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는 2014 문화유산융복합연구의 일환으로 추진한 ‘한중일 정원원형에 관한 기초연구(연구책임자 안승홍)’ 성과를 점검하고자 지난 8월 29일 포스코 P&S 이벤트홀에서 ‘한중일 고정원원형 연구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오전에 열린 콜로키움은 ‘한중일 정원원형에 관한 기초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전문가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되었으며, 오후에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의 전문가가 나서 각국 정원의 개념과 문화까지 아우른 보다심도 있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종합토론을 진행했다.
‘한중일 정원원형에 관한 기초연구’ 과제 발표 첫 발제자로 나선 안승홍 교수(한경대학교)는 ‘한국 궁궐 정원과 창덕궁 후원’을 주제로 시대별 궁궐 정원의 특징을 개괄했다. 궁궐 정원 유적의 현황을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현존하는 유적은 조선시대 유적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외에는 기록과 터만 남아있는 형국이다. ‘한중일 정원원형에 관한 기초연구’는 현존하는 유적을 바탕으로 복원을 진행 중인 궁궐 정원의 원형을 찾는 것이 목적인데, 조선시대 이전의 정원 원형을 고증할 자료나 유구가 많이 부족하다. 또한 접근이 어려운 북한에 유적이 자리하고 있어 연구가 실행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이에 중국과 일본의 정원 원형 연구를 함께 진행하여 비교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데, 객관적 비교를 위해 각국의 연구 대상 시기를 1300년대 부터 1900년대 초까지로 한정했다.
다음으로 염성진 소장(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이 일본 황실정원을 개괄하고 가쓰라리큐桂離宮의 특징을 설명했으며, 윤성융 대표(서호엔지니어링)가 ‘중국 황가원림과 이화원蓬和園’에 대해 발표했다. 김용수 명예교수(경북대학교)는 ‘한중일 정원원형에 관한 기초연구’ 내용에 대해 “궁궐 정원의 개념 풀이가 미흡하고 특정 시대에 초점이 맞추어져 각 나라별 정원의 특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연구의 한계를 지적했다.
보길도 세연정 발굴 조사와 복원을 맡았던 배병선 소장(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은 “고정원의 원류 연구를 위해서는 더 앞선 시대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면서 한국 궁궐정원의 ‘원형’을 찾기 위해서는 시대적으로 앞서 있는 부여의 백제시대 유구와 왕궁리 유적을 토대로 함께 연구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더불어 한중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다른 나라의 정원 연구 및 다른 분야 전문가와 협력을 제안했다.
과제 발표 이후 이어진 본 행사에서는 안계복 회장(한국전통조경학회)이 ‘조선시대 궁궐 정원의 원형’을 주제로 발표하고, 중국인 발표자로는 쉬즈위안 연구원许智源(베이징신도시계획설계연구원)이 ‘명청시대의 황가원림, 원림문화의 집대성’을 주제로 발표했으며, 일본 정원에 대해서는 ‘에도 시대 어소, 이궁의 정원’을 주제로 후지이 에이지로 교수藤井英二郎(지바대학교)가 발표했다. 심포지엄의 화두는 단연 정원 원형의 ‘개념’과 복원의 ‘범위’였다. 류제헌 교수(한국교원대학교)는 “시간이 지나면 물리적인 형태는 변할 수밖에 없지만, 정원을 조성하면서 나타난 비물리적인 개념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른 나라와 대비되는 한국 정원의 특징을 정립하기 위해 보다 확고한 개념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안계복 회장은 “그동안 복원할 때 원형 문제를 주장하면서도 논리적인 개념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어원에 따르면 원형은 ‘첫 번째 떠오르는 인상, 첫 번째 이미지, 첫 번째 모델, 첫 번째 모양’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지금까지 원형의 의미는 ‘첫 번째 모양’으로만 인식돼 왔으며 이는 판단의 오류라는 것이 안 회장의 주장이다. 안 회장은 원형에 대한 시각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처음 발생한 시점의 형상을 원형으로 보는 관점, 시대와 문화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이상적이며 본질적인 원형 경관도 존재한다는 관점, 발생 이후 특정 시대에 따라서 구분되는 원형 경관도 존재할 수 있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이 세 유형은 상호보완적 성격을 가지며 역사 경관의 복원과 정비를 위한 논리적 근거로서 준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통시성과 공시성, 시원성과 시대성, 불변성과 변형성(혹은 외래성)의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판단할 수 있는 전통 경관·역사 경관·원형 경관의 기준을 제시했다.
류제헌 교수는 “원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진정성만을 따지는 것 같다. 하지만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어 더 좋은 정원이 만들어지면 그 시점에 하나의 완전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면서 원형의 기준을 논의할 때 완전성의 개념을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최초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한 것만이 원형 복원은 아니라는 설명으로 안계복 회장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나명하 궁능문화재과장(문화재청)은 “현재 궁궐 복원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궁궐의 원형을 찾아서 복원하는 것이 화두”라면서 궁궐은 원형 복원의 기준을 찾는 것이 특히 어렵다고 설명했다. 궁궐은 시대를 거치면서 중건이 이루어지고, 통치자에 따라 모습이 바뀌어 다양한 시대적 층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이코모스ICOMOS 헌장에 따르면 특정한 시점보다 중첩된 시대를 존중해야 한다. 궁궐은 이 기준을 근거로 복원하고 있다.”
그간 복원은 ‘첫 번째 모양’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이날 발표자들은 복원 대상이 가진 가치에 주목해 보다 넓은 의미에서 원형과 복원의 개념을 설명했다. 이광표 정책부장(동아일보)은 “복원의 기준과 시점, 규모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여, 이에 대한 연구와 담론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했다.
이날 떠오른 또 다른 화두는 ‘고정원 원형 연구’는 건축물뿐만 아니라 식물과 기후, 생활 문화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류제헌 교수는 지금은 “과거의 문화 활동이 이루어진 장소의 현실감이 살아나도록 복원해야 하는 시대”라고 강조하면서 “장소로서 유적의 가치를 제고하고 한국인이 공유하는 정체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적인 유물뿐만 아니라 그 유적이 자리한 위치와 자연 환경을 고려한 복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원은 유구나 기록이 많지 않아 복원에 어려움이 있다. 쉬즈위안 연구원은 “중국에서는 문화를 기준으로 원형을 복원한다”고 전했다. 이는 한국의 정원사연구에 참고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