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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천연색으로 핀 문화역 서울284
‘최정화 -총천연색’, 문화역 서울284에서 10월 19일까지
  • 조한결
  • 환경과조경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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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궁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꽃 한 송이 피우는 일은 온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했다. 꽃 한 송이에도 온 우주가 담겨있다는데 미술가 최정화는 구 서울역 건물 전체를 꽃 피웠다. 고층빌딩과 고가도로, 기차선로 등이 뒤엉켜 복잡한 도심에서 무심한 듯 자리하던 고풍스러운 건물이 총천연색으로 물들었다.

문화역 서울284(구 서울역)는 9월 4일부터 10월 19일까지 ‘최정화-총천연색總天然色’ 전을 선보인다. 최정화의 ‘총천연색’은 꽃을 주제로 세상의 삼라만상을 담아낸전시다. 미술, 디자인, 공예, 설치, 수집, 미디어, 퍼포먼스 등 복합 예술·문화 행사로 구성되어 꽃의 향연을 펼친다.


성과 속, 꽃의 이중성

‘꽃’을 주제로 한 전시라 자연스레 ‘자연미’나 ‘순결한 아름다움’을 기대한 관람객이라면 최정화의 전시는 ‘충격과 공포’가 될 것이다. 총천연색으로 물든 최정화의 꽃은 묘하게 야하다. 홍등가의 불빛처럼 알록달록한 ‘꽃궁’을 거닐다보면 평범한 빨간 소쿠리도 야해 보일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가 하면 촌스러운 구닥다리 잡동사니가 거대한 풍경이 되기도 한다. 1층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거대한 탑 ‘꽃의 여가’는 흔히 볼 수 있는 비닐 가방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매단 것이다.

최정화는 천박함과 성스러움, 깨끗함과 더러움, 진짜와 가짜의 경계와 고정관념을 허문다. 황금색 비닐 풍선으로 만든 왕관(‘꽃의 뜻’)은 한껏 팽창하다가 우리를 조롱하듯 갑자기 허물어진다. 오색의 청소도구들이 아무렇게나 꽂힌 휴지통에는 ‘청소꽃’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붙었다. 방 전체에 건설 폐자재를 쌓아 놓은 폐허같은 방 ‘꽃의 속도-폐허’의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 위태롭게 흔들린다. 최정화는 천박함을 부정하지도, 성스러움을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모든 것들을 한데 모아 놓았을 뿐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사물과 색의 조화는 ‘이것이 우리가 사는 방식이야’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 같다.


최정화식 유머

마치 우리를 시험하듯 ‘진짜’와 ‘가짜’를 묻는 최정화의 작품은 도발적이기보다는 어딘가 어설퍼 웃음 짓게 한다. 그는 이 엉성함을 ‘치밀하게’ 완성했다고 말한다. 최정화는 1986년과 1987년 미술인에게 ‘엘리트 코스’라 불리는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과 대상을 타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하지만 그는 곧 회화를 그만두고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다. ‘그림으로 사람들을 속이기가 너무 쉬웠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제 그는 회화, 공예, 설치, 수집, 미디어, 퍼포먼스 등 더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치밀한 엉성함’을 선보인다. 그는 자신의 예술에 대해 “날조에 날림을 더하면 완성”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날조에 날림인데다가 엉성한 듯 보이는 그의 작품에는 매력이 있다. 그의 작품은 현대 미술의 경계와 정의에 대해 관객을 가르치려 들거나 시험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나 알 수 있는 익숙하지만 화려한 풍경으로 하여금 관객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 시각을 매혹시키고 입을 ‘활짝’ 벌려 웃음 짓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최정화식 유머는 대중에 대한 냉소나 예술에 대한 비웃음이 아니라 따뜻한 농담이고 긍정의 웃음이다.

최정화식 유머는 전시 곳곳에서 나타난다. 전시 건물의 2층에서 가장 큰 전시실을 차지하는 작품인 ‘꽃의 만다라’는 관객이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총천연색’ 전의 관람료는 플라스틱 병뚜껑이다. 그는 관객들에게 받은 각양각색의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아 만다라를 만들었다. 전시장의 한 쪽 벽면은 거울로 되어 있어 플라스틱 병뚜껑들이 공간을 꽉 채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병뚜껑도 모아 놓으니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 2층 전시관 창문에서 내다볼 수 있는 구 서울역 지붕 위에는 공기 풍선으로 만든 로보트 태권브이가 누워 있다. 고가 도로와 철로, 고층빌딩, 혼잡한 대중교통 등으로 어지러운 도심 풍경 속에서 죽은 듯이 누워있던 태권브이가 별안간 벌떡 일어나 요염한 포즈를 취한다. 태권브이 아래에는 “당신도 꽃입니다”

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화려한 꽃무늬의 문구는 몸빼 바지 천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유쾌한 응원이다. 손때 묻은 자개장, 누렇게 바랜 플라스틱 보온병, 촌스러운 액자 등 최정화가 모은 잡동사니에는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작가는 개막 행사에서 자신의 모든 작업의 원천은 어머니라고 소개하며 어머니 앞에 큰절을 올렸다. 아들의 절을 받으신 어머니는 꽃처럼 수줍으셨다. 우리는 모두 꽃이다. 꽃의 아들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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