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2007년 여름,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실무를 시작했을 때다. 뉴욕 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두는 단연 거버너스 아일랜드 공원 및 오픈스페이스 공모전이었다. 29개 팀 중 자격을 심사해 선발된 최정예 5개 팀은 그 이름만으로도 큰 기대를 갖게 했다. 이들의 설계안이 일반에게 공개되었을 때 사실 많은 사람들은 JCFO의 ‘Mollusk’가 선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콘셉트 자체도 자연과 생태를 강조해 감성적이었지만, JCFO 특유의 뛰어난 그래픽과 표현기법은 많은 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프레시킬스, 하이라인에 이어, 센트럴파크 이래로 뉴욕의 대표적인 공원 공모전을 모두 휩쓸겠다는 제임스 코너James Corner의 야심(!)이 대단하다는 소문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러나 결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사실 늘 그렇듯이- 저 멀리서 나무자전거를 타고 등장한 네덜란드인에게 우승의 영광이 돌아갔다. 마치 17세기 초반, 거버너스 아일랜드에 네덜란드인이 들어와 원주민을 몰아냈던 그때처럼.
이 네덜란드인 아드리안 구즈Adriaan Geuze와 West 8 컨소시엄의 공모전 설계안을 보면 상당히 과격하다. 지금은 네 개의 언덕으로 줄어들었지만 공모전에서는 아일랜드 전체에 걸쳐 크고 작은 언덕을 제안했다. 건물과 연계한 언덕도 있고 자유의 여신상처럼 그 내부 공간을 통해 올라가는 언덕도 있다.
가장 높은 언덕의 높이는 약 55m에 달하고 어떤 언덕은 꼭대기에서 낚시를 하는 등 공모전 콘셉트로 재미는 있지만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의문이 들게 하는 그런 설계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est 8의 안이 당선된 이유는 콘셉트 자체가 상당히 단순하고 도시 맥락에 맞는 디자인으로 워터프런트의 활성화라는 발주처의 기대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2007년 12월 뉴욕시장실의 보도 자료를 보면 당선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뉴욕 항에 위치한 섬이라는 측면에서의 거버너스 아일랜드를 잘 반영했고, 건물 잔해를 재활용해 뉴욕 항의 드라마틱한 경관을 360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언덕을 제안한 것이 환경친화적이다. 무료 자전거 프로그램을 도입해 시민들이 섬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사실 대단한 것은 없다. 과격하게 제안한 부분에 손을 좀 대어도 전체 콘셉트를 유지하는 데 무리 없는 안을 발주처에서 현명하게 선정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의 요구 파악
거버너스 아일랜드는 올해 5월 공식적으로 일반에 개방되었다. 2013년 가을, 블룸버그 시장이 퇴임 전 리본을 커팅한 것을 공식 개장이라고 보더라도 공모전에서 당선작을 선정하고서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전체 공원이 아니라 1단계 공원(약 30에이커)을 마무리 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물론 기본설계의 대상지는 공원 전체였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워낙 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곳이었고, 또 사람들이 사용하던 당시에도 군사 목적으로 이용되던 곳이기 때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오픈스페이스로의 변형이 쉽지만은 않았다. 공원의 상수도를 다시 연결해야 했고 낙후된 호안을 개선하는 등 아일랜드 내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이런 하드웨어적인 부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간을 투자한 일은 잠재 이용자들에게 공원을 홍보하고 이들의 요구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공모전이 시행된 2007년 여름부터 매해 거버너스 아일랜드자체를 일반 시민에게 개방했다. 사람들에게 잊힌 공간 그 자체를 각인시키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고, 아일랜드에 산재한 공개 공지에 다양한 예술 및 스포츠 프로그램을 유치해 사람들이 공원에서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 또 다른 이유였다. 시민들은 무료 페리를 타고 아일랜드에 들어와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즐기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공원에 노출되면서 공원 디자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시민과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은 시민 공청회, 워크숍, 디자인 샤렛, 전시 등 오프라인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블로그, 홈페이지 등 온라인을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경험을 통해 발주처는 공원의 홍보 및 운영, 관리방안에 관한 아이디어를 축적할 수 있었고 설계자는 시민이 원하는 진정한 설계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방문객은 매해 늘어났다. 2008년 여름 아일랜드를 방문한 방문객은 12만6천 명이었지만 2010년에 방문객은 44만 3천 명으로 늘었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사전 준비없이 완성된 공원을 개장했을 때 섬이라는 약점이 있는 이 공간에 이 만큼의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올 여름, 새로운 공원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던 수많은 시민들이 이질감 없이 아일랜드에 녹아들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다년간에 걸친 공원 운영의 노하우와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공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최혜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AECOM(전 EDAW)을 거쳐 West 8 뉴욕 오피스에서 거버너스 아일랜드 프로젝트를 담당해왔다.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에서 West 8 + 이로재 팀의 당선을 이끌면서 현재 프로젝트 리더로 일하고 있으며,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 친환경건축물 인증제 공인 전문가(LEED AP)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