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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정비의 ‘진정성’
제5차 한양도성 학술회의, ‘남산 회현자락 한양도성의 유산가치
  • 조한결
  • 환경과조경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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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한양도성 학술회의에는 전문가와 시민 약 200명이 모여 남산 회현자락의 600년 역사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한결

 

지난 해 2월 한양도성의 역사적 가치를 이해하고 보존과 관리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처음 시작된 한양도성 학술회의가 어느덧 5회째를 맞이했다. 9월 12일 다섯 번째 학술회의가 ‘남산 회현자락 한양도성의 유산가치’를 주제로 서울특별시청 3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1부에서는 ‘남산과 한양도성의 역사’를, 2부에서는 ‘남산 회현자락 한양도성의 보호·관리’를 주제로 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이 자리에서 600여 년의 세월 동안 근현대사의 부침을 겪었던 남산 회현자락의 역사와 정비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서울의 중심, 남산의 상징성

1부에서 발표된 ‘남산과 한양도성의 역사’에 관한 연구에서는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남산이 갖고 있는 상징성을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했다. 최기수 명예교수(서울시립대 조경학과)는 ‘남산의 경관 및 공원 변천’이라는 주제의 연구를 발표했다. 최 교수는 옛 문헌과 고지도, 산수화 등에서 남산의 경관적 의의를 찾아보고 공원으로의 변천사를 설명했다.

김대호 연구사(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20세기 남산회현자락의 변형, 시각적 지배와 기억의 전쟁’이라는 주제로 근현대사의 격동기에 남산 회현자락을 지배한 권력의 재편 과정에 대해 발표했다. 남산에 세워진 공원, 신사, 동상의 상징성을 당시 권력층과의 정치적 역학 관계로 상세하게 풀어냈다. 그는 남산 회현자락에 대해 “지난 100년간 시각적 지배와 기억을 둘러싼 전쟁이 가장 치열하게 일어났던 공간”이라고 평가하며 정비 사업을 통해 새롭게 나타난 기억의 단층들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지 질문을 던졌다.

배우성 교수(서울시립대 국사학과)의 ‘조선후기 한양도성과 남산 회현자락’을 주제로 한 발표는 영조대代 한양도성 정비 사업과 남산 회현자락에 살았던 거주민들의 역사에 현대적인 해석을 더해 이번 학술회의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한양도성을 ‘군사 유산’이 아닌 ‘도시 유산’으로 봐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양도성이 군사적 방어체제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도시적 삶과 복지를 위한 도시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정비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배우성 교수는 한양도성 안쪽 남산 회현자락에 터를 잡은 거주민들의 역사를 살폈다. 그는 “그동안 ‘뜨내기들의 보금자리’로 인식 돼오던 남산 회현자락이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이름있는’ 가문들의 오랜 터전이기도 했다”며 경주 이씨, 남양 홍씨, 안동 김씨 후손들의 흔적을 추적했다. 그의 연구를 통해 남산 회현자락이 오랜 세월동안 토박이와 뜨내기를 가리지 않고 도시 거주민들을 품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정성’에 대한 논의

학술회의 1부에서 남산 회현자락의 상징성과 그로 인한 역사적 상처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다면 2부에서는 보존 혹은 복원을 통해 역사적 기억을 건강하게 치유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먼저 최형수 서울역사박물관조사연구과장은 남산 회현자락 발굴조사의 결과와 의의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태조 대에서 숙종대 이후까지 시기별 축성 양식이 다름을 확인했으며 한양도성 훼철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나 사진과 일부 문헌에서만 볼 수 있었던 조선신궁 터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진 김왕직 교수(명지대학교 건축학부)와 안동만 교수(서울대학교 조경학과)의 발표에서는 남산 회현자락 정비 방향을 두고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었다. ‘역사유적 보존·정비 사례 연구’를 발표한 김왕직 교수는 국내 성곽 유적 복원 사례(서울성곽, 수원화성, 남한산성 등)와 해외 도시 유적 복원 사례(델피 유적, 미케네 유적, 하이델베르그 성 등)를 예로 들며 창건 당시나 특정 역사적 시점의 형태를 되살리는 ‘복원’이 과거의 정비 방향이었으나 최근의 정비 방향은 역사적 변천 과정이 남아 있는 현재 상태를 보존하는 ‘현상 보존’에 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억지스러운 ‘복원’보다 시간적 흐름에 따른 변화의 흔적을 보존하는 ‘현상 보존’이 역사 진정성을 잘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왕직 교수는 창건 당시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오히려 과거의 흔적과 복원된 부분의 부조화로 인해 더욱 어색한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동만 교수는 도면이나 설계 지침 같은 원형에 대한 상당한 자료가 확보된다면 복원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가능한 발굴한 원형대로 유적을 보존해 진정성을 확보하되 ‘현상 보존’이 기술적으로 어렵고 훼손 가능성이 높은 유적이나 역사적 맥락에 맞지 않는 기념물은 이전 배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학술회의에는 200여 명에 가까운 전문가와 시민이 참석해 한양도성 정비 사업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남산과 한양도성의 역사에 대한 1부 발표 내용과 한양도성의 보호·관리 방안에 대한 2부의 내용은 주제의 흐름에 맞게 잘이어져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내용 면에 있어서 이날 발표된 대부분의 연구 주제는 그동안 진행되었던 연구의 연장선에 있거나 정리에 그쳐 이번 학술회의가 한양도성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기초 자료 확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중요 평가 기준이 ‘진정성’이기 때문에 ‘진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한 참가자의 말 역시 씁쓸함을 남긴다. 한양도성의 보존 및 정비 사업의 진정한 목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앞서 잊히고 파괴된 역사의 기억을 복원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두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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