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빌드 바이 디자인’을 필두로 한 지난 호의 콘텐츠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피드백을 주셨다. 편집자에게는 독자의 반응 자체가 그 어떤 영양제나 피로회복제보다 힘이 된다. 이번 호에는 피터 워커, 조지 하그리브스, 아드리안 구즈 등 스타 조경가들의 근작이 한꺼번에 실리지만, 편집부가 두 달 넘게 준비해 온 특집은 정작 ‘책’ 이야기다. 초여름의 어느 평화로운 편집회의에서 책으로 가을을 열자는 의견을 누군가가 던졌고, 기왕이면 편집부 모두가 참여하는 책 기획으로 엮어보자는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매주 아이디어가 백출했다. 제목 후보로 활자로 지어진 경관, 활자와 경관 사이, 이미지의 숲에서 활자 산책을 떠나다, 조경-책으로 말하다, 여기 129권의 책이 있다, 텍스트의 숲 속으로 등 갖가지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용기백배하여, 그래도 책을 읽고 펴내는 이유, 그들이 책을 쓰는 까닭, 나는 이런 독자를 원한다, 나는 이런 책을 원한다, 책의 101가지 활용법, 서점에서 조경 서적을 들추고 있는 당신에게, 읽어야 사는 여자(남자), 이런 책은 왜 없을까 등 정말 다양한 기획 꼭지를 수차례 구상하고 검토했다. 그러나, 김현의 책 제목처럼 ‘행복한 책읽기’를 꿈꾸며 출발했지만, 역시 책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그렇듯 스트레스의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었다. 기획안이 표류를 거듭했고, 어느 한여름 오후의 편집회의에서는 마침내 책 특집이 백지화되기도 했다. 마감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금, 한 기자가 허공에 대고 이렇게 독백하는 게 들린다. “당분간은 책을 읽지 못할 것 같아요.”
사실 책 읽기는 일상적인 것 같지만 가장 비일상적인 행위 중 하나다. 이미지, 디지털, SNS와 같은 이 시대의 문화 풍경 때문에 책 읽기가 종말을 맞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책은 힘든 업보와도 같은 숙제였다. 시대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우리 대부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항상 책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의무는 모두 싫기 마련인데 독서도 의무처럼 어깨를 누른다. 권장 도서 리스트를 보면 숨이 멎을 것 같다. 남들이 읽은 책들을 나만 읽지 않은 것 같아 늘 마음이 무겁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보면 두통이 생긴다. 이런 맥락에서 피에르 바야르Pierre Bayard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의무나 강요가 아닌 자유로운 읽기를 통해 책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주는 통쾌한 책이다. 언뜻 보면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러나 위트 있는 이 책의 저자는 그런 값싼 테크닉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 과연 책을 읽었다는 것은 무엇이며 읽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든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그러면서도 책과 지식과 진실을 숭상해온 전통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지켜나갈 수 있는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는 바야르의 논지는 곧 “불완전한 독서와 비非독서를 포함한 온갖 읽기 방식의 창조적 국면”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읽었다고 생각하는 책은 사실은 다른 사람들의 책들과는 무관한, 우리의 상상에 의해 다시 손질된 텍스트 조각들의 잡다한 축적인 것이다.”(p.122) 그렇다면 김현과 같은 ‘행복한 책 읽기’도 남의 일만은 아니지 않을까? 이번 호를 통해 독자들이 책의 중압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행복한 책 읽기’를 꿈꿀 수 있다면 우리 편집부 모두의 두 달간의 스트레스도 날아갈 것 같다.
‘읽다’ 외에 책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동사는 무엇일까. 물론 ‘쓰다’이겠지만, 책 쓰는 일은 책 읽는 일 이상으로 하고 싶지만 하기 어려운 일이다. 책과 관련된 더 즐거운 행위는 없을까. ‘만들다’가 있다. 책 만드는 일은 읽고 쓰는 것 이상으로 복합적인 과정과 창조적인 상상을 동반하는, 아주 어렵지만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편집과 인쇄와 제책으로 대별되는 책 만들기는 근대 이후 하나의 전문 영역이 되었지만, 아직도 직접 그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가며 자신만의 책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8월 초, 우리 잡지 편집위원이기도 한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이 서류봉투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가 손수 만든 달력 책이 들어있었다. 7월호의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 비평 글의 주석 귀퉁이에 “그는 대학원 시절 피터 워커의 작품 사진으로 수제 달력을 만들어 지인 100명에게 돌리기까지 했다”고 쓴 것을 보고, 바로 그 문제의 1993년 달력 책을 선물해준 것이다. 한정판 책의 마지막 남은 한 권, 매월 피터 워커의 대표작들이 하나씩 박승진의 수제 책 디자인 모티브가 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책을 만드는 일도 의미 있지만, 아름다운 책을 보관하고 소장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빌리다’도 있음을 깨닫는다. 7월 말에는 10월호부터 시작될 새로운 ‘조경가의 서재’ 필자와의 협의를 위해 남기준 편집장과 함께 허대영 소장(스튜디오 테라)을 만났다. 영원한 문학청년인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책 이야기로 불꽃을 튀긴다. 나와 허대영 소장 사이에는 단골 메뉴가 하나 있다. 대학원 시절, 내가 그의 책을 빌려가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스토리다. 첫 장에 사인만 하고 채 펼쳐보지도 않은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을 포스트잇에 ‘빌려간다’고 써놓고 집어간 지 어언 20년이란다. 다음엔 꼭 반납하겠다고 미루고 미루어왔지만 사실 나는 또 약속을 어길 것 같다. 책의 첫 문장 “그해 겨울 런던의 히스로우 공항에 도착해 피웠던 첫 담배의 맛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허 소장과 만난 다음날 아침, 한통의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내가 9월호 에디토리얼을 이렇게 끝맺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이십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