긴다. 생각을 해보면 어디까지가 참조이고 표절인지 헷갈린다. 좋은 사례를 찾아보라는 교수님들의 조언이 베끼기를 어느 정도 용인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배우는 과정이라면 어느 정도의 베끼기는 공부의 일부가 아닐까? 그렇다면 실무에서는 베끼기가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 될 짓일까? 베끼기는 과연 나쁜 짓인가?


베끼기의 역사

믿기지 않겠지만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베끼기였던 때가 있었다. 오늘날 예술을 논할 때 대개는 르네상스, 바로크처럼 시대를 기준으로 삼거나 낭만주의, 사실주의, 초현실주의와 같이 생각과 작업 방식을 공유하는 예술가들의 그룹을 묶어서 이야기한다. 처음 이러한 방식으로 예술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한 이가 독일의 미술사가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이다. 빙켈만은 한 편의 논문을 통해 작가 개개인의 분석 수준에 머물던 미술사의 담론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빙켈만이 1755년 출판한 논문, ‘회화와 조각 예술에서 고대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에 관한 생각’은 귀족 출신도 아니었던 빙켈만을 단번에 저명 인사로 만들 정도로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1 빙켈만은 이 책에서 고대그리스 예술을 서양 문명이 도달한 최고의 예술적 경지로 극찬한다. 그리고 예술이 창조적이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문화로 돌아가 철저히 당시의 예술을 베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들으면 궤변 같아도 당시 이러한 생각은 나름 오랜 문화적 근거를 갖고 있었다.

로마 시대의 예술은 대부분 그리스 예술의 모작이다. 예외가 있다면 정치인들의 동상이나 전승 장면을 묘사한 부조 정도밖에는 없다. 그러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로마인이 그리스인보다 능력이 떨어졌던 것은 아니다. 로마 예술의 독창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예술가의 능력 문제라기보다는 미의 기준이 고대 그리스 예술에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에 예술의 가치는 창의성보다는 얼마나 그리스의 작품을 잘 모방하였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2 예술가를 높이 평가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도 모방은 여전히 예술의 중요한 가치였다. 빙켈만은, 라파엘로도 제자들에게 그리스의 조각 작품들을 소묘하라고 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라파엘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르네상스의 대가들 역시 고대 그리스의 조각을 훌륭한 예술의 전형으로 여기고 작품에 반영하려 했다. 또한 르네상스 예술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알베르티 역시 『회화론』에서 자연 풍경을 대상으로 습작하는 것과 함께 그리스 작품의 모사도 훌륭한 예술가라면 반드시 따라야 할 훈련 방법이라고 기술할 정도로 모방을 중요시했다.3

놀랍게도 예술가는 철저하게 고대 그리스를 베껴야 한다는 빙켈만의 주장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다. 실제로 빙켈만 이후 18세기 후반 예술계의 목표는 고대 그리스의 모방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조를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라고 부른다. 신고전주의는 단순히 회화나 조각에 국한된 움직임이 아니었다. 미술은 물론 문학, 연극, 음악 역시 고대 그리스 비극의 구성을 따르려 했으며 건축에서 역시 그리스 신전의 양식을 재해석한 건물들이 도시의 주요 공간을 지배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베끼기의 전통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지속되고 있다.

빙켈만의 시대처럼 오늘날 예술의 목표가 모방에 있지는 않지만, 사실 모방만큼 설계의 질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 모방이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 될 죄악은 아니다. 모방을 통해서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뛰어난 디자이너들의 설계를 체득하게 되고 그들의 문제점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베끼기에 너무 익숙해지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잡지나 작품집을 통해서 설계를 하다 보면 누군가의 아류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모방은 분명 양날의 칼이다. 문제는 모방을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에 있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모방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첫째, 다른 분야에서 베껴라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모방을 해야 좋은 베끼기가 될 수 있을까? 가장 안전한 방법은 다른 분야에서 베끼는 것이다. 분야가 다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매체나 사고의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다른 분야의 작품을 베낄 때는 체계를 변환하는 고도의 해석이 필요하다. 이 경우 해석 자체가 결국 창조의 과정이 되기 때문에, 마음먹고 베끼려 해도 표절이 불가능할 때가 많다. 작곡가가 외국 곡을 표절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건축 작품을 표절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 베끼려면 유사한 인접 분야인 것이 좋다. 접근 방식에서 너무 차이가 생기면 베끼는 과정에서의 해석이 하나마나한 비유의 차원에 머물고 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화감독들은 유사한 영상 예술 분야인 사진 예술에서 많은 영감을 받으며, 건축가나 조경가의 작업은 회화나 조각과 같은 미술 분야의 작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왔다.

20세기 초 모더니즘 운동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였던 데 스틸De Stijl이 이러한 베끼기의 대표적인 예를 보여준다. 네덜란드어로 데 스틸은 ‘양식the style’을 뜻한다. 데 스틸은 그 의미처럼 예술의 다양한 매체를 넘어서 그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보편적인 시각 예술의 양식을 제시하고자 했다.4 단순한 기하학적 구성으로 이루어진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회화는 데 스틸이 생각한 예술의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언어에 가장 가까웠다(그림1).5 주로 화가들이 주축을 이룬 데 스틸은 건축가인 리트벨트Gerrit Rietveld가 참여하면서 더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추상적 양식을 구현해나간다. 리트벨트가 디자인한 가구를 보면 기하학적 구성과 삼원색과 같은 몬드리안 회화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림2).6 다음은 데 스틸의 수장이었던 반 두스부르흐Theo van Doesburg의 공간 구상도이다. 리트벨트의 가구와 마찬지로 이 다이어그램 역시 이차원적인 몬드리안의 평면 구성을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여 입체적인 구성으로 만든 시도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그림3). 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데 스틸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인 슈뢰더 하우스Schröder House는 외관상의 형태뿐만 아니라 내부의 인테리어까지도 추상 회화를 연상시키는 구성과 배치로 이루어져있다. 데 스틸의 경우 회화의 형태적 언어를 산업 디자인에서, 그리고 건축에서 베끼면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간 셈이다(그림4).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 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 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어바니즘』이 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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