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내셔널 빌딩 뮤지엄National Building Museum은 1882년에 준공된 역사적인 건물이다. 이 건물의 대강당Great Hall은 그동안 건축계 주요인사들의 강연 시리즈, 건축적 설치 미술, 지역 커뮤니티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어왔다. 이번에는 덴마크 건축설계사무소인 BIGB jarke Ingels Group가 설계한 새로운 미로maze를 위한 무대로 활용되었다.
가로세로 60피트×60피트(약 18m×18m), 높이는 18피트(5.5m)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 거대한 미로는 그동안 외부 공간의 한 요소로 사용되었던 여느 미로와는 그 형태가 다르다. 17~18세기 유럽의 미로 정원, 생울타리 미로hedge maze 그리고 현대 미국의 옥수수 밭 미로corn maze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새로운 미로는 내셔널 빌딩 뮤지엄의 대강당의 서쪽 코트에 설치되어 지난 7월 4일부터 9월 1일까지 전시되었다.
미로와 팬옵티콘
흔히 ‘미궁에 빠지다’는 표현을 쓴다. 종이 위의 2차원 형태의 미로 게임을 풀거나, 미로 정원과 같은 3차원 형태의 미로 속으로 들어가면, ‘끝이 안 보인다, 빠져나가는 길이 있기는 한가’ 혹은 ‘분명 왔던 곳 같은 데…’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BIGMaze는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빠져나갈 수 있는 확률이 커지도록 설계되었다. 책임 디자이너 비아르케 잉엘스Bjarke Ingels는 기존의 미로를 보며, “만약 보통의 미로를 여행하는 시나리오를 뒤집어서, 팬옵티콘panopticon같은 기능을 적용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 뒤집힌 시나리오를 통해 내가 여행하고 있는 미로의 구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과 같은 질문을 하는 데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팬옵티콘이란 1791년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 Jeremy Bentham이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고안한 원형 감옥이다.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을 합성한 것으로 ‘모두 다 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진행되는 모든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벤담이 고안한 감옥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 ‘모두 다 본다’라는 개념이 이 새로운 미로에는 어떻게 적용되었을까? 우선 보통의 평면형 미로는 하나의 입구가 있고 하나의 출구가 있으나, 마치 수만 가지의 길이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 평면의 미로를 3차원으로 들어 올려 벽으로 구성된 3차원의 공간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을 떠먹듯이 미로의 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도록 파내면 BIG Maze의 구조가 완성된다. 미로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에는 높은 외벽으로 인해 내부를 볼 수 없지만, 미로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벽이 서서히 낮아지면서 미로의 구조가 드러난다. 미로의 벽이 어린이들이 느끼기에도 전혀 갑갑하지 않을 만큼 낮아지면 중심부에 도착한 것이다. 그 순간 사람들은 어떻게 중심부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길로 가야 이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는지를 360도의 시야를 통해 알 수 있다.
역발상의 즐거움
잉엘스는 “이 미로를 만들면서도 사람들이 정말 재미를 느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며 미로라는 고전적인 소재가 사람들에게 식상하게 다가서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대본을 쓰지 않는다. 단지 무대를 만들어줄 뿐이다”라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미로를 설계한 것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팬옵티콘의 숨은 의도는 교도관 없이도 죄수들 스스로를 감시하는 감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이 개념을 감옥과 같은 감시 시설에만 국한하지 않고, 군대의 병영이나 병원, 학교나 공장 등에도 적용하여 우리 사회에 은연중에 퍼져있는 권력과 감시의 시스템을 해석한다. 반면 이 ‘뒤집힌 시나리오’에서는 팬옵티콘의 감시 기능을 통해 우리가 미로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알아가는 즐거움으로 바꾸어 준다. “중심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미리 도착해 있는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단번에 알아챌 것”이라는 잉엘스의 말을 들으면, 분명 사람들은 이 미로를 빠져나가기 보다는 어떤 방향으로 여행할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