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보드를 타면 죽을 수도 있어요.” 이 섬뜩한 경고는 전시를 기획한 작가, 맙소사(김병국)가 오프닝 토크에서 한 말이다. 전시의 제목은 ‘타기 좋은 형태’. 제목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찬찬히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스케이트 보더를 위한 공간을 제시한 ‘타기 좋은 형태’ 전은 공간에 대한 일상적 사고를 뒤집는 실험이다.
‘도시를 내 마음대로 디자인할 거야’
지난 8월 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의 갤러리 팩토리에서 ‘타기 좋은 형태’ 전이 열렸다. 스포츠의 한 종목을 넘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전시인 만큼 각양각색의 개성이 뚜렷한 젊은이들이 오프닝 토크를 찾았다. 작품이 전시의 주인공이고 관람객은 손님에 불과한 일반적인 전시와는 달리, ‘타기 좋은 형태’에서는 관람객이 전시의 주인공이다. 전시를 찾은 젊은이들은 전시 공간에서 자유롭게 보드를 타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며 즉흥적으로 낙서를 하기도 했다.
앉아서 타는 사람, 전문적인 기술을 시도하는 사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구석에서 보드를 타는 사람 등 보드를 타는 방법도 각양각색이었다. 하프 파이프(스케이트보드, 인라인 스케이트, BMX 등에서 사용되는 곡면을 가진 구조물), 플로어, 경사면, 핸드 레일 등 단순한 설치 구조물로 구성된 ‘타기 좋은 형태’는 관람객의 행위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계속 변화하고 진화했다. 갤러리 팩토리의 홍보라 디렉터는 “보드를 타는 친구들에게서는 ‘도시를 내 마음대로 디자인할 거야’라는 정신이 느껴진다”며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보더에게 몸의 상처는 영광이다
스케이트 보더들은 깨끗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공간보다는 비일상적이고 낯선 공간에 매력을 느낀다. 한 예로 레드불Red Bull의 스케이트보드 팀은 세계 각 도시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탐방하며 영상과 사진을 올리고 있다. 그들이 각 도시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공간은 유명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대개 버려진 골목과 망가진 기물 사이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지만 ‘보드를 타다가 죽을 수도 있는 공간’이 ‘타기 좋은 형태’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홍보라 디렉터는 “보더들은 몸에 상처가 나는 자체를 영광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스케이트 보더들은 안전의 규칙을 뛰어넘어 ‘타기 좋은 형태’를 찾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앉기 좋은 형태’, ‘눕기 좋은 형태’, ‘걷기 좋은 형태’ 등은 안전하고 편리하지만 새롭고 신선하지는 않다. ‘타기 좋은 형태’가 가진 비일상적이고 일탈적인 매력에 보더들은 구르고 넘어지며 위험을 즐긴다.
‘타기 좋은 형태’ 전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갤러리의 공간이 협소해 스케이트 보더들이 다양한 기술과 움직임을 구사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는 점이다. 좁고 답답한 갤러리를 탈출해 고즈넉한 통의동 골목을 달리는 스케이트 보더들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갤러리를 넘어 그들만의 방식으로 도시를 디자인하는 보더들의 작품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